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중신증권배. 세계최강 AI인 중국 골락시(왼쪽)와 절예가 격돌했다.
한국은 한돌과 돌바람 두 팀이 출전했다. NHN이 개발에 참여한 한국 토종 인공지능 한돌(HanDol)은 처음 출전해 3위에 올랐다. 전통의 강자 릴라제로를 꺾은 결과다. 일본이 엄청난 투자를 하며 비밀병기로 키웠던 AQZ도 이번 대회에서 베일을 벗었다. AQZ는 스위스리그로 펼쳐진 예선에선 3위까지 갔지만, 본선 8강 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릴라제로에게 패했다. 이 대회는 우승상금이 약 7700만 원으로 AI바둑대회 최고 금액이다. 생각시간은 예선에선 30분·20초 초읽기 3회, 본선은 1시간·초읽기 40초 10회가 주어졌다.
절예와 골락시는 모두 중국이 개발한 세계정상급 인공지능이다. 두 AI 모두 현재 기력이 알파고제로를 뛰어넘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준우승한 골락시는 중국칭화대와 ‘션커과기’란 기업이 협업해 제작한 인공지능이다. GOLAXY는 바둑을 뜻하는 Go와 은하수를 의미하는 Galaxy를 조합한 단어로 추측된다. 중국이름은 ‘성진’이다. 절예는 2017년 UEC배와 AI용성전, 2018년 텐센트배에서 우승했다. 텐센트배 결승에선 절예가 7-0으로 골락시를 이겼다. 골락시는 절예가 출전하지 않은 2018 중신증권배와 2019 보소프트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열린 비공식전에선 골락시가 절예를 6-2로 물리쳤다.
절예는 현존하는 바둑신이다. 골락시가 그에 가장 근접한 실력이다. 그런데 절예와 골락시가 대결한 이번 결승전은 승패보단 두 인공지능이 가진 기풍(?) 때문에 주목받았다. 거칠게 비유하면 절예는 이창호 9단, 골락시는 이세돌 9단이다. 이 차이는 AI가 형세 판단하는 설계방식 차이로 생긴다. 엘프고, 미니고, 릴라제로 등 대부분 바둑AI와 절예는 알파로제로가 남긴 논문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국산인공지능 바둑i(바둑이) 개발자 이주영 교수(고등과학원)는 “알파고제로 계열 인공지능은 덤7.5를 적용해 훈련한 가치망을 기반으로 승률과 형세판단을 한다. 몇천만 판 셀프대국을 벌이고, 그 승패로 학습한 가치망을 기준으로 한다. 이런 방식에선 몇 집을 이기느냐는 상관이 없다. 어떻게든 이기는 확률이 높은 수를 찾고 그 과정에서 손해수는 고려하지 않는다. 사실 둔 수가 ‘몇 집 손해’라는 개념조차 없다. 바둑이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알파고제로 계열 AI는 기풍이 예전 이창호 9단이 두는 바둑과 흡사하다. 두세 집 큰 자리를 양보하더라도 반집이라도 확실하게 이기는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
몇 개 인공지능은 알파고제로 계열과 다른 길을 걷는다. 이중 가장 강한 AI가 바로 골락시다. 마찬가지로 가치망을 형세판단에 활용하지만, 집 차이를 계산하고 이를 ‘형세판단 네트워크’에 반영하는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예를 들어 착점을 선택할 때 A수는 10집 가치, B수는 7집 등 향후에 가질 수 있는 집의 가치를 수마다 계산하는 방식이다. 현재 가진 집 차이가 최종 결과와 필연적인 연관이 있다는 아주 인간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계가를 곁들인 수읽기를 하기에 상대와 집 차이를 가장 크게 벌리는 수를 둔다. 마치 이세돌 9단이 “수가 보이는 걸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더 효율이 높은 수, 더 많이 이기는 수를 찾아간다. 그래서 기풍은 파괴적이다. 대마도 잘 잡는다. 집 차이를 계산하기에 ‘덤 설정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접바둑을 둘 때도 실력저하 현상이 미미하다. 형세역전 등 승패 명암이 갈리는 순간을 더 세밀하게 포착할 수 있다. 덤7.5를 기준으로 가치망을 형성한 ‘알파고의 자손들’과 큰 차이점이다.
이 차이를 아는 바둑팬은 골락시를 더 응원한다. 인간 최고수와 최강인공지능 간 실력 차이를 정확히 알고 싶기 때문이다. 앞으로 프로기사를 넉 점 접고 이길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현재 한돌, 바둑이 등 국산 AI들도 인터넷 바둑사이트에서 프로기사와 석 점으로 대결 중이다. 최근 유튜브에 바둑이와 석 점 대국을 공개한 진동규 7단은 “최선을 다해서 뒀는데 졌다. 아쉬움이 남지만, 다시 둬도 이기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넉 점 대국도 확신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미 많은 기사가 패했다. 인터넷 대국결과를 살펴보면 바둑이만 봐도 한국랭킹 10위권 내 최정상급 기사가 석 점을 깔고 겨우 한두 판 이기는 정도다. 이주영 교수는 일요신문과 전화인터뷰에서 “아마최강자는 바둑이도 넉 점으로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프로기사를 넉 점 접긴 어렵다”라고 말한다. 덤에서 자유로운 골락시라면 가능할까?
과거 20세기 일본 명인들은 ‘신과 치수는 석 점, 넉 점이면 목숨을 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제 인간이 신(?)과 쉽게 대결할 수 있는 시절이 왔다. AI시대엔 프로가 석 점으로 져도 전혀 창피할 이유가 없다. 단 넉 점에도 목을 걸어선 안 된다. 그만큼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속도는 놀랍다.
박주성 객원기자
AI바둑산책 #‘바둑이’가 두는 접바둑 포석 ●진동규 7단 ○바둑이(한국고등연구원 이주영 교수팀 개발) 인터넷 시험기: 267수 백불계승 프로가 석 점(세모 표시)을 깔았다. AI가 두는 수들이 현란하다. 백5와 7도 변을 넓게 쓰는 묘한 행마다. 프로는 미리 깔린 돌을 잘 지키는 우직함을 택했다. 접바둑을 잘 두는 요령이다. 백17을 본 프로가 감탄한다. 상대의 응수를 묻는 방법이다. 흑이 A로 두면 백은 하변 백을 살린다. B로 받으면 17은 멋진 활용이 되고, 백5는 사석으로 활용한다. #‘절예’ 대마 잡은 ‘골락시’ ●절예 ○골락시 중신증권배 결승 4국 :208수 백불계승 이세돌-알파고 대결처럼 인공지능간 5번기는 3-0으로 승부가 나도 다섯 판을 모두 채운다. ‘절예’는 알파고제로 실력을 뛰어넘은 AI다. 결승 4국에서 ‘골락시’는 대마를 잡고 절예를 꺾었다. 단초는 백1, 3, 5로 활용이었다. 이 응수타진이 후에 좌변 흑대마 생사를 압박하는 강력한 카드가 되었다. 결국 좌변에서 손해를 본 ‘절예’는 형세반전을 위해 무리수를 두다가 중앙 흑 대마(세모 표시)가 모두 잡혀 승부가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