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8월 16일엔 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전날의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망발이라고 비난하고, 남한과의 대화거부 의사까지 표명했다. 앞서 8월 11일엔 북한 외무성의 미국담당 국장이 담화를 내 ‘겁먹은 개’ ‘똥’ ‘바보’ ‘도적’ 등 온갖 막말로 남한 당국을 비난했다.
김정은을 국제정치 무대에 데뷔시킨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의 노력으로 김정은은 세계 최강국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세 차례의 만남이 성사되었고, 그때마다 그는 세계적인 뉴스메이커가 되었다.
지금 김정은은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거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인물인 듯이 행동하고 있다. 자신이 쏘아올린 미사일로 문 대통령이 새벽잠을 설치게 된 것을 조롱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친서를 보내 대화를 청하고 있다. 이 정부는 그런 김정은의 서울방문을 금과옥조처럼 추진하고 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오면초가(五面楚歌)에 직면하고 있다. 당장 일본과는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고, 미국은 방위비 인상, 호르무즈 파병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 영공을 합동으로 침범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이 한국에 배치된다면 보복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한국이 처한 이 같은 곤경은 직간접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다. 김정은 정권을 비호하다 자초한 왕따인데, 그것을 북한한테서까지 당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 책임 또한 김정은의 버릇을 잘못들인 문 대통령에게 있다. 그는 김정은의 비위를 상하게 할까봐 오냐 오냐 하기에 급급했다. 당연히 해야 할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북한이 억류중인 한국인 6명의 송환문제다. 북한은 북미 대화에 앞서 억류 미국인 2명을 풀어주었지만, 남북은 세 번의 정상회담을 포함해 네 차례나 만났지만 한 명도 송환받지 못했다. 자국민 보호는 대통령의 으뜸가는 책무임에도 모르는 체했고, 그 상태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문 대통령의 침묵은 자신이 주도해서 성사시킨 남북,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충정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상대가 과대망상에 빠지거나, 국민의 자존심이 손상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을 의식해 ICBM은 쏘지 않고, 일본의 영해에 떨이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남한 전역을 사정거리로 한 단거리 미사일을 하루가 멀게 쏘아대고 있는 북한에 대해 단호한 한마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신 말대로 나는 북미 대화에서 빠질 테니 미국하고 잘 해보게. 차마 이 소리는 끝까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당신과 대화하느니 내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게 낫겠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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