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4일 홈경기에서 전역 기념 행사를 가진 아산 무궁화.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일요신문] ‘군대 갔다 오면 철든다’는 말이 널리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꼰대’ 같은 이야기가 됐지만 K리그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리그 일정이 중반을 넘어선 시점에서 예비역이 된 선수들이 각 팀으로 돌아오며 반전을 예고하고 있다.
이적 시장 문이 닫힌 지 오래지만 K리그는 매년 또 한 번의 선수 ‘대이동’을 맞는다. 각각 경찰청(아산 무궁화)과 육군(상주 상무)에서 복무를 마친 선수들이 친정팀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예비역 신분으로 돌아온 이들은 각 팀에서 순위싸움에 힘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 중 전역을 맞이하는 K리거들
눈에 띄는 전역자들은 FC 서울 미드필드에 투입될 이명주와 주세종이다. 서울은 국가대표급 미드필더 2명이 동시에 복귀해 ‘전역 시즌’의 가장 큰 수혜자로 꼽힌다.
국가대표급 미드필더인 이들은 서울에 무시 못 할 플러스 요소다. 서울은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군팀 상주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단 한 명의 보강도 하지 않은 팀이다. 일부 팬들은 영입 선수가 0명이었던 서울의 상황을 ‘0입’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마침 선두권 경쟁을 벌이던 팀은 여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타고 있다. 어느덧 선두권에서도 한 발짝 멀어졌다. 선수단에 부상이 발생하며 전력 공백이 생겨나고 있다. 이명주와 주세종이 활력소 역할을 해줘야 한다. 측면 자원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서울은 이들이 가세하면 올 시즌 중앙에서 주로 활약하던 고요한을 여유 있게 측면으로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의 합류 시기(9월 6일 전역)는 ‘동기급’으로 엮인 아산 시절 동료 12인(8월 12일 전역)에 비해 1개월가량 늦다. 지난 2017년 말 국가대표에 소집되며 입대 시기가 미뤄진 탓이다.
#먼저 복귀한 경찰 출신 선수들
이명주, 주세종에 앞서 아산 무궁화의 12인은 각자의 팀으로 돌아가 리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특히 K리그1에서 잔혹한 잔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인천 유나이티드에선 예비역 선수들이 사회적응기간도 없이 중용되고 있다.
27라운드를 치른 현재 최하위로 처진 인천에는 김도혁이 돌아왔다. 입대 전부터 팀 주장을 맡아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던 그는 8월 18일 제주전에서 교체 투입으로 숨을 골랐고, 25일 포항전에선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1년 9개월의 공백이 무색하듯 넓은 활동량을 선보였다.
제주 안현범도 전역 직후 팀의 주요 자원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는 전역 이후 제주에서 치른 두 경기 모두 벤치에서 시작됐지만 후반 초반부터 팀에서 가장 빨리 투입되는 ‘특급 조커’ 임무를 받았다. 반대편에 배치된 윤일록과 함께 상대 측면을 활발히 공략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상위권 진출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대구 FC도 예비역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팀 중 하나다. 이들은 아산에서 돌아온 김동진과 김선민을 과감하게 첫 경기부터 선발로 내세웠다. 시즌 중 합류이기에 둘은 88번과 92번이라는 흔치 않은 등번호를 달았지만 팀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했다. 팀도 이 기간 2연승으로 ‘예비역 효과’를 봤다.
윤빛가람은 올 시즌 전성기에 가까운 기량으로 상주의 고공행진을 이끌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지난 8월 중순 대거 사회로 뛰쳐나온 아산 출신 선수들과 달리 상주의 병장들은 아직 전역일을 남겨두고 있다. 오는 9월 17일 기다리던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다. 비록 시기는 늦지만 이들이 미칠 영향력은 아산 출신에 못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K리그2에서도 중위권에 처진 아산과 달리 올 시즌 상주는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함을 자랑하고 있다. 매년 하위권으로 떨어져 강등 1순위로 꼽히던 이들은 올 시즌 11승 5무 11패로 승점 38점을 기록해 수원, 성남, 포항 등을 제치고 6위에 올라 있다. 현 상황을 유지하면 상위 스플릿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그 중심에는 부주장 윤빛가람이 있다. 자연스레 그의 전역 이후 활약상에도 팬들의 기대감이 크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처진다는 평가를 받는 상주 미드필드에서 그는 빛나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8골 4도움을 기록해 미드필더로선 드물게 공격포인트 10위권내에 자리 잡았다. 힘겨운 하위권 싸움을 펼치고 있는 원소속팀 제주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윤빛가람의 활약은 선수 개인적으로도 향후 움직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지난 2016년 중국 슈퍼리그 옌벤 푸더로 이적했던 그는 2017년 하반기, 군입대를 위해 제주에 임대 신분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군복무 중 옌벤 구단이 해체되며 이번 시즌 제주와의 임대 계약이 종료되면 자유의 몸이 된다. 현재 상주에서 보이고 있는 활약상을 제주에서도 이어 간다면 다음 시즌 대규모 계약을 따낼 수 있다. 그의 전역 후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수원으로 복귀할 김민우도 기대 받는 ‘예비 민간인’이다. 최근 대표팀과 잠시 멀어진 그이지만 지난해 월드컵까지 참가했던 경험이 있다. 군 입대 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났기에 수원 팬들은 그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기대되는 선수로 이명주와 주세종, 윤빛가람을 언급했다. 그는 “중원에서 팀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선수들이다. 팀이 위기를 겪고 있는 현재, 합류 시점도 절묘하다”면서 “이들 외에도 전역 선수 모두 리그에 변수가 될 수 있는 자원들이다. 대부분이 20대 후반, 선수로서 전성기에 올라 있는 선수들이다. 이들이 각 소속팀에서 활약으로 리그에 또 다른 재미를 만들어 낼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