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DLS, DLF는 풋옵션 매도 포지션이다. 상품 가입자가 권리 가격을 수취한 대가로 금리하락의 위험을 떠안는 구조다. 독일이나 영국 국채 금리가 오르면 일정 수준(연 3.5~4%)의 이익이 나지만,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원금손실이 발생한다. 특히 독일 국채 관련 DLS의 경우 손실 구간에서는 무려 250배의 손실배수가 적용됐다. 기껏해야 4% 벌자고 원금을 모두 건 게임이다. 그만큼 금리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확률이 낮아야 의미 있는 상품이다.
유럽 국채 연계 파생금융상품(DLS) 손실로 은행권이 쑥대밭이 되고 있다. 사진은 관련 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은행 본점. 우태윤 기자
9월 손익이 확정되는 3월 판매분의 경우 이미 독일 국채(10년) 금리가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했을 때다. 5월 판매 때는 이미 독일 국채금리가 전저점인 -0.2%가 도달했다. 충분히 금리가 하락했으니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을 수 있지만, 6월에는 사상 최저인 -0.3%도 돌파했다. 영국 국채(10년)는 7월에 전저점(0.64%)을 돌파한다. 전저점 돌파는 꽤 중요한 정보다. 추세의 붕괴를 의미할 수 있다. 손실확률이 극히 낮아야 의미 있는 상품인데 판매한 지 100일도 안 돼 위험이 현실화된 셈이다.
옵션은 상대가 있는 거래다. 풋옵션 매도를 한 DLS 투자자들은 낭패를 보게 됐지만, 풋옵션 매수를 한 이들은 ‘대박’이 났다. 이들은 기껏해야 권리행사 가격을 치른 정도의 손해를 감수했는데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됐다.
이번 DLS 상품의 설계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DLS를 발행하고 DLF를 운용한 것은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지만 ‘판’을 짠 것은 글로벌IB라는 뜻이다. 이들은 한국에 풋옵션 매도 상품을 설계만 해주면서 다른 곳에서는 풋옵션 매수 포지션을 구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대수익보다 위험부담이 큰 포지션은 한국에 넘기고, 자신들은 위험부담은 적고 기대수익은 큰 쪽에 선 것이다. 상품을 설계만 해주고 발행하지 않은 점이 교묘하다.
특히 이번 상품들의 기초자산인 독일과 영국 국채 금리는 유례없는 하락 국면을 보인다. 세계에서 무려 16조 달러의 국채가 마이너스 영역이다. DLS를 발행한 증권사와 이를 DLF로 운용한 펀드회사는 시장상황과 수익률 전망에 대해서는 최전선에 있었다. 국제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은 그동안에도 존재해왔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상황, 그동안의 옵션 프리미엄 추이와 반대편인 풋옵션 매수 포지션에서 이상 징후를 감지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내 리스크관리위원회는 현재까지 DLS 상품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은행 모두 사외이사 3명과 비상임이사 1명으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구성한다. 우리은행 리스크관리위원회는 올해 들어 6번 열렸고, 하나은행 리스크관리위원회는 올해 지난달까지 3번 열렸다. 금융소비자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시중은행들은 최근 강화되는 소비자보호 기조에 맞춰 여러 체계를 마련했는데 이게 유명무실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상품담당 부장은 “통상 발행사와 판매사 간에는 수시로 협의와 의견 전달이 이뤄진다. 수익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사건이나 조짐이 파악되면 서로 협의하고 어떤 대책을 수립할지 논의하는 게 보통이다. 이번 건은 손실구간에 진입한 후에 반등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적극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게 아닌가 여겨진다. 현실적으로 고객에게 손절을 권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서 95% 이상 판매된 DLS는 대부분 최고위험등급인 1등급 상품으로 분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들이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진행되는 투자성향 설문조사에서 ‘위험 회피’보다 ‘수익 추구’ 성향이 월등히 강해야 추천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위험이 큰 만큼 상품을 판매해서 얻는 수수료 이익은 크다. 이번 DLS의 경우 선취 판매수수료가 1~1.5% 수준으로, 최소 1억 원짜리를 팔면 100만~150만 원의 수수료 수익이 생긴다. 기대수익은 연 3.5~4%다. 6개월 만기 상품이니까, 원금 대비로는 잘해야 1.75~2%의 수익률이다.
한편 국회 정무위원회 내부에서는 오는 10월 진행할 국정감사 때 문제가 된 상품 판매 비중이 높은 금융기관의 책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금감원이 고강도 현장검사를 예고했지만 국정감사 전 결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열희 언론인
옵션이란? 사는 것이 콜(call), 파는 것이 풋(put)이다. 옵션은 콜 매수와 매도, 풋 매수와 매도로 나뉜다. # 콜옵션 매수 일정 기간 후에 정해진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권리다. ‘갑’이란 상품이 있다. 현재 가격은 100원이다. A는 이 상품의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 한 달 후에도 100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10원을 주고 샀다. 한 달 후 상품 가격이 150원이 되면 A는 50원만큼 싸게 ‘갑’을 살 수 있고, 권리를 위해 지불한 10원을 제외하고도 40원의 이익을 얻는다. 반대로 한 달 후 상품 가격이 50원이 될 수도 있다. 이때 A는 굳이 비싼 값에 이를 살 필요가 없다. 권리행사, 즉 옵션을 포기하면 치른 비용 10원만 손해를 본다. 콜옵션을 매수하면 ‘갑’의 가격이 오름에 따라 그만큼 무한대의 이익이 가능하다. 100원짜리 상품이 1만 원이 되거나 1억 원이 돼도 그만큼의 차익을 거둘 수 있다. 상품 가격이 낮아지면 손실은 권리를 사는 데 치른 값 10원뿐이다. # 콜옵션 매도 일정 가격에 상품을 팔아야 할 의무다. ‘갑’의 가격이 150원이 됐다면 40원의 손실을 봐야 한다. ‘갑’의 가격이 하락하면 콜옵션 매수자가 권리를 포기할 것이므로 10원의 이익을 볼 수 있다. 문제는 값이 급등할 경우다. ‘갑’의 값이 1000원이 됐다면 900원이나 싼 값에 상품을 넘겨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무한대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오른 가격이 아니라 애초 가격, 즉 100원에 상품을 매수했다면 900원의 손실은 평가손실일 뿐이다. # 풋옵션 매수 일정 기간 후 정해진 가격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권리다. 현재 100원인 ‘갑’을 한 달 후에도 100원에 팔 수 있는 권리를 10원을 주고 샀다고 치자. ‘갑’의 가격이 50원이 되면 50원만큼 차액을 얻는다. 150원이 되면 권리를 포기하면 된다. 풋옵션을 매수하면 이익은 값이 오른 만큼 무한대로 가능하다. 손해는 권리값 10원에 한정된다. # 풋옵션 매도 일정 가격에 상품을 사야 할 의무다. 10원의 가치를 내고 풋옵션을 매수한 사람에 대한 의무다. 100원짜리 상품이 한 달 후 10원이 되더라도 100원에 사야 할 의무다. 하지만 상품가격이 150원이 됐다면 풋옵션 매수자는 권리행사를 포기한다. 즉 풋옵션 매도자는 권리를 판 가격만큼의 이익만 가능하다. 반대로 손실은 상품가격만큼 볼 수 있다. 만약 여기에 차입(leverage)이 동원됐다면 손실액은 더욱 커진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