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화대 신입생은 올해 3800명이다. 중국 대학입학시험에서 최고점수 730점을 받은 학생, 천재시인으로 알려진 영재,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금메달 수상자 등 다양한 학생이 언론보도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 중 최고 스타학생이 바둑기사 커제였다. 2017년 이전까진 일반인들은 커제를 잘 몰랐다. 그러나 알파고와 3번기 대결을 마치고, 매스컴에서 끼를 드러내며 커제는 전국적인 유명인이 되었다.
칭화대 신입생 등록을 마친 커제 9단.
입학등록을 위해 칭화대를 찾은 커제는 중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수속은 무사히 마쳤다. 칭화대 선배기사들 조언을 얻어 경영학과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커제는 여전히 활달했다. 신입생 동기 중에 알아본 이들이 많아 기념촬영 공세에 시달렸지만,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모두 친절하게 응대했다.
중국에서 운동선수 특례입학제도가 변경되었지만, 아직도 일류 프로기사들은 대학입학이 어렵지 않다. 중국 현역 프로기사 중 가장 먼저 대학교 문을 두드린 이는 창하오 9단(베이징 석유대)이다. 창하오가 졸업했던 2015년에 구리가 칭화대 역사학과에 입학했다. 구리가 졸업한 올해 커제가 다시 칭화대 입학통지서를 받아 바통을 이었다. 물론 그사이 장웨이제, 저우루이양, 리저, 판웨이징 등 우리 눈에 익숙한 중국프로기사 다수가 베이징대, 칭화대, 난창대 등 중국 유수 명문대에 다니거나 졸업했다. 중국여자랭킹 1위에 위즈잉은 상하이 재경대학에 다니고 있다.
국내에서도 예전 한국외국어대학교가 바둑기사 무시험 입학을 허용한 적이 있었다. 매년 프로기사 두세 명이 이 대학에 입학했다. 주로 중국어과와 일본어과를 선택했다. 최철한 9단, 이영구 9단, 이다혜 5단 등이 일본어과를 나왔고, 원성진 9단, 윤준상 9단, 김형환 8단, 안형준 5단 등은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이후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한국 프로기사가 시험을 치르지 않고 일반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7월 칭화대를 졸업한 구리는 자신의 웨이보에 “4년이란 시간이 총알처럼 지나갔다. 내가 졸업할 수 있도록 관심과 도움을 준 교수님과 동기생들에게 감사드린다. 인생에 새로운 여정을 앞두고 묵묵히 노력하며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 공부에 전념하는 동안 바둑대회 성적은 그리 좋진 않았다. 칭화대 역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송룽후이 5단은 “교수님들이 구리 사범님은 잘 봐줬는데 내게는 아주 혹독하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녀는 몇 년째 아예 대회에 나올 생각도 못하고 있다.
입학통지서를 들고 부모님과 함께 셀카.
커제의 아버지 커궈판은 만족하는 눈치다. 그도 중국 수자원시스템 연구원 출신 엘리트다. 칭화대 입학 후에 심경을 묻자 “아들은 바둑인이다. 바둑에서 더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은 긴 여정이라 대학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여전히 아들의 선택을 지지하면서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구리는 “신입생 커제에게 칭화대가 꽤 어려운 곳이라고 일깨워주고 싶다”고 말했다. 칭화대 학부과정에선 수업 절반 이상을 영어로 진행한다. 구리는 “대학생활 내내 영어 때문에 고통 받았다”고 고백했다. 바둑과 대학, 두 마리 토끼다. 일류 프로들과 승부를 계속 하면서 학업을 이어가는 일은 극히 어렵다. 커제는 “시간 배분을 잘해서 바둑기사가 보통 운동선수 출신학생과 다르다는 인상을 남기겠다”고 자신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앞으로 4년 동안 대학바둑은 커제가 통치한다”, “커제가 바둑동아리에 들어갈까”라는 등 재미난 댓글을 달았다. 이에 대해 커제는 “칭화대에 다양한 동아리가 있다고 들었다. 나도 새로운 취미를 가질 수 있다. 물론 바둑동아리에 가입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들어간다면 칭화대는 바둑분위기가 아주 좋게 변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