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삼성화재배 월드바둑챔피언십 개막식 전경.
#개막식, 8월 29일
이날 폭우가 한차례 쏟아졌다. 오후 5시에 시작한 개막식엔 선수와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하이라이트는 대진추첨은 행사 가장 마지막에 진행했다. 32명 선수가 한 사람씩 나와 번호를 뽑았다. 그때마다 객석에선 환호성과 웃음, 박수가 터져 나왔다. 본선 참가 선수 32명이 도열한 모습을 바라보던 바둑계 모 기자는 “절묘하다. 무대 위에 중국 17명, 한국 10명이 섰다. 이 비율이 바둑계 현황이다. 삼성화재배 32강은 세계바둑판도를 알 수 있는 시금석이다”고 말한다. 대진추첨에서 중국랭킹 1위 커제는 이영구를 만났다. 최정-천야오예, 박정환-당이페이, 변상일-양딩신 등 대진도 눈길을 끌었다. 이어진 만찬은 유성캠퍼스 구내식당에서 열렸다. 불고기 버섯탕, 수육, 오리고기, 멧돼지 통구이 등 육식메뉴가 테이블을 채웠다.
32강 직후 저녁식사를 하는 서봉수(왼쪽)와 박정환. 바둑 이야기가 반찬이다.
#대회 1일차, 8월 30일(32강전)
대국은 오전 11시에 시작했다. 생각시간은 2시간, 1분 초읽기 5회를 준다. 방송대국 두 판은 따로 무대를 마련했고, 나머지 열네 판은 연수원 2층에 마련된 특별대국실에서 열렸다. 오후 2시 반, 가오싱에게 이긴 신진서, 이영구를 물리친 커제가 먼저 대국장을 빠져나온다. 한국 여자기사 최정은 천야오예에게 패했다. 와일드카드를 받아 본선에 참가한 위리쥔(대만)도 랴오위안허에게 져서 탈락했다. 여자기사 3명은 모두 32강 탈락이다. 이야마 유타, 쉬자위안, 조선진까지 일본기사 3명도 모두 패했다. 프랑스 선수를 만난 행운(?)의 주인공은 중국기사 황윈쑹이었다. 한국은 변상일, 이영구, 허영호, 최정까지 네 명이 빠지고 여섯 명이 16강에 올랐다.
32강전도 위기가 있었다. 당이페이와 대국했던 박정환은 중반까지 패색이 짙었는데 절망적인 형세에서 끝내기 추격해 간신히 반집을 남겼다. 66세 ‘노장’ 서봉수도 중국 20대 신예기사 궈신이에게 대역전승을 거둬 화제가 되었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낭보였다. 그동안 삼성화재배에서 16강에 오른 시니어는 중국 위빈(2016년) 9단이 유일했다. 국후 서봉수는 “위기는 초반부터 있었다. 너무 어려운 내용이라 비몽사몽간에 두었다. 끝나곤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최근엔 인공지능에서 나오는 멋진 수를 보고 영감을 많이 얻었다. 한 판 더 이기는 게 목표다.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16강 대진 추첨에서 서봉수 옆자리에 이름을 붙인 중국랭킹 2위 구쯔하오는 살짝 미소 지었다. 대국을 마치고 바로 추첨한 16강 대진은 화려했다. 신진서-천야오예, 박정환-셰얼하오, 신민준-리친청, 김지석-양딩신, 강동윤-탕웨이싱, 서봉수-구쯔하오다. 삼성화재배 본선 32강을 통과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온 서봉수는 박정환을 찾아 옆에 앉았다. 둘은 밥 먹는 도중에도 서로 행마와 수순을 이야기했다.
박정환 9단(왼쪽)과 탕웨이싱 9단의 8강전. 한국 기사는 8강전에서 모두 패했다.
#대회 2일차, 8월 31일(16강전)
신진서는 중요한 길목에서 천야오예를 극복했다. 한국은 신진서, 박정환, 신민준 삼각편대가 살아남아 희망을 밝혔다. 서봉수, 김지석, 강동윤까지 세 명은 졌다. 중국은 커제가 타오신란에게 막혀 탈락했지만, 8강에 다섯 명을 남겼다. 숫자에선 밀렸지만, 한국은 랭킹 1위, 2위, 4위가 남아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이어진 추첨에서 8강 대진은 신진서-랴오위안허, 박정환-탕웨이싱, 신민준-구쯔하오, 양딩신-타오신란으로 정해졌다. 신-랴는 2000년생 동갑, 박-탕도 1993년생 동갑내기다. 박은 탕에게 8승 7패로 상대전적이 앞서지만, 지난 응씨배 결승 5번기에서 2-3으로 패한 아픔이 있다. 탕웨이싱은 중국내에선 랭킹이 33위까지 떨어졌지만, 매년 삼성화재배에선 부침 없이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대진추첨에서 탕웨이싱은 박정환 옆자리가 결정되자 좌중이 보는 앞에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 모습을 보고 추첨식에 모인 선수와 관계자 대부분이 활짝 웃었다. 추첨 후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온 일찍 탈락한 커제는 밥맛도 없는지 다른 반찬은 모두 빼고, 백반과 불고기 두 가지만 식판에 조금 담았다.
결승에 오른 탕웨이싱(왼쪽)과 양딩신.
#대회 3일차, 9월 1일(8강전)
충격이었다. 한국기사가 전멸했다. 랴오위안허를 상대한 신진서는 한때 AI 승률 90%를 넘겼는데 갑작스러운 난조를 보이며 역전패했다. 박정환은 중반까지 팽팽한 접전을 벌였지만, 마지막에 탕웨이싱이 건 날카로운 낚싯바늘에 걸려 대마가 몰살당했다. 신민준은 초반부터 고전을 거듭하다 구쯔하오에게 1집반을 패했다. 양딩신, 탕웨이싱, 구쯔하오, 랴오위안허. 중국기사 네 명이 4강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서 대회 4일차(2일) 열린 4강에선 양딩신과 탕웨이싱이 각각 랴오위안허와 구쯔하오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양딩신은 올해 LG배를 우승했기에 만약 삼성화재배까지 우승하면 2관왕에 오른다. 탕웨이싱은 2013년 삼성화재배에서 이세돌 9단을 2-0으로 물리친 우승자다. 2014년과 2017년도 결승까지 올랐다. 8강전을 마치면서 중국 우승이 일찌감치 확정되었다. 2015년부터 5년 연속 중국기사 삼성화재배 정상에 섰다. 올해까지 국가별 우승 횟수는 한국 12회, 중국 10회, 일본 2회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