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은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 보복에 따라 세계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수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기로 보고 있다. 따라서 후임자를 고르는 작업도 과거보다 한층 신중해질 것으로 점친다. 현재 차기 수출입은행장으로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인물들은 대부분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는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과 최희남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은 행시 29회로 은 행장과 2기수 차이다. 고형권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는 30회, 이병래 예탁결제원 사장은 32회 출신이다. 이밖에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27회로 은 행장과 동기다.
금융권은 30회 출신인 김용범 전 금융위 부위원장이 기획재정부 제1차관으로 임명되면서 29회인 유광열·최희남 두 사람이 가장 유력한 후보인 것으로 보고 있다. 유광열 수석부원장은 국제금융협력국장을, 최희남 사장은 국제경제관리관을 역임한 기획재정부 정통 관료 출신들이다. 두 사람 모두 ‘국제금융통’으로 분류된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이 금융위원장에 내정되면서 차기 수출입은행장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역대 금융위원장 중 3명이 수출입은행장 출신이 선임되면서 더욱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 사진은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의 2018년 신년간담회 모습. 박정훈 기자
유광열 수석부원장은 서울대 경제학 학사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졸업하고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마쳤다. 2011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관을 지냈고 이후 국제금융심의관, 국제금융협력국 국장 등을 지내며 국제금융 감각을 키웠다. 2014년부터는 금융위에서 금융정보분석원장과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2016년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을 지냈으며, 2017년에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2017년 11월부터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맡고 있다. 기재부 내부적으론 행정고시 29회인 그의 승진이 조직 안팎의 서열상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국부펀드 KIC를 이끌어온 최희남 사장도 만만치 않은 후보다. 최희남 사장은 1984년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피츠버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1985년 행시 합격 후 재무부에서 국제금융과 등을 거쳤으며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 과장, 국제통화기금(IMF) 대리이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협력국 국장, 국제금융정책국 국장, 국제경제관리관 등을 거치며 국제금융 쪽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앞서 은성수 후보자도 KIC 사장을 지낸 후 수은 행장으로 발탁된 바 있다.
고형권 대사는 서울대 경제학 학사, 콜로라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기획예산처와 기획재정부 등을 거쳤으며 2017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기획재정부 제1차관을 보냈다. 2017년 2월부터 5월까지는 아시아개발은행 이사를 지냈다.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꾸준히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이다. 행시 27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을 지냈다. 다만 은 행장과 같은 기수여서 동기가 장관급 금융위원장으로 승진하는 데 차관급 자리를 이어받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차기 수은 행장 임명 절차는 금융위원장 선임 절차가 마무리된 후에야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 때문에 후임자 선임까지는 두 달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수은 행장 인선에 따라 금융 공기업을 위주로 연쇄적인 인사 이동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더욱 주목받는 대상”이라고 전했다.
사실 일반 금융소비자와 접촉이 거의 없어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을 뿐 수출입은행장은 그동안 금융위원장으로 가는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2008년 금융위원회 출범 이후 임명된 역대 7명의 금융위원장 가운데 3명이 수출입은행장 출신이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과 최종구 현 금융위원장, 은성수 차기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수출입은행을 거쳐 금융위원장 수장을 맡았다. 진 전 위원장은 2008년 7월 수출입은행장으로 취임한 지 반 년 만에 금융위원장으로 선임됐고, 최 현 위원장은 2017년 3월부터 약 4개월간 수출입은행을 맡은 뒤 금융위원장으로 직행했다. 은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2017년 9월 이후 2년간 수출입은행을 맡았다.
금융권은 금융위원장에 유독 수출입은행장 출신이 많은 배경으로 수출입은행이 전통적으로 기획재정부 출신들의 ‘텃밭’이었다는 점을 꼽고 있다. 기재부 출신인 신동규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양천식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수출입은행장으로 임명되면서 이 자리는 ‘재정부 1급 공무원의 영전 자리’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수출입은행장은 기재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라는 점과 관련이 깊다.
역대 수출입은행장들 중 기재부 관료 출신이 아니었던 인물은 손에 꼽힐 정도다. 수출입은행을 설립한 이래 총 20명의 은행장 중 17명이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 이광수 기업은행장, 류돈우 주택은행장만 비관료 출신이다. 금융권 다른 고위 관계자는 “수출입은행장은 1976년 설립 이래 40여 년간 기재부 출신이 맡아온 자리”라면서 “금융위원장 후보자 리스트에 수출입은행장이 올라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