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에 위치한 셀트리온 본사. 이종현 기자
셀트리온은 더 공격적으로 제약·바이오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정진 회장은 지난 5월 ‘셀트리온그룹 비전 2030’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는 2030년까지 40조 원을 투자해 글로벌 1위 제약사 화이자를 따라잡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 회장은 구체적인 전략도 발표했다. 인천과 충청북도를 거점으로 바이오산업 밸리를 조성, 오픈이노베이션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서 회장은 투자계획으로 ▲인천 송도 바이오의약품 등 의약품 개발 사업 20조 원 ▲바이오 원료의약품 공장 등 시설 확장 6조 원 ▲U-헬스케어 플랫폼 사업 10조 원 ▲글로벌 유통망 구축 투자 2조 원 등이다. 현재 셀트리온은 인천 송도에 19만 리터급 바이오의약품 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서정진 회장의 계획이 실현되면 국내외에 생산시설이 100만 리터까지 확장된다.
하지만 셀트리온과 서정진 회장의 투자 구상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셀트리온의 지난해 매출은 982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387억 원으로 전년 동기(5078억 원)와 비교해 33.3% 감소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34.3% 줄어든 2536억 원을 기록했다.
‘램시마’, ‘허쥬마’, ‘트룩시마’ 등 셀트리온 복제약의 해외영업 및 마케팅을 담당하는 계열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경우 지난해 매출 7135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보다 22.5%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2017년 1574억 원에서 지난해 114억 원으로 1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고, 영업이익은 2017년 1537억 원에서 지난해 252억 원 손실로 적자전환했다.
서 회장의 장남 서진석 씨가 대표이사로 있었던 화장품 사업 계열사 셀트리온스킨큐어도 매출 38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6%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2017년 362억 원에서 지난해 172억 원으로 적자폭을 줄이긴 했지만, 당기순이익은 2017년 700억 원에서 순손실 229억 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올해 상반기 상황도 여의치 않다. 셀트리온은 올해 1·2분기 1607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지난해 동기 대비 27.3% 감소했다. 매출은 4567억 원, 당기순이익은 1413억 원으로 각각 10.2%과 12.5% 줄어들었다.
실적 악화에 대해 유럽에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가격경쟁이 심화된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는 자신들이 개발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의 가격을 유럽 일부 국가에서 종전보다 80% 인하하는 등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들이 바이오시밀러 후발주자들에 대해 강력한 견제에 나서고 있다. 2018년 초 시가총액 40조 원을 넘어서며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 3위까지 올라섰던 셀트리온은 현재 시가총액이 반토막 나 20조 원으로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주요 계열사의 영업이익이 3000억 원을 겨우 넘긴 상황에서 셀트리온그룹이 10년 동안 40조 원의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해도 시장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지만 발표 당시에는 근거를 가지고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며 “1년 영업이익이 1조 원도 달성하지 못했는데, 4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시장의 신뢰를 잃게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셀트리온그룹의 매출 증가에 대해 업계와 증권가 의견은 분분하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셀트리온의 트룩시마와 허쥬마가 올해 4분기 미국 시장에 출시되고 램시마SC는 올해 말 유럽 허가를 거쳐 내년 출시가 예상된다“며 ”이들 약품이 새로운 시장에서 성공할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시장 개척으로 실적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산업은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고 셀트리온이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는 성장 가능성과 미래가치 덕분“이라며 ”그러나 꾸준한 실적을 보여줘야 시장의 믿음을 살 수 있다는 면에서 보면 셀트리온의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실적은 불안감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셀트리온의 대부분 매출은 여전히 셀트리온헬스케어를 상대로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인천시청에서 열린 ‘셀트리온그룹 비전 2030 발표 기자간담회’에 투자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연합뉴스
한편 서정진 회장은 오는 2020년 말까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깜짝 선언을 해 화제를 모았다. 서 회장은 올해 초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인에게 중요한 건 나갈 때를 아는 것이고, 팔팔할 때 은퇴하겠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해왔다. 오랫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라며 “은퇴 후 전문경영인이 셀트리온 경영을 전담하도록 하고, 아들에게 이사회 의장을 맡겨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2014년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도 서정진 회장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은 분리돼야 한다는 것이 오랜 소신”이라며 “적절한 시기가 오면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 넘겨주겠다”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언급한 바 있다. 서 회장의 선언대로라면 셀트리온 경영에 남은 시간은 1년 4개월여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서정진 회장이 있지만, 셀트리온그룹은 예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룹 내부관리 등은 사실상 기우성 부회장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