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진로의 지분을 8% 갖고 있는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 장이 도덕적 해이와 분식회계가 불거지면서 ‘퇴출론’에 시달리고 있다. | ||
그러나 장 전 회장은 여전히 그룹의 모기업인 (주)진로의 지분 8%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 (주)진로는 지금도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으나, 장 전 회장은 (주)진로의 외자유치를 통한 경영 정상화를 통해 재기를 모색해왔다.
이런 와중에 그가 진로그룹의 계열사에 빌려쓴 돈만 3천억원이 넘은데다, (주)진로의 분식회계 규모가 1조5천9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의 ‘퇴출론’이 불거지고 있다.
진로 계열사인 진로종합유통이 최근 금융 당국에 제출한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가 장 전 회장에게 빌려준 돈은 1천9백74억원. 회사측은 이 돈의 회수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전액 손실처리해 버렸다.
(주)진로도 장 전 회장에게 빌려준 1천2백11억원에 대해 이미 회수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회수불능 채권으로 처리했다.
이처럼 장 전 회장이 3천억원이 넘는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는 도덕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됐다. 재계에선 경우야 어떻든 화의 기업인 진로의 법정 등기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 전 회장이 ‘회사돈을 떼어먹었다’는 부분이 그의 재기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장 전 회장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 부분은 금융당국에서도 그의 ‘부실 경영’ 사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는 점. 장 전 회장은 계열사의 부실 경영으로 공적자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 2월 장 전 회장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 예보측은 “(주)진로는 지난 94년 10월부터 96년 9월까지 계열사와 대주주에게 대출한 자금을 기재하지 않는 방법으로 모두 1조5천9백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최근 공식 발표했다.
예보에 따르면 (주)진로는 이런 분식회계를 통해 회사 자산 가치를 조작한 뒤 회사채를 발행,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뒤 이를 갚지 않아 대출 금융기관을 부실에 빠트렸다는 것. 결국 이들 금융기관에는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돼 국민 경제 전체에 주름살을 안겼다는 게 예보측의 설명. 예보에선 조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장 전 회장 등 진로 임직원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장 전 회장에 대한 손배소송이 진행되고 계열사에 대한 대출 부분이 법원 판결로 확정될 경우 장 전 회장과 진로를 이어주던 실낱같던 끈마저 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법원이 진로가 주장하고 있는 외자유치를 통한 기업정상화 대신 ‘법정관리를 통한 제3자 매각’이라는 카드를 택할 경우 장 전 회장의 퇴출은 불가피하다.
이 같은 위기를 의식한 때문인지 장 전 회장측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장 전 회장측은 계열사 분식회계 내용 등이 최근 불거진 것에 대해 “골드만삭스의 여론조성 작업”이라는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최근 진로는 채권단의 일원인 골드만삭스측과 진로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진로 경영진이 투명한 절차를 밟고 있지 않다며, 장 전 회장측이 추진중인 외자 유치방안에 대해 ‘가능성 없는 시나리오’라고 일축하고 지난 4월3일 (주)진로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진로는 “기존 주주를 배제한 채 제3자에게 (주)진로를 팔아 넘기겠다는 술수”라며 골드만삭스를 격렬히 비난했고, 노조측과 함께 시위와 성명서 발표 등으로 골드만삭스에 저항하고 있다.
진로쪽의 입장은 진로의 주도하에 1조원 이상의 외자 유치를 통해 기존 부채를 갚고 경영정상화를 이룩하겠다는 것. 진로 관계자는 “회사 자금 유용 등 장 전 회장의 ‘부실경영 사례’는 잘못 알려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가 된 사안은 IMF 이전에 일어난 일로 채권단 관리하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이미 지난 2월 예보의 수사의뢰 사실이 알려진 상태에서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저쪽(골드만삭스)의 술수”라고 비난했다.
진로 관계자는 “예보가 지적한 분식회계 건은 엄격한 의미에서 분식이 아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주석 미기재’로 회계법상 해석의 차이가 있는 부분으로 검찰에 이미 금감원쪽의 의견이 넘어간 상태이고 진로쪽에서도 검찰에 가서 해명했다”고 밝혔다. 장 전 회장이 계열사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는 주장도 “이미 법원 판결을 통해 사실과 다름을 증명하고 있다”고 관계자는 주장했다.
장 전 회장이 계열사에 돈을 빌린 것은 지난 88년 이후 진로가 30대 그룹에 진입할 때 계열사들이 출자제한에 걸리자 그 출자초과분을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장 전 회장이 떠안고 지분을 인수했다는 것. 즉 관계법령을 따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장 전 회장이 인수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법원도 이 부분에 대해 장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서울지법 제22민사부는 장 전 회장이 진로유통을 상대로 낸 2백80억원(원금 1백7억원)의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서 장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 장 전 회장이 계열사에서 빌린 돈은 개인적으로 빌려쓴 게 아님을 법원도 인정했다는 얘기다.
이들은 앞으로 2천억원이 넘는 장 전 회장의 개인빚도 이 같은 방식으로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장 전 회장이 도덕적 해이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진로가 주도하는 ‘외자유치를 통한 기업 정상화 방안’이 법원의 승인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
법원에선 진로의 정상화 방안에 대한 진로와 골드만삭스의 다툼에 대해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양쪽의 의견을 듣고 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을 앞두고 진로에 불리한 대주주의 자금유용 스캔들이 잇따라 터져나와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