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스프레이로 덮힌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과 복원된 흉상. 사진=연합뉴스·일요신문DB
대법원은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황 작가(35)에게 2017년 11월 1심 때 내렸던 벌금 100만 원 형을 유지하기로 6월 13일 결정했다. 사건이 벌어진 2년 7개월 만의 일이었다. 최 작가는 “군부대가 남기고 간 고철 덩어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한 개인에게 말도 안 되는 죄를 뒤집어 씌웠다”고 말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사건의 시작은 2016년 12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12월 초 최황 작가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근린공원에 설치된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에 빨간 스프레이를 뿌린 뒤 흉상이 놓인 좌대에 ‘철거하라’라는 문구를 남겼다. 훼손 사실을 주위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까 봐 망치로 코 부분을 두들기기도 했다.
얼마 뒤 최황 작가는 경찰 연락을 받았다. 박정희대통령정신문화선양회로 이름을 바꾼 박정희대통령흉상보존회가 접수한 고발장 탓이었다.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최 작가는 자신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이 지금은 소유권자가 없는 무주물인 까닭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은 현 문래근린공원 자리에 있었던 육군 제6관구 사령부가 5·16 군사정변에 성공한 뒤 1961년 7월쯤 세운 작품이었다. 최초 소유권자 육군 제6관구 사령부와 그 후신 수도군단은 이후 다른 부대로 각각 편입돼 사라졌다. 아무도 박 전 대통령 흉상을 수거해 가지 않았다. 그냥 버려졌다. 육군 제6관구 사령부에겐 부대 상징물이었지만 부대가 사라진 뒤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철물 구조물에 불과했다. 1986년 4월 이 자리에 문래근린공원이 들어섰다.
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이 주민 불편의 원흉으로 떠올랐다는 점이었다. 훼손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인 2016년 11월 14일 박정희대통령정신문화선양회는 박 전 대통령의 99번째 탄생일이라며 무속인 30여 명을 초청해 작두를 타는 등 전통 굿판을 벌여 주민 민원 수십 건이 발생했다.
최황 작가. 일요신문DB
소유주가 불명확한 까닭이었다. 영등포구는 이에 대해 “흉상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아 우리 마음대로 철거하기도 힘들다”고 답한 바 있었다. 또 “실무진 선에서 철거 문제로 회의를 했지만 우선 소유권이 애매한 상태”라면서 “군부대에서 만들었지만 그 이후로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 남의 사유 재산이 될 수 있는데 임의로 철거를 할 수 없다. 소유자가 나타나면 철거를 요청한다든지 관리 방안을 물어봐야 하는데 주체가 마땅치 않다. 박정희대통령정신문화선양회도 관리만 하지 소유권에 대해선 모른다고 한다”고 반응했다.
이런 상태에서 검찰은 특수재물손괴로 최황 작가를 기소했다. 진지했다. 재판부에 최 작가 징역형까지 요청했다. 2017년 10월 최 작가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이윽고 열린 1심에서 영등포구청은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이 자신들 소유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구청의 직무유기를 고백하는 자리가 된 셈이었다. 영등포구청이 흉상 소유를 주장하게 되면 이제껏 주민 민원을 무시한 직무유기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영등포구청엔 박정희 흉상에 대한 관리대장조차 없었다. 법적으로 흉상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어떤 서류나 문서조차 전무했다. 증인으로 법정에 선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흉상의 관리대장이 있느냐?“ 혹은 ”해당 흉상의 소유권을 법적으로 보장할 만한 서류가 있느냐?“는 최황 작가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최황 작가는 ”흉상의 건립주체, 건립시기, 취지, 형태 등은 ‘자연경관을 보호하고 시민의 건강, 휴양 및 정서생활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설치된 ’공원시설‘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공유재산법 시행령 제49조에서 규정한 ’공유재산 대장‘에 이 흉상은 없다. 소유주가 없는 물건은 재물이 아니니 재물손괴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영등포구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영등포구청이 박 전 대통령 흉상의 철거와 존속, 이동에 대해 갈등을 겪고 명확한 의사를 표명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소유권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은 이미 영등포구청이 지난 1988년 시효 취득했다. 흉상 주변에 울타리를 설치하는 등 영등포구의 소유물로서 관리해온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군 부대가 버리고 간 철물 구조물을 훼손한 한 사람을 두고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유사한 불법행위에 엄중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진지하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재판에서 법원이 벌금 100만 원을 선고하자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하기까지 했다.
벌금 100만 원 통지서를 받아 든 최황 작가는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 돈을 낼까 유치장에서 하루에 10만 원씩 차감해 감방 생활을 할까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유치장 생활을 택한다면 또 다른 행위 예술이 될 예정이다. 그런데 그는 9월에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그는 “곧 납부기한이 다가온다. 안 내면 지명수배가 될 텐데 고작 벌금 100만 원으로 경찰이 날 바로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일단 눈앞에 전시회를 잘 마치고 고민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다음 타깃은 공원 잔디밭이다 루돌프와 산책하는 최황 작가. 사진=일요신문 DB 그는 7년 넘는 세월 루돌프와 함께하며 올림픽공원을 수백 차례 돌았다. 그러면서 비슷한 큰 개를 많이 만났다. 루돌프 같은 리트리버종은 올림픽공원 근처에 약 스무 마리 정도 됐다. 날마다 산책을 하다 보니 자주 보이는 개와 사람이 눈에 익었다. 그 많은 개 가운데 지금까지도 공원에서 마주치는 개는 딱 한 마리다. 그는 눈에 익은 사람인데 개가 안 보이면 종종 그 사람에게 개의 안부를 물은 적 있었다. 대답은 하나였다. 지방 친척이나 지인에게 보냈다는 대답이었다. 우리가 소비하는 반려동물 모습은 늘 아름다운 면뿐이다. 그가 루돌프와 보낸 지난 7년은 여느 미디어에서 나온 것처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로 가득한 긍정의 전반기였다. 그는 “앞으로 있을 세월에는 보여주기 싫은, 보기 싫은 모습이 하나둘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 빈도가 점점 늘어나다가 마지막엔 상상조차 하기 싫은, 하지만 분명히 눈 앞에서 마주칠 죽음까지 이어진다. 그는 우리가 그런 후반기를 잘 모르고 관심조차 없다. 그런 모습을 마주할 용기 없이 한 생물의 생명을 책임지겠다고 쉽게 행동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에서 그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서울시설공단과 작은 전쟁에 돌입했다. 루돌프에게 “죽기 전에 올림픽공원에서 ‘반려견 잔디 출입 금지’ 규정을 없애줄게”라고 약속한 까닭이다. 서울 주요 공원 잔디밭엔 반려동물이 출입할 수 없다. 잔디 생육 등의 이유가 보통 붙는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잔디밭에 들어가면 관리인이 호루라기를 불며 나가라고 외친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 명인 나라의 현실이다. 그는 “공원이란 게 뭔지 우리는 고민해 봐야 한다”고 했다. 최훈민 기자 |
상징? 미학적 고민 없으면 ’표현의 부자유‘일 뿐 최황 작가는 올림픽공원 근처에 산다. 올림픽공원 정문에는 ’세계평화의문‘이라는 거대 조형물이 자리한다. 그 가운데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그리스에서 가져왔다는 성화가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다. 성화 앞에 선 최황 작가와 반려견 루돌프. 그는 성화를 납치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일요신문 DB 그는 어떠한 물체에 과도한 상징성을 넣는 한국의 기본 정서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2015년 12월 육군은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평화의 발’이라는 조형물을 세웠다. 2015년 8월 4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때 다리를 잃은 김정원·하재헌 중사의 군화 신은 발목을 기억하자는 취지였다. 군은 피해자를 제막식에 초청했고 정치인은 박수를 쳤다. 지뢰로 발목을 잃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우려 피해자에게 사라진 발목을 떠올리도록 한 셈이었다. 최황 작가는 이 행사를 두고 “소시오패스가 기획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될 정도의 행사였다”고 했다. 직접 보여주는 이른바 예술 탈을 쓴 ’포르노‘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학적 고민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 어떤 의미를 찾을 수도 없을 정도로 나태하고 심지어 악의적인 행태”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예술작품이라 불리는 조형물에 ’표현‘이 안 들어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는 그런 작품을 ’표현의 부자유‘라고 비판한다. 그는 피해자를 본뜬 작품이 피해자 자체를 넘어서 상징이 되는 걸 경계한다. 얼마 전 소녀상에 침을 뱉고 조롱한 남성 4명 관련 ’중앙일보‘는 당시 ’나 죽으면 저 소녀상들은 어쩌나‘라는 문장을 뽑아 이 사건을 보도했다. 기사에는 “소녀상 훼손은 단순한 동상 훼손이 아닌 살아있는 인격체를 모독하는 것”이라며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달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진척이 없다”는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 발언도 담겼다. 이 사건을 두고 최황 작가는 한마디를 보탰다. “미학이 빠진 표현의 부자유가 민족주의 사관과 화학적으로 결합하면 건드려선 안 되는 성물이 된다. 아직 피해자가 생존했다. 논의할 가치가 충분한 다양한 층위의 문제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녀‘의 형상에 이 거대한 담론을 함부로 박제한 것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는 건 지식인이나 비평가의 나태를 넘어 그 존재 가치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고 했다. 그에겐 사람이 먼저다. 작품이 피해자보다 앞서 더 큰 상징이 되는 걸 거부한다. 그는 말했다. “인간보다 위대한 작품은 없다.” 최훈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