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는 8월 26일 코스닥시장본부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를 개최해 코오롱티슈진의 상장폐지 여부에 대해 심의한 결과 상장폐지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상장폐지 여부는 이날 오후 5시께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격론이 펼쳐지며 약 2시간 늦춰진 6시 50분께 결과가 나왔다. 이 자리에 배석한 코오롱티슈진 측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소 지연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기업 계열사에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진 건 상장실질심사 제도가 도입된 2009년 2월 이후 코오롱티슈진이 처음이다. 티슈진은 지난 2017년 11월 코스닥시장에 상장됐지만 약 1년 반 만에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8월 26일 코스닥시장본부 기업심사위원회를 열고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거래소는 5월 28일 식품의약안전처가 코오롱티슈진의 관절염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의 품목허가를 취소함에 따라 거래를 정지하고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여부 검토에 착수했고, 지난 달 초 심사 대상으로 정했다. 지난 7월 26일 이내에 기심위 심의의결을 거쳐 상장폐지 또는 개선기간 부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코오롱티슈진이 거래소에 경영계획서를 제출함에 따라 20일간의 추가 재검토를 거쳤다.
그동안 거래소 안팎에선 상장폐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개선기간을 부여해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코오롱티슈진 소액주주가 6만 명에 달하고 이들이 보유한 주식가치만 1800억 원에 이르는 만큼 상폐 결정에 대한 기심위의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여기에 최근 미국에서 인보사 임상을 담당했던 정형외과 전문의 등이 “인보사케이주에 대해 세포가 바뀌었더라도 품질과 안전성 및 효능에 영향이 없다”는 취지의 논문을 내면서 기대감을 키웠다.
그러나 기심위는 코오롱티슈진이 지난 2017년 6월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해 낸 서류에 인보사와 관련한 허위 사실을 기재했다고 봤다. 거래소 측에 따르면, 티슈진은 상장심사서류 제출 당시 인보사가 연골유래세포라고 주장했으나 식약처 조사 결과 종양을 유발할 수 있는 신장유래세포였다. 회사는 2017년 3월 이 사실을 위탁생산업체인 론자로부터 통보받았지만 그해 6월 상장청구 서류에 연골세포라고 적었다. 기심위는 이를 투자자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핵심 사안의 허위기재나 누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미국 임상 3상이 진행중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임상은 2018년 7월 진행됐다는 점도 허위기재한 것으로 봤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15년 5월 티슈진의 설비능력 확인을 위해 인보사 임상3상 시험을 중단하라는 서한(CHL)을 보냈다. 이에 따라 티슈진의 임상시험은 지난해 7월에야 재개 됐다가 올해 5월 다시 중단됐다. 하지만 티슈진은 임상이 중단된 2017년 상장심사청구 서류에 ‘임상 3상시험이 진행 중’이라고 썼다.
코오롱티슈진 측은 이날 기심위에서 “미 식품의약국의 임상중단은 설비 점검 등 통상의 이유였다. 업계에선 흔한 일”이라며 “장기간 이뤄지는 임상시험을 전체적인 틀에서 보지 않고 중단이라고 단정한 채, 제출 서류의 기록상 문제를 지적한 점은 오해”라고 주장했다. 인보사 성분이 바뀐 사실에 대해선 “상장 심사 당시에는 몰랐고, 성분이 달라져도 안전성 등 임상효과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내년 3월까지 상장폐지 결정을 유예하고 경영개선 기간을 부여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기심위 한 관계자는 “회사에 대한 투자 판단과 관련해 중요한 사실들에서 문제가 있었다“며 “회사 측 주장대로 몰랐다 하더라도, 중요한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점 역시 중과실에 해당한다고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기심위 결과 상장폐지로 결정 됐지만 실제 상장폐지로 이어지려면 추가 절차를 거쳐야한다. 코스닥시장 상장규정 제38조의2 제5항 및 동 규정 시행세칙 제33조의2 제8항에 따라 15거래일 (오는 9월 18일) 이내에 코스닥시장위원회에서 상장폐지 및 개선기간부여 여부 등을 심의·의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코오롱티슈진 측이 이의신청을 하면 심의가 한 차례 더 진행된다.
코오롱티슈진의 상장폐지 결정은 코오롱그룹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코오롱티슈진 주요 주주는 코오롱(27.26%)과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17.83%), 코오롱생명과학(12.57%)이다. 주요 거래처인 코오롱생명과학은 이미 올해 상반기 재무제표에서 한영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범위제한으로 인한 한정 의견을 받는 등 코오롱티슈진 사태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따라 코오롱티슈진과 코오롱생명과학은 장기전에 돌입할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들은 “2심격인 코스닥시장위원회에 성실히 임해 오해를 풀고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전할 것”이라며 “상장이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오롱 측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5월 중단했던 인보사 현지 임상시험에 사활을 걸 전망이다. 만약 미국에서 임상이 재개된다면 안정성이 입증되는 만큼 거래소가 상장폐지를 결정 하더라도 추후 심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 티슈진은 27일 오전 홈페이지를 통해 “미 FDA(식품의약국) 임상 3상 재개를 위한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미국 FDA가 2019년 5월 3일 당사에 발부한 공문(Clinical Hold Letter)에 기재돼 있는 ‘임상 중단(Clinical Hold) 해제를 위한 요구사항’에 대한 응답자료를 제출했다”며 “본 응답자료에는 세포 특성에 대한 확인시험 결과와 최종제품에 대한 시험 및 품질 관리 시스템 향상 등 시정조치 계획과 제품의 안전성을 평가한 자료가 포함됐다. 미국 FDA는 개발사인 당사가 제출한 자료에 대해 통상적으로 30일의 검토 기간을 가지게 된다”고 전했다.
코오롱티슈진은 27일 오전 “미 FDA(식품의약국) 임상 3상 재개를 위한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임상시험과 함께 넘어야할 산은 여전히 높다. 업계에선 코스닥시장위원회에서 이번 기심위 결정을 뒤집고 다른 결론을 내려면 티슈진이 사업비전을 추가로 제시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코오롱티슈진은 사실상 인보사 개발만을 위해 설립된 회사다. 인보사를 제외하면 별다른 수익원이 없다. 코오롱티슈진 상장심사 당시 인보사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 건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만큼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한다는 얘기다.
특히 티슈진은 기술특례상장 형태가 아닌 외국기업으로 상장했다. 기술심사 특례요건으로 상장하면 5년간 장기영업손실 규정 적용이 면제되지만 여기에 해당되지 않은 기업은 현행 코스닥 상장규정상 4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1년 더 영업적자가 나면 상장폐지 실질심사대상이 된다. 티슈진은 지난 2017년 454억 원, 2018년 340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도 114억 원 적자를 냈다. 인보사를 제외하면 티슈진이 올해와 내년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검찰 수사와 행정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라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반전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코오롱생명과학이 식약처를 상대로 낸 인보사의 허가취소 처분 집행정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검찰은 코오롱 측이 성분이 바뀐 것을 알고도 인보사를 판매하고 티슈진을 상장한 의혹 등을 수사 중이다.
간부 인사 등으로 수사팀을 재정비한 검찰은 최근 인보사 수사를 재개했다. 식품·의료범죄전담부인 형사2부는 인보사 성분 변경 등 약사법 위반 혐의뿐 아니라 코오롱티슈진 상장 사기 등을 수사하기 위해 증권·금융 전문 검사 3명을 보강했다.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에 대해선 출국금지와 자택 가압류 조치가 내려지는 등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상폐쪽으로 무게가 쏠린 만큼 앞으로 소액주주들과의 소송전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코오롱티슈진 소액주주는 5만 9445명으로 보유 주식 수는 451만 6813주(지분율 36.66%)에 달하는데, 상폐가 확정되면 이들의 주식이 모두 허공으로 날아간다. 현재 코오롱티슈진은 투자자와 환자 등으로부터 제기된 피소 가운데 드러난 것만 5건 이상이다. 총 손해배상 청구액 규모는 5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환자 767명이 코오롱티슈진과 코오롱생명과학을 상대로 7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기심위 결론은 사실상 1심이지만 상폐 결정이 나온 만큼 앞으로 소송 규모가 더욱 커질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