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권: 무림절대고수’(2010)를 보면 주인공 임잉춘 역을 맡은 여배우가 있다. ‘제2의 미셸 여(양자경)’이라는 닉네임처럼 탄탄한 액션 솜씨를 보여주던 그 배우는 바로 당시 27세였던 바이징이다. 1983년에 태어난 바이징은 2002년에 베이징의 중앙희극학원을 졸업하고 국립아동극단에 들어갔다. 이후 영화계로 진출한 바이징은 ‘삼국지-용의 부활’(2008) ‘철인’(2009) 등의 작품으로 주목 받았고, 이후 ‘영춘권: 무림절대고수’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특히 이 영화를 위해 영춘권의 창시자인 입문(엽문)의 아들 입춘(엽준)에게 직접 사사를 받았으며, 그 결과 한동안 대가 끊겨 있던 여성 쿵푸 스타 계보에 신성이 나타났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제2의 미셸 여(양자경)’로 불리며 여성 쿵푸 스타로 주목받던 바이징.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바이징 혼자만의 노력으로 얻어진 건 아니었다. 그녀에겐 탄탄한 후원자가 있었으니 바로 저우청하이였다. 바이징보다 15살 많았던 저우청하이는 금융업을 통해 거액 투자로 엄청난 돈을 번 부자였고, 부동산 거부였으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2004년에 처음 만났고, 바이징에게 반한 저우청하이는 스폰서가 되어 그녀가 배우로서 성공하는 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저우청하이는 유부남으로 아들도 하나 있던 상황. 그는 바이징과 결혼하기 위해, 친지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6년에 이혼했고, 2008년 10월에 바이징과 결혼식을 올렸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결혼한 두 사람은 행복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당시 그들 부부는 같은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곳 강사인 차오위와 바이징 사이에 은밀한 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우청하이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2011년엔 세 사람이 함께 하이난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징과 차오위는 저우청하이의 선의를 무시하고, 그들만의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결탁하여 부자인 저우청하이의 재산을 조금씩 빼돌리기 시작했던 것. 960만 위안(약 16억 4000만 원)의 돈과 아우디 A8은 서론에 불과했다. 바이징은 이혼 계획을 꾸미고 있었고, 더 많은 위자료를 뜯어내기 위해 계략을 짰다. 바이징과 차오위는 콜걸을 고용해 저우청하이를 유혹한 뒤 그 광경을 몰래 카메라로 찍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계획까지 세웠다.
2012년 1월 1일, 바이징은 저우청하이의 어머니를 만나러 병원에서 갔다. 당시 건강이 안 좋아 입원 중이던 시어머니에게 바이징은 “당신의 아들과 이혼할 예정”이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결혼을 반대했지만 아들의 의사를 존중했던 저우청하이의 어머니는 바이징의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심장마비 증상을 일으키더니 1월 31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4년 남짓한 결혼 생활 내내 힘들었던 저우청하이는 어머니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 와중에 바이징은 2월 13일 법원에 이혼 소송장을 제출한다. 자신은 남편에게 전처와 아들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결혼했고, 남편은 가정 폭력을 일삼았으며 혼외 관계가 잦았다는 내용이었다.
바이징과 조우쳉하이
2월 28일, 법원에서 소환장을 받은 저우청하이는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에서 오랜만에 바이징을 만났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다. 그는 칼로 바이징을 세 번 찔렀고, 그녀가 죽음 걸 확인한 후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이징은 너무 사악했고,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말을 남긴 뒤 그는 자살했다. 당시 바이징은 29세, 저우청하이는 44세. 엄청난 부와 명예를 지녔던 셀러브리티 부부의 비극적 최후였다.
증언은 엇갈렸다. 부부의 지인이었던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 주춘레이는 그들 부부가 오랜 기간 동안 다퉈왔고, 저우청하이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며 “바이징을 죽인 건 잘못이지만 심리적으로 몰리지 않았다면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징과 정부인 차오위 뒤엔 범죄 조직인 삼합회가 있었다는 루머도 돌았다. 한편 ‘영춘권: 무림절대고수’의 감독인 장통주는 “바이징은 순수한 여성이었으며 매우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며 그녀를 두둔했다.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몇몇 일들이 있었다. 바이징의 내연남이었던 차오위는 사기 혐의가 인정되어 교도소에 갔다. 문제는 막대한 유산이었다. 이에 바이징의 어머니는 딸이 가져야 할 몫이 자신에게 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저우청하이는 이미 죽기 전에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거의 모든 유산을 물려 준 상태였다. 한편 이 사건 이후 중국 사회에서 만연한 가정 폭력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고, 새로운 법령 제정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기도 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