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당시 1인 시위를 벌이다 연행되는 이랑 씨 사진=본인 제공
“태극기는 총, 칼이 아닙니다. 저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진실을 말하고자 일본에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일본 출입국 사무소 직원은 정당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입국을 거부하고 ‘조센징 바카’라는 등의 한국인 비하 발언을 했습니다. 1인 평화 시위는 안전하게 보장받아야 합니다.”
행위예술가 이랑 씨(44)의 1인 평화 시위는 2011년부터 시작됐다. 광복절이면 매년 일본을 찾아 위안부와 독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부당함을 알리는 항일 집회를 연 지도 햇수로 벌써 9년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강제 위안부 동원에 대한 항의 집회를 열기 위해 이 씨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 씨는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입국 심사대에서 붙잡힌 그는 곧장 조사실로 불려갔다. 그 뒤로 이틀이 넘는 조사를 받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일본인 담당 조사관으로부터 한국인 비하 발언과 인격 모독을 당하는 등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조사관에게 입국 거부 사유를 알려달라고 물었지만 담당 조사관은 명확한 사유 대신 ‘한국인은 불법 체류를 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당신의 외모가 위협적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전직 타투이스트였던 이 씨에게 문신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과거 입국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납득하기 힘든 이유였다. 그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설명하려 하자 이번에는 “당신은 말할 권한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사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해 오후를 넘겨서도 계속 됐다. 조사가 진행된 이틀 동안 대기용 의자가 전부인 대기실에서 잠을 잤다. 그동안 이 씨는 물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고 했다. 화장실을 갈 때는 직원 3명과 동행해야 했다. 수치심을 느낀 이 씨가 ‘테러 범죄 혐의로 잡혀 온 것이 아니니 화장실 내부까지는 들어오지 말아달라’고 미리 부탁도 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그는 “직원들은 내가 용변을 보는 것을 지켜보면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고 웃었다”고 말했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한국인 비하 발언이었다. 이 씨는 “담당 조사관이 중간 중간에 입을 내밀며 ‘조센징 바카’라는 말을 했다. 총 영사관에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전화 충전을 하고자 했다. 그러자 통역관이 ‘한국인은 일본인의 전기를 쓰지 말라. 지금 당장 충전을 멈추지 않으면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 뒤로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소지품 검사를 당했다”고 했다.
지난 9년 동안 시위에서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2012년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다 우익 단체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각종 언론에 얼굴을 비췄다. 이후 6년 동안의 시위는 일본 경시청(일본 도쿄도를 관할하는 경찰 본부)의 임의 동행 아래서 이뤄졌다. 특별 감시 대상이 된 셈이다. 그러나 올해처럼 입국 자체가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이 씨의 시위가 말 그대로 평화 시위였던 까닭이다.
결국 이 씨는 16일 오후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담당 조사관의 비인권적 행위에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한국영사관의 안일한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영사관에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
이 씨는 “15일 일본 조사관이 대사관에 전화 연결을 해줬다. 대사관 연락을 받은 영사관 행정 직원은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전화를 했다. 그런데 ‘공휴일이라 영사가 없다’는 말 외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식사도 하지 못한 상태였고 너무 지쳤다. 결국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사관의 무성의한 대응은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2012년 폭행을 당했을 때도 영사관은 ’개인 행동을 하다 당한 부상인데 왜 영사관을 찾느냐‘며 나를 방치한 적이 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이를 본 한 정치인이 항의 전화를 하고나서야 영사관으로부터 사과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모든 국민은 동일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데 그 부분이 참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주한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입국 거부 문제의 경우 해당 국가의 법무부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다만 국민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 힘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