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시리즈’에서 인기몰이를 했던 스파이더맨이 판권 문제로 마블을 떠나게 됐다. 사진=캡틴아메리카:시빌워 캡처
그렇다고 스토리의 변화 때문은 아니다. 요즘 영화계에선 스토리보다 계약이 중요하다. 스토리에 따라 계약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계약이 스토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2019년 마블과 계약이 종료됐고 스파이더맨은 디즈니와 소니픽처스의 판권 협상이 결렬됐다.
요즘 할리우드에서는 스토리보다 캐릭터가 중시되고 있으며 인기 캐릭터는 계약에 따라 움직인다. 거대한 자본의 흐름에 따라 캐릭터 판권 계약이 오고가며 생각하지 못했던 캐릭터 조합의 영화가 탄생하곤 한다. ‘창작’의 영역이 ‘자본’의 영역에 완벽히 가려지고 있는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로 마블 시리즈에 처음 스파이더맨이 등장했다. 비록 출연 분량은 적었지만 캐릭터 자체의 존재감이 확실한 스파이더맨의 등장은 전세계 영화팬들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통해 흥행 대박을 일궈낸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과의 묘한 부자 분위기를 연출하며 더욱 눈길을 끌었다.
톰 홀랜드가 맡았던 MCU의 스파이더맨. 사진=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캡처
이후 스파이더맨은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엔드게임’을 통해 가장 주목받는 캐릭터로 성장했다. 그를 아들처럼 여기는 아이언맨의 진심이 결국 그를 다시 어벤져스에 합류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블과 스파이더맨의 관계는 최근 개봉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으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마블은 일부 캐릭터의 판권 판매로 살 길을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스파이더맨의 판권이 소니픽처스에 넘어갔다. 이후 마블은 아예 월트디즈니에 인수됐다. 마블이 소니픽처스와 영화 공동 제작에 합의하면서 비로소 스파이더맨은 어벤져스의 일원이 됐다. 그렇지만 최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엄청난 흥행 성적을 기록하면서 마블과 소니픽처스 사이에 스파이더맨의 지분 조정을 둘러싼 협상이 시작됐고,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창작’의 영역이 중요하던 시대에는 스토리가 영화의 중심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했고 많은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지만 ‘자본’의 흐름이 중요해진 요즘 분위기에서는 스토리보다 캐릭터가 더 중시된다. 만화 제작사로 시작해 엄청난 인기 캐릭터를 보유한 마블의 경우 아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세계관까지 만들어 냈다. 이에 대항해 DC 코믹스도 자신들의 인기 캐릭터로 ‘저스티스리그’ 시리즈를 제작하며 ‘DC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들어냈다.
DC코믹스의 ‘저스티스리그’ 사진=저스티스리그 스틸컷
이런 측면에서 월트디즈니는 막강한 힘을 갖췄다. 캐릭터 사업의 선두주자였던 디즈니는 고유의 인기 캐릭터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데다, 마블과 스타워즈 시리즈의 루카스필름까지 인수했다. 마블의 인기 캐릭터들을 활용해 ‘어벤져스’ 시리즈와 이를 중심으로 한 마블 세계관을 구축한 디즈니는 최근 기존 인기 애니메이션을 실사영화로 제작해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역시 디즈니 영화가 극장가를 점령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런 흐름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어벤져스 시리즈에 스타워즈 캐릭터가 나올 수도 있다. 물론 월트디즈니라는 큰 틀 안에서도 마블과 루카스필름 사이의 협상이 필요해 그리 손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는 얘기다. 데스스타가 갑자기 지구를 공격하고 어벤져스가 이에 맞서지만 어려움을 겪게 되자 포스의 힘을 가진 제다이들이 지구를 돕는 스토리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이렇게 될 경우 배경이 현재가 되는 만큼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아주 먼 옛날 머나먼 은하계 저편에)’라는 문구로 영화를 시작할 수는 없게 되겠지만.
실사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인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캐릭터 콜라보레이션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미 애니메이션에선 그런 시도가 있어 왔다. TV 애니메이션 ‘리틀프린세스 소피아’가 대표적인데, 여기에는 디즈니의 유명 공주들이 등장해 소피아 공주를 돕곤 한다. 실사화가 진행된 만큼 여러 명의 공주가 동시에 등장하는 디즈니의 어벤져스 같은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가능한 데다, 어벤져스 시리즈나 스타워즈 시리즈에 디즈니 공주가 출연하는 영화도 충분히 가능하다.
마블코믹스의 히어로. 사진=마블 제공
다만 이런 흐름은 보다 창조적이고 재밌는 스토리를 위한 방향이 아닌, 캐릭터의 조합을 통한 흥행 가능성을 바탕으로 출연 캐릭터가 먼저 결정되고 이를 조합해내는 스토리가 마련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요즘 할리우드의 흐름은 인기 캐릭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셈이다.
심지어 프로 축구리그 같은 캐릭터 시장이 형성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선 스파이더맨이다. 그의 판권은 소니픽처스가 갖고 있지만, 스파이더맨은 마블로 이적해서 영화에 출연해 왔다. 그렇지만 수익 분배에 문제가 생겼으므로 다시 원 소속팀인 소니픽처스로 돌아갈 수 있다. 만약 소니픽처스가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판권 계약을 체결할 경우, 스파이더맨이 배트맨 원더우먼 등과 손을 잡고 세상을 구하는 영화도 가능하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FC바르셀로나의 메시가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하는 것만큼 충격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자본이 할리우드를 지배하는 상황에선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또한 경쟁 관계인 ‘마블’과 ‘DC’도 자본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DC의 슈퍼맨이나 배트맨 캐릭터가 마블로 임대돼 어벤져스 시리즈에 등장할 수도 있고, 반대로 헐크나 토르가 저스티리그에 출연할 수도 있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