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든 보수 빅텐트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조국발 후폭풍이 보수통합의 지렛대를 강하게 눌렀다. 핵심은 반문(반문재인) 연대다. 덩치를 키운 반문 진영이 단일대오를 형성, 더불어민주당과 일대일 구도를 형성한다는 게 보수통합의 골자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여의도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인사들도 하나둘씩 보수통합 문을 두드렸다. 문제는 판을 뒤집는 반전 카드가 있느냐다. ‘박근혜 탄핵’을 둘러싼 방법론부터 보수통합 3인방인 ‘황교안·안철수·유승민’의 동상이몽까지, 산 넘어 산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갖고 있다. 박은숙 기자
보수통합 실익은 명확하다. 20대 총선에서 제1당은 민주당(123석) 몫이었지만, 비례대표 및 지역구 득표율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앞섰다. 지역구 득표에선 새누리당(920만 690표·38.3%), 민주당(888만 1369표·37.0%), 국민의당(356만 5451표·14.9%) 순이었다.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도 민주당(25.54%)은 새누리당(33.50%)은 물론 국민의당(26.75%)에도 밀렸다. 옛 국민의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정치연대) 중 가장 큰 세력인 바른미래당 일부가 보수 빅텐트에 합류할 경우 반문 연대 파괴력은 제1당을 웃돈다. 한국당이 연일 ‘안철수·유승민’ 등 바른미래당 창업주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문 연대의 명분도 장착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치로 내건 빅텐트다.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남이 하면 불륜) 정국’은 반문 연대에 화룡점정을 했다. 한국당 내부에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 강행 카드를 쥔 청와대를 겨냥, “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정면 돌파를 택하기만 해봐라”라는 기류도 엿보인다. 조국 정국을 ‘청와대 vs 국민’으로 나눠 보수통합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도다. 8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진영 집회에는 1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기·승·전·조국 사퇴’를 외쳤다. 만에 하나 조 후보자가 자진 사퇴 등을 한다면, 보수진영으로선 금상첨화다. 기·승·전·조국 정국은 이러나저러나 보수진영에 ‘꽃놀이패’인 셈이다.
판은 깔렸다. 보수 야당부터 원외 정치세력까지 총망라했다. 한국당은 8월 27∼28일 이틀간 진행한 연찬회에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 측근으로 활동했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를 초빙했다. 황교안호가 출범한 지 6개월 되는 날이었다. 김 교수는 이 자리에서 ‘개혁적 중도보수 성향의 반문 연대’를 촉구하며 “유승민 안철수 오세훈 원희룡 홍정욱 등을 다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전 대표 측은 김 교수의 한국당 연찬회 강연에 대해 “안심(안철수 의중)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보수통합 과정에서 상징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김 교수를 초청한 인사는 다름 아닌 나경원 원내대표였다.
주목할 부분은 급물살을 타는 ‘황교안 감독론’이다. 한때 ‘선수 교체론’에 시달렸던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 대한 역할론을 주문하는 보수 인사들이 부쩍 늘고 있다. 황 대표도 8월 14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 초안에 없던 보수통합을 뒤늦게 추가할 정도로 빅텐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 김 교수는 공개적으로 “책임 있는 감독 역할을 한다면 충분히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플랫폼 자유와 공화’가 주최한 ‘야권 통합과 혁신의 비전’ 토론회에 참석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통합을 주도하는 세력은 당연히 ‘큰 집’이어야 하는 만큼 황 대표에게 야권 통합을 주도할 기회를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1년을 갓 넘긴 원 지사는 최근 예능프로에 뛰어들면서 여의도 복귀설에 휩싸였다. 한국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은 아예 ‘황교안 수도권 출마론’을 공론화했다. ‘플랫폼 자유와 공화’는 이명박(MB)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이끄는 보수 시민단체다.
‘황교안 감독론’ 이면에는 친박계를 제압하라는 비박(비박근혜)계의 시그널이 깔렸다. 비박계가 중도보수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탈박화’를 제시했다는 얘기다. 20%의 고정 지지층이 있는 큰 집(한국당)을 유지하지 않고는 중도보수 신당 출범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비박계 인사들의 보수통합은 ‘친박계 제거→중도보수 신당 창당’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황 대표가 탈박화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앞서 황 대표는 8·15 광복절을 앞두고 영남(이헌승 전 비서실장)과 친박(민경욱 대변인)계를 배제했지만, 비박계의 기대치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부 비박계 인사들은 “비서실장인 김도읍 의원(부산 북·강서을), 수석대변인인 김명연 의원(안산·단원갑), 공동 대변인엔 김성원 의원(동두천·연천) 등도 친박계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황 대표의 반전 카드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야 국정 주도권은 사실상 원사이드(일방적) 게임이었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경기 하방 우려와 갈라파고스 외교 등 악재가 산적하지만, 여전히 국정 지지도 40%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이탈한 지지층은 무당층이나 무응답층 사이에서 배회한다. 조국 정국에서도 ‘샤이 보수(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은 보수층)’가 깨어나는 ‘풍선 효과’는 없었다.
황 대표의 대표적인 반전 카드로는 ‘공천 개혁’과 ‘험지 출마’, ‘기득권 내려놓기’ 등이 꼽힌다. 새 피를 수혈하든, 사지에 출마하든, 당 대표직을 던지든 셋 중 하나는 해야 한다는 얘기다. 보수통합에 뛰어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황 대표를 향해 “정책은 없고, 인물은 친박 (일색)”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국당 한 관계자도 “최근 들어 ‘황교안 리스크’를 거론한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도 “보수통합을 놓고 경합 중인 나 원내대표보다 (보수통합의)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황 대표가 ‘진박(진짜 박근혜)’ 청산과 함께 수도권 험지 출격을 조기에 확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황 대표가 진박 청산을 기치를 내건다면, 당내 친박계와의 결별이 불가피하다. 되레 친박계와 우리공화당의 전략적 연대로 극우 세력의 파이만 커질 수도 있다. 진정한 의미의 보수대통합은 실현 불가능하다. 황 대표가 진박 청산에 실패한다면, 선수 교체론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21대 총선 전 ‘황교안 체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 앞서 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비문(비문재인)계의 잇따른 탈당에 결국 당권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에 넘겼다.
친박계를 껴안아도 문제다. 한국당이 탄핵을 부정하는 친박당으로 축소된다면, 유승민·안철수 등 중도보수 인사들의 선택지는 ‘마이웨이’밖에 없다. 친박계가 이들에게 ‘탄핵 반성문’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서다. 이 경우 보수진영은 ‘친박당 vs 중도보수 신당’으로 분파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진영 관계자는 “빅텐트 그림은 많지만, 이를 끌고 갈 구심점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당장 한국당 투톱인 황교안·나경원 지도부부터 보수통합을 놓고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인다. 황 대표는 친박계까지 아우르는 범보수통합을 원하지만, 나 원내대표는 중도보수 신당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보수통합의 키인 안철수·유승민 등은 마지막까지 몸값 키우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이외에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9월 넷째 주까지 ‘손학규·안철수·유승민’의 통합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예고, 두 창업자의 등판은 10월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보수통합이 총선 전 구성의 타이밍을 실기했을 때다. 앞서 2017년 5·9 대선 당시에도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비롯해 안철수·유승민·정운찬 등이 반문 연대 구축에 나섰지만, 결국 출범조차 못 했다. 당시 반문 연대 인사의 한 캠프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일부 후보 측에서 대선 주자 ‘추대’를 요구하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고 회고했다. 보수통합도 마찬가지다.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공천권 등 지분 나눠 먹기를 둘러싼 갈등에 빠진다면, 보수통합은 날아간다. 종착지는 일여다야 구도다. ‘총선(20대)·대선(19대)·지방선거(7회)’ 3연패에 이어 또다시 패배한다면, 보수진영을 기다리는 것은 장기간 침체다. 탄핵 정국 이상의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