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최대주주인 한진칼과 대립 중인 KCGI(강성부 펀드)가 돌연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 그 속내에 업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강성부 KCGI 대표에 따르면 KCGI는 최근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참여하기 위해 투자설명서를 받아 검토하는 단계로, 국내외 대기업과 투자자 등 여러 가능성을 놓고 컨소시엄을 구성하기 위해 힘쓰는 중이다. 한진칼 주식도 매도하지 않고 유지하면서 꾸준히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강 대표는 이날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무리한 M&A(기업 인수·합병)에 따른 높은 부채비율, 과당 경쟁 등으로 재무구조가 좋지 않다”며 “아시아나를 인수한 뒤 대한항공과 노선 구조조정 등으로 양대 항공사간 출혈경쟁을 막고, 감시·견제로 양사가 외형보다 내실에 힘쓰도록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KCGI가 실제 인수 의지가 있다기보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서 밀리는 분위기여서 아시아나로 눈을 돌려 신규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KCGI는 올 초 한진칼 지분을 15.98%까지 늘렸고 그 과정에서 주가가 크게 뛰었다. 그러나 한진칼 ‘백기사’ 델타항공이 등장하면서 한진칼 주가가 연일 하락했다.
주가 상승기 높은 단가로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KCGI는 주가가 떨어진 만큼 투자자들한테 손해를 입히게 됐다. 경영권 분쟁을 포기할 경우 손실이 더 막대해지는 만큼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아시아나 인수전에 눈을 돌려 신규 투자자들을 마련하는 한편,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대응할 자본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기존 투자자들의 불안을 없애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KCGI가 한진칼 지분을 계속 사들이면서 주가가 치솟았지만 델타항공 참여 이후 주가 하락으로 투자자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다”며 “이미 주가가 너무 많이 떨어지면서 빠져나오기도 힘들다 보니 다른 추진 전략을 찾고자 아시아나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CGI(강성부 펀드)가 돌연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의도에 대해 업계에서는 실제 인수하려 하기 보단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서 밀린 만큼 아시아나로 눈을 돌려 신규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연합뉴스
투자은행(IB) 업계 시각도 KCGI의 아시아나 인수 참여 의지의 진정성에 회의적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강성부 대표가 아시아나 인수전 참여 이유로 밝힌 내용이 KCGI의 그간 행보와 일치하고, 상황에 따라 아시아나 최대주주가 아니라 2대주주로서 경영권에 참여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아시아나를 인수하려 하기보다 한진칼 투자자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등 한진칼 경영권 분쟁을 다른 앵글로 접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슈를 띄워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속셈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서 밀린 뒤 더 이상 이슈가 없어 잊히면 투자자들을 잃게 되므로, 이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의견이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는 “사모펀드는 투자자들이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해야 펀드가 유지되는 만큼 지속적으로 이슈를 만들어 펀드 수익률을 유지하고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경영에 간섭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 실제 인수 의지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봤다.
실제 인수하려 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KCGI가 2조 원 가까이 되는 인수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고, 그간 실적도 좋지 않아 신규 투자자들을 모집하긴 힘들 것이란 평가다. 아시아나를 인수하려는 기업의 경우 인수 후 당장 수익을 내기보단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해 아시아나를 정상화한 뒤 수익을 내려고 할 텐데 사모펀드는 단기 이익을 극대화한 뒤 매각하려는 전략을 쓰는 만큼 이해관계가 맞지 않다는 분석이다. 허희영 교수는 “KCGI가 투자자들을 모은다 해도 최대주주로 나서기엔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고, 대기업들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협력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예측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펀드는 실적이 좋아야 자금 흐름이 원활해지고 펀드를 늘리는데, KCGI는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서 성과가 나지 않았기에 투자자들이 손을 잡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들도 자금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경영권에 간섭하려는 KCGI와 굳이 협력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유력한 아시아나 인수 후보군으로 꼽히는 기업들 역시 손을 내젓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 자체가 자금이 넉넉한 상황이 아닌 데다 아시아나 말고도 훨씬 매력적인 투자처가 많다“며 ”사모펀드가 손 내민다고 응하려는 기업은 드물 것”이라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새삼스레 대한항공 부채비율 지적 나선 이유 한진칼과 경영권 분쟁에 나선 KCGI가 이번엔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을 지적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문제를 새삼 다시 지적하며 눈길을 끄는 이유에 대해 업계 안팎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지난 20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 부채비율이 884%로 전년(570%) 대비 높아졌다. 글로벌 항공사들의 경우도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정부가 보증 서주는 경우를 제외하면, 일본항공이나 델타항공 등 글로벌 항공사들의 부채비율은 200% 미만”이라며 “호텔 등 비수익성 자산을 매각해 부채비율을 줄여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KCGI는 올 초에도 한진그룹 측에 ▲지배구조 개선 ▲기업가치 제고 ▲고객 만족도 개선과 사회적 신뢰 회복을 뼈대로 한 ‘한진그룹 신뢰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공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항공업과 시너지 낮은 호텔사업 정리와 항공우주사업부 분사 뒤 기업공개(IPO) 등의 방안이 담겼다. KCGI가 새삼 부채비율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 IB 업계에서는 KCGI가 대한항공 경영권에 참여해야 하는 명분을 강조해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 부채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이미 시장에서 다 알고 있고, 최근 이 문제를 지적하는 곳도 없다“며 ”KCGI가 대한항공의 더 큰 견제세력이 되면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가 올라갈 것임을 강조해 투자자들에게 어필하려는 것”이라고 봤다. 관련 산업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예컨대 호텔 부문은 단기적으로 이익이 나기보다 꾸준한 투자에 따라 서서히 수익이 나는 사업이다. 항공우주사업의 경우 대한항공이 보잉 등 항공기를 구매하면서 수주하는 방식으로 파트너사와 협상하면서 사업을 키워왔는데, 이를 분사할 경우 사업은 더 성장할 수 없다는 반박이 나온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항공산업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없이 자본 논리에 따라 비수익성 자산을 현금화한 뒤 주가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