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한국시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한 LA 다저스 투수 류현진.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두 경기 연속 7실점은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 있는 일이다. 3경기 연속 4실점 이상도 처음이다. 사이영상을 향해 질주하던 류현진(32·LA 다저스)한테 브레이크가 걸렸다. 8월 30일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4.2이닝 동안 10피안타 1볼넷 4탈삼진 7실점으로 무너졌고 평균자책점은 2.00에서 2.35로 치솟았다. 지역 언론인 LA 타임즈는 다른 류현진이 던지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류현진은 지난 3경기에서 14⅔이닝동안 25피안타 18실점을 기록했다.
과연 류현진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4명에게 최근 류현진의 경기력 저하와 관련된 의견을 들어봤다.
30일 류현진은 애리조나 타선을 상대로 3회까지는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그러나 팀이 3-0으로 앞선 4회 말, 몸에 맞는 볼로 출루를 허용하더니 2루타 두 방을 내주며 순식간에 3-4 역전을 당했다. 5회 초 다저스 타선이 1점을 보태 동점을 만들었지만 5회 말 류현진은 5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3실점을 내주고 말았다. 또다시 7실점 경기를 허용하게 된 것. 평소 득점권 위기에서 절묘한 볼 배합으로 위기를 극복했던 류현진이 5회 말 보인 5연속 안타는 전혀 다른 류현진을 보는 듯했다.
현지 언론에서는 류현진이 2014년(152이닝) 이후 가장 많은 157⅓이닝을 소화했다고 소개하면서 류현진의 체력을 걱정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진출 후 2013년 192이닝, 2014년 152이닝을 던졌다. 2015년 어깨 수술을 하면서 시즌을 통째로 쉬었고, 2016시즌에는 4.2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다. 2018시즌에는 82.1이닝만 소화하는 등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게 사실상 2014년 이후 5년 만이다.
먼저 허구연 해설위원은 류현진의 체력 저하보다는 상대팀 타선의 현미경 분석이 앞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류현진이 97마일 이상의 빠른볼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지 않나. 다양한 레파토리와 정확한 커맨드로 승부하는 투수다. 그런 류현진을 상대로 후반기 들어 상대팀의 집중력이 대단해졌다. 류현진의 패턴이 읽혔다는 느낌도 받았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부터 이번 애리조나전을 살펴보면 상대 타자들이 크게 스윙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공이 들어오길 기다린다. 이걸 이겨내려면 이닝마다 공 배합을 달리해야 하고 정교한 제구로 승부해야 가능해진다. 류현진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모든 경기를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홈런볼이 증가하는 추세다. 누구도 실투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앞으로는 공 배합이 더욱 중요해졌다. 상대 타자들이 준비하고 들어올 만한 계획을 완전히 헝클어놔야 한다. 비슷한 패턴의 마운드 운영은 실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허 위원은 애리조나전에서 배터리를 이룬 신인 윌 스미스의 노련함 부족을 지적했다. 경기 중 투수가 흔들리면 한 번 정도는 마운드에 올라가 짧은 대화라도 나누면서 흐름을 끊어줬어야 했다는 것.
“애리조나전 4회 무사 1,2루 상황에서 크리스티안 워커를 상대한 류현진의 초구가 포일(투수가 던진 정규의 투구를 보통의 수비로 충분히 잡을 수 있는데도 포수가 이를 놓치거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경우)이 나오며 무사 2,3루가 됐고 결국 2루타 2방을 허용하며 3-3 동점을 허용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포일 하나가 굉장히 컸다고 본다.”
류현진의 시즌 개막전 투구 장면. 류현진은 시즌 개막 이후부터 쉴틈 없이 달려왔다. 사진=연합뉴스
허 위원은 일부에서 제기하는 부상 의혹에 대해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경기 흐름이 아쉽기는 하지만 부상이 있었다면 다저스 구단에서 류현진을 경기에 내보낼 리가 있겠나. 이미 지구 선두를 확보한 상황에서 중요한 선수를 굳이 무리해가며 선발로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류현진이 잠시 부진하다고 해서 그걸 부상과 연결시키는 건 매우 억지스러운 일이다. 뉴욕 메츠의 노아 신더가드도 29일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3이닝 동안 9피안타 3피홈런 10실점을 기록했다.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에 오른 제이콥 디그롬(메츠)도 30일 컵스전에서 7이닝 5피안타(2피홈런) 7탈삼진 4실점을 헌납했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면 애리조나전에서의 류현진한테 피홈런이 없다는 점이다.”
허 위원은 류현진이 사이영상이나 평균자책점 1위란 타이틀을 내려놓고 편한 마음으로 남은 시즌을 치르길 바랐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했다. 남은 경기에서는 어떤 타이틀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시즌을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그것만 해도 류현진의 올 시즌은 성공한 것이다.”
송재우 위원은 애리조나전에서 그동안 우려됐던 류현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전반기 좋은 성적을 냈을 때도 가장 걱정됐던 부분이 후반기에 겪게 될 체력 저하였다. 애리조나전에서도 투구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빠른 타이밍에는 힘이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공을 밀어 던지는 등 평소 볼 수 없었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애리조나 선수들이 계속 바깥쪽 공을 기다리고 있었고, 바깥쪽 체인지업이 조금이라도 높게 들어가면 거의 다 쳐냈다. 류현진 입장에서는 ‘멘붕’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송 위원은 류현진이 어떤 형태로든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뛰어난 제구력으로 완벽할 정도의 투구를 했던 류현진에게 가장 필요한 건 휴식이라는 것.
“물론 류현진은 자신이 남은 시즌 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겠지만 그러려면 지금 휴식을 취하는 게 필요하다. LA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팀이다. 그 긴 시간을 함께하려면 체력이 회복돼야만 한다. 더욱이 다저스는 정규 시즌에 대한 부담도 없다. 지난번 목 부상으로 한 차례 부상자 명단에 올랐지만 한 번 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애리조나와의 경기를 중계한 김선우 해설위원은 류현진의 부진을 단순히 체력 저하로 보는 것을 경계했다. 애리조나전의 3회까지만 해도 보더라인에 걸치는 공들로 제구는 물론 볼 배합도 좋았다는 것.
“타순이 한 바퀴 돌고 난 4회, 류현진이 선두 타자인 로카스트로한테 몸에 맞는 볼을 허용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로카스트로에게 볼 카운트 2-3에서 결정구로 던진 게 몸에 맞는 볼이 나왔고, 빗맞은 안타가 2개 연속 나오면서 경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뉴욕 양키스전과는 달리 이번 애리조나 경기는 처음부터 류현진이 원하는 대로 커맨드가 이뤄졌다. 예상치 못했던 몸에 맞는 공, 빗맞은 안타들이 류현진에게 부담을 안겨줬다고 본다.”
김 위원은 투수들한테 ‘게임 운’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기는 경기가 되려면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거가 실투에도 홈런을 맞지 않는 등 투수한테 유리한 상황이 나와야 한다. 그런 장면이 한두 차례만 나타나도 투수들은 힘이 날 수밖에 없다. 애리조나전은 류현진이 잘못 던졌다기보다 게임 운이 없었던 경기였다. 영리한 선수니까 다음 등판 때는 아쉬운 부분을 잘 준비해서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MBC SPORTS+ 정민철 해설위원과 류현진. 사진=이영미 기자
류현진과 호형호제하는 정민철 해설위원은 최근 류현진의 부진을 한화 이글스에 빗대 설명했다.
“지난해 한화 이글스가 정규시즌 3위를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가을 야구에만 올라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정규시즌을 3위로 마무리했다. 류현진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류현진에게 가졌던 기대는 부상 없이 로테이션만 도는 것이었다. 그런데 류현진이 ‘황당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올렸고, 국민들은 류현진의 승승장구에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류현진이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나. 평균자책점 2.35는 여전히 메이저리그 전체 1위다. 이전의 기록들이 만화 같았다면 지금은 비로소 현실적인 수치로 돌아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류현진의 체력이 떨어졌느니, 류현진의 투구 패턴이 간파됐느니 하는 말들은 너무 가혹한 지적인 것 같다. 물론 애리조나와의 경기를 포함해 지난 3경기의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그 3경기로 류현진의 올 시즌을 폄하하는 부분은 선수 입장에서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문제가 있다면 류현진이 우리들의 수준을, 눈높이를 너무 높여놓은 것밖에 없다.”
정 위원도 류현진이 이런 상황에서 한 템포 쉬어갈 것을 권유했다.
“류현진이 10일 정도만 쉬었으면 좋겠다. 지구 선두 싸움이 치열한 상황도 아니고 정규시즌보다는 포스트시즌을 대비한다면 2경기 정도 거르고 다음 경기에 등판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사이영상이나 FA 이후를 떠올리면 지금의 휴식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류현진이 소탐대실할 수 있는 위험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갖고 있는 걸 지키려고 등판을 강행한다면 더 큰 걸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구를 왜 멘탈 게임이라고 하겠나. 축구, 농구처럼 익사이팅한 스포츠가 아니라 생각하는 시간이 많은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류현진이 과감히 ‘리셋’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빅게임에 대비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