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신한금융 서울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에 참가중인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단. 사진=아시아배구연맹
[일요신문] 겨울 스포츠가 열리는 실내 체육관, 여름철엔 별다른 스포츠 이벤트가 없이 잠잠하기만 하다. 하지만 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만큼은 열기가 뜨겁다. 20회 대회를 맞은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이 사상 최초로 국내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여자배구는 지난 2012 런던 올림픽, 2016 리우 올림픽 등을 거치며 대중적 관심을 쌓아 올렸다. 그 사이 열린 아시안게임에서의 호성적 또한 인기몰이에 힘을 보탰다.
대표팀에서 타오른 불은 V리그로 옮겨 붙었다. 인기 지표인 관중과 중계 시청률이 상승했고 지난 2018-2019 시즌에는 V리그 여자부 분리에 이르렀다.
이전까지 V리그 여자부 경기는 ‘독립적’이지 못했다. 언제나 남자부 경기와 같은 날 열렸다. 시간이 겹치지 않게 편성됐기에 평일에는 오후 5시에 경기가 시작됐다. 낮 시간 업무나 학업에 매진해야 하는 팬들로선 경기를 지켜보기 힘든 시간이었다. 여자배구 팬들이 늘어나며 경기 개최 시간에 대한 불만이 이어졌다.
‘독립’을 선언한 여자부는 성공적 시즌을 보냈다. TV 시청률, 관중 동원 등 다방면에서 큰 성장을 이뤘다. 매년 등장하는 유망주에 신생팀 창단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잠실실내체육관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은 이 같은 여자배구의 성장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관중 동원에 한계가 있는 평일 낮(22일 오후 4시 30분) 경기임에도 대만과의 8강 라운드 1차전에는 2000명(아시아배구연맹 발표 기록)이 관중석을 채웠다.
여름철 V리그 휴식기에 배구를 갈망하는 팬들에게는 대표팀 경기가 ‘단비’가 되고 있다. 최근 2~3년간 투어 형식으로 열리는 발리볼네이션스리그 등이 국내에서도 열리며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배구 인기에 힘입어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전 슈퍼매치도 양국을 오가며 열리고 있다. 비시즌 스타들을 보기 위해 체육관으로 배구팬들이 몰리는 모습은 더 이상 어색한 광경이 아니다.
대회를 유치하고 주관한 협회는 대회 진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협회는 “큰 무리 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대회 성패는 오는 주말(24일, 25일) 흥행으로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18일 오후 2시에 열린 한국과 이란의 개막전에는 3350명의 관중이 찾기도 했다.
대회 흥행에는 대표팀 최고 스타 김연경이 중심에 서있다. 김연경은 10년 넘게 대표팀 중심으로 활약해왔다.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까지 활동 폭을 넓히며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 ‘김연경 식빵언니’는 첫 영상 게시 이후 4일이 지난 23일 현재 구독자 6만 8000명을 돌파했다. 시간 단위로 구독자가 늘어나고 있다.
여자배구 흥행의 중심에는 김연경이 있다. 김연경 팬카페 회원들은 잠실실내체육관 일대에 응원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김연경은 단단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팬클럽도 보유했다. 공식 팬카페 ‘연경홀릭’ 회원들은 김연경의 경기장은 물론 국내 출입국 현장에도 자리를 지키며 선물 등을 전달한다. 이들은 대회 기간 동안 응원 현수막을 내걸어 김연경과 대표팀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김연경과 함께 오랜기간 대표팀에 몸담은 김수지, 양효진, 김희진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이들을 이어 이재영을 필두로 박은진, 이주아 등 젊은 선수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미래도 기대케 하고 있다.
다만 대회 초반에는 ‘홍보책자 오류 논란’이 일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한배구협회가 경기장 출입구 등에 비치한 책자에는 대표팀 선수단의 일부 정보가 잘못 표기돼 있었다. 김희진과 오지영의 소속팀과 신체 정보 등을 표기하는데 오류가 있었다. 이에 협회는 “수정 작업을 진행하겠다. 팬들과 선수단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대회 홍보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 경기는 늘어난 대표팀 인기에 관중석 상당수를 채우고 있지만 다른 나라 경기임을 감안해도 관중수가 현저히 적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아시아연맹 발표에 따르면 조별리그 기간 관중 100명을 채우지 못한 경기가 나왔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열정적인 국내 체류 외국인들의 자국 응원은 눈길을 끌었다.
이번 대회는 국내에서 열리는 첫번째 아시아선수권이다. 남자 대회의 경우 지난 2001년 개최된 바 있지만 여자 대회는 최초다. 협회 관계자는 “그간 투어 형식으로 열리는 월드컵이나 VNL 등은 국내에서 열렸지만 단일 여자대회 개최는 사상 처음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한남 협회장의 공약사항이기도 했지만 여자 대표팀이 중요한 일정(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있고 최근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어 대회 개최에 주력했다”고 덧붙였다.
한유미 KBSN 스포츠 해설위원도 후배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후배들이 열심히 한 덕분에 이런 대회가 국내에서 열릴 수 있게 됐다. 그간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한편으론 흔치 않은 경험을 하는 후배들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며 웃었다. 이어 “앞으로도 지금 같은 분위기를 유지시키고 더 발전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아시아선수권은 내년 1월 열릴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 대륙 예선의 예선전을 겸해 치러졌다. 13개 참가국 중 8위 이내에 들어야 하기에 아시아 여자배구 강국인 한국으로선 올림픽 예선 티켓 획득이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올림픽 티켓을 놓고 태국과 경쟁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르고 있다. 모의고사 격인 아시아선수권에서 올림픽 본선에 선착한 중국과 일본은 주전급 선수를 뺐다. 반면 한국과 태국은 최강 전력을 구축해 이번 대회에 나섰다. 23일 대회 8강라운드 2차전에서 만난 이들의 맞대결은 세트 스코어 3-1로 한국이 승리를 거두며 먼저 웃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