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툴리눔 톡신’은 보툴리눔이라는 균에서 독성을 띠는 단백질을 추출한 것이다. 이 독소를 피부 밑에 주입하면 미세한 근육 마비를 일으키는데 이때 잔주름이 펴진다. 보톡스는 세계 최초로 상업 생산에 성공한 미국 엘러간의 고유 제품명이다. 다른 회사들도 각자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메디톡스는 ‘메디톡신’, 대웅제약은 ‘나보타’라는 이름을 붙였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휴젤은 국내외 보톡스 시장의 강자들이다. 국내 시장은 메디톡스와 휴젤이 양분하고 있다. 메디톡스의 메디톡신은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국내 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 시장은 세계 최대 시장이다. 약 4조 5000억 원 규모다. 전 세계 보톡스 시장의 절반이다. 올해 초에는 유럽 진출을 위해 허가 신청서도 제출했다.
대웅제약 ‘나보타(왼쪽)’와 메디톡스의 ‘메디톡신(오른쪽)’
# 국정감사부터 TV광고까지...“대웅제약이 균주 훔쳤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난타전은 지난 2012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양 측의 진실공방에 불과했지만 2016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질병관리본부 국정감사를 기점으로 전면전이 됐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나보타’ 제조에 자신들의 보톡스 제품 ‘메디톡신’의 원료인 보툴리눔균과 유전자가 일부 동일한 균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메디톡스와 미국 위스콘신대, 엘러간이 공동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 정보를 대웅제약이 몰래 훔쳤다는 주장이다.
이후 메디톡스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사 보툴리눔균의 유전자를 공개했고, 2017년에는 보툴리눔균의 출처를 밝히라는 내용을 담아 TV 광고까지 만들어 대웅제약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대웅제약은 나보타 원료인 보툴리눔균을 자체 기술로 국내 토양에서 미량 추출한 뒤 제품 생산용으로 다량 배양했다고 반박하면서, 또 다른 국내 보톡스 제조사 휴젤과 함께 “경쟁사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소송전은 2017년 10월부터 시작됐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자사 균주를 도용했다는 취지로 미국과 한국 법원에 영업비밀 침해 등을 이유로 소송을 냈다. 올해 2월엔 파트너사인 엘러간과 함께 “메디톡스 전 직원이 기술문서를 대웅제약에 제공했다”며 대웅제약과 현지 파트너사인 에볼루스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ITC는 지난 3월 1일 공식 조사에 착수했고, 포자 등의 감정 절차가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메디톡스는 지난 3월 중소기업벤처부에 대웅제약이 기술을 탈취했다며 신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중소기업기술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본격 시행된 직후다. 중소기업벤처부는 신고서 검토 끝에 지난 7월, 보톡스 전쟁을 ‘제1호’ 중소기업 기술 침해 행위 행정조사 사건으로 결정하고 현재 조사 중이다.
# 대웅제약 “결정적 증거”...메디톡스 “美 ITC 최종조사 남아”
이번에 나온 ‘증거’는 국내 민사재판 과정에서 나왔다. 대웅제약은 “국내외 전문가 감정인이 입회한 가운데 균주 검증을 실시한 결과, 균주가 포자를 형성하지 않는 메디톡스의 메디톡신과는 달리 나보타는 균주가 포자를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메디톡스와 다른 균주인 것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균주의 포자형성 유무는 이번 소송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인 사항으로 분류됐다. 그동안 메디톡스가 “자사 보툴리눔 균주인 ‘홀A하이퍼 균주’는 포자를 형성하지 않는다. 만약 대웅제약 측이 균주를 도용했다면 당연히 나보타 균주도 포자가 형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균주가 포자를 생성한 것이 관찰되면서 대웅제약에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
이번 포자 감정은 대웅제약의 향남공장 연구실에서 지난달 4~15일 두 회사 감정인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됐다. 법원은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추천을 받아 미셸 포포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교수와 박주홍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감정인으로 지정했다. 2019년 7월 4일부터 15일까지 감정이 진행됐고, 시험기간 동안 보안을 위해 실험실과 배양기 등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고 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감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이번 감정 결과를 토대로 올해 4분기에 내에 판결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웅제약 측은 이번 결과로 진실이 밝혀졌다는 입장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보툴리눔톡신 균주가 포자를 형성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메디톡스의 균주와 다르다는 게 명백히 입증됐다”고 말했다. 한 제약 전문 변호사도 “같은 조건에서 한 쪽은 포자를 형성했고 다른 쪽은 형성하지 않았다면 서로 다른 균주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앞서의 대웅제약 관계자는 “그동안 근거 없는 음해로 일관한 메디톡스에 무고 등 민형사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메디톡스 측은 오히려 자신감을 내비쳤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대웅제약의 주장은 일부 내용만 부각한 편협한 해석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면서 “이번 결과는 국내 민사소송 과정 속 포자감정에 그칠 뿐이고, 실체적 진실은 미국 ITC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에 따르면 현재 ITC에서도 균주 출처 확인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ITC재판부는 증거수집 절차를 통해 대웅제약과 메디톡스가 각각 상대방의 균주를 제공 받아 정밀 비교 분석을 한다. 현재 양 측은 유전체 염기서열분석 등을 진행 중이다. 유전체 염기서열은 특정 생물체를 나타내는 고유한 식별표지라, 이를 분석하면 이 생물체가 무엇인지, 어디서 유래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분석자료는 오는 9월 20일까지 ITC에 제출된다. 이후 11월 재판이 진행되고, 내년 1월 예비 판정을 거쳐 내년 5월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전체 염기서열분석을 통해 종합적인 결론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