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최근 문제가 제기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 DLF(파생결합펀드)와 DLS(파생결합증권)에 대해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가운데, 해당 상품을 최다 판매한 우리은행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사진은 서울 중구 소공로 51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사. 박정훈 기자
특히 우리은행은 평균 예상손실률이 95.1%에 달하는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상품’만 1255억 원어치를 판매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해당 상품 전체 판매액 1266억 원 가운데 NH투자증권에서 판매된 11억 원을 제외하고 모두 우리은행에서 판매됐다. 이 상품은 지난 7일 기준 판매 금액 전체가 손실구간에 진입한 상태로, 현재 금리가 오는 9~11월 도래하는 만기까지 유지될 경우 예상 손실금액은 1204억 원이다.
금융당국은 해당 상품의 판매가 우리은행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우리은행이 자산운용사의 상품 설계 과정에 관여해 ‘OEM펀드’를 판매했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상품의 설계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점검할 계획을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감원은 상품의 판매사인 은행과 발생사인 증권사, 운용사 등을 대상으로 관련 검사국이 연계해 이달 중 합동검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OEM펀드’란 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과 같이 판매사인 은행의 지시대로 자산운용사가 펀드를 구성해 운용하는 상품이다. 본래 파생결합상품의 경우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등에서 설계해 은행에 마케팅하면 은행에서 상품의 리스크와 수익 등을 고려한 뒤 고객에게 판매한다. 증권사·자산운용사→은행→개인투자자로 이어지는 판매구조다. 그러나 OEM은 판매사인 은행이 자산운용사에 주문을 넣어 상품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위법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펀드를 발주하는 ‘OEM펀드’는 자본시장법 위반이므로 금지돼 있다”면서도 “언제나 법을 어기는 회사가 존재하는 만큼 위법행위 가능성은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지난 6월에도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OEM펀드 논란이 불거졌던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등에 징계를 내린 바 있다.
우리은행에서 판매한 상품은 IBK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에서 DLS를 발행했고 ▲교보악사자산운용 ▲유경PSG자산운용 ▲KB자산운용 ▲HDC자산운용 4곳에서 해당 DLS를 담은 DLF를 만들어 은행에 판매했다. 그러나 이들 금융사보다 판매사인 우리은행의 타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앞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판매사였던 은행은 불완전판매 문제까지 불거질 가능성이 크지만, 운용사 입장에서는 직접 판매한 것이 아니라 민원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은행의 상품 판매 시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서 이미 글로벌 금리 인하를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이 손실 가능성이 큰 제품을 판매했다는 것.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상품의 경우 -0.2%를 원금 보장선으로, 만기 때 금리가 원금 보장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3~5% 수익이 나지만 원금 보장선 미만으로 하락할 경우 0.1%포인트(p)당 원금의 20%씩 잃는 구조다.
그러나 우리은행이 해당 상품을 판매한 시기인 3월 말~5월 당시 이미 독일국채 10년물 금리가 0.1%선에 미치지 못했으며, 하락세를 보여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NH투자증권과 IBK투자증권이 처음 해당 DLS를 발행한 지난 3월 21과 3월 22일 종가는 각 0.042%, -0.012%였고 4월 중 가장 최고치로 올랐던 지난 4월 17일에도 0.081%로 0.1%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연이어 하락세를 보인 금리는 지난 5월 31일 -0.203%로 떨어졌다. 지난 8월 13일에는 최저치인 -0.711%까지 내려앉았다.
일각에서는 불완전판매 논란과 함께 지난 1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우리금융지주가 우리은행의 실적 향상을 위해 무리하게 고위험 파생결합상품을 판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은행 내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우리은행은 자체적으로 상품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요소 여부를 조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윗선에서 판매를 권했음에도 판매한 직원들에게만 책임이 전가된다”는 불만도 새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우리은행 직원은 “본점에서 안전하다고 설명하며 판매하라고 권했는데, 판매한 직원들만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다른 시중은행 직원은 “상품 판매 당시 위험성을 고지하고 이를 녹취하는 만큼 불완전판매는 일부일 것”이라면서도 “애초에 본점에서 직원들을 영업으로 내몰고, 고객의 니즈보다 은행의 필요에 따라 상품을 권하도록 하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우리은행 관계자는 “파생결합상품 판매는 비이자수익 확대 노력의 일환이었다”며 “글로벌 금리 인하가 예상됐음에도 판매했다는 것은 외부에서 본 결과론이며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상품이 개발되거나 판매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키코 사태와 닮은꼴’ 금감원, 분조위 잇단 상정 계획 최근 불거진 ‘DLS 사태’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금감원 분조위) 결정을 앞두고 있는 키코(KIKO) 사건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DLS·DLF 상품은 키코 상품과 마찬가지로 원금손실의 위험이 있는 복잡한 파생상품이라는 점에서 불완전판매 여부가 핵심 사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키코 공대위)는 ‘DLS·DLF 파생상품 피해구제 특별대책위원회’를 꾸리고 DLS 피해자들과 함께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키코 공대위는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DLS·DLF 상품 판매 은행들을 형사고발할 계획이다. 조붕구 키코 공대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기업에서 개인으로 바뀐 것일 뿐 키코 때와 다를 바 없다”며 “전문가들 또한 독일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것을 파악했음에도 적극적으로 DLS 상품을 판매했다는 점에서 의도성이 다분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의 분쟁조정위원회도 비슷한 시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키코는 분조위 상정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렵고, DLS는 만기가 당장 다음 달이어서 서둘러야 한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DLS·DLF 상품 관련 분쟁조정 신청은 29건이며, 앞으로 신청 민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금감원 분쟁조정국 관계자는 “키코 건은 최대한 조정을 거쳐 양측의 절충을 이루기 위해 지체되고 있는 상황이며, 최대한 신속히 진행할 것”이라며 “DLS은 오는 9월 만기가 돌아오면 소비자들이 더욱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돼 조사와 법률 검토가 끝나는 대로 분조위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