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올해 1월에 개봉된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말살하려고 했던 일제에 맞서 이를 지키려던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그렸다. 손익분기점이 280만 명인 이 영화는 전국 관객 286만 명을 모아 손해를 면했다.
‘항거:유관순이야기’ 홍보 스틸 컷
뒤이어 2월 극장에 걸린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3·1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인 유관순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던 작품이다. 개봉일 역시 2월 27일로 개봉주 금요일이었던 3·1절에 맞춘 셈이다. 순 제작비 10억 원, 총 제작비 약 20억 원의 저예산 영화였던 ‘항거:유관순 이야기’ 손익분기점은 약 50만 명. 최종 관객 수는 115만 명으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두 영화 모두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미지근하다’는 업계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 의미에 공감하는 이들의 선택을 받았지만 영화적 완성도가 높지 않았고,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동력이 부족했다는 평이다.
특히 ‘항거:유관순 이야기’와 같은 날 개봉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실패는 치명적이었다. 총제작비 150억 원이 투입된 이 영화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이름 붙일 만한 제작 규모였다. 손익분기점은 400만 명. 하지만 ‘자전차왕 엄복동’은 17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어림잡아 130억∼140억 원이 공중분해됐다는 의미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그들의 민족적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열린 자전차 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을 거두며 한민족의 자존감을 드높인 실존인물을 다뤘다는 측면에서 영화적으로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했다. 게다가 한류스타로 분류되는 가수 겸 배우 정지훈이 주인공을 맡아 대대적인 홍보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부족한 만듦새까지 보완할 수는 없었다.
‘자전차왕 엄복동’ 홍보 스틸 컷
한 영화계 관계자는 “다큐멘터리나 특정 인물의 전기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의미’만 짚어도 된다. 하지만 장편 상업영화로서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해 흥행을 노린다면 의미에 앞서 ‘재미’가 있어야 한다”며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영화적 만듦새가 아쉬웠다는 의견이 많았고, 그 결과 하나의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며 관객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 역사를 다루면 욕하면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역사를 폄하할 수 있나?” 국뽕 영화라 불린 한 영화와 관련된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하지만 이는 편협한 사고다. 해당 영화를 비판하는 관객들은 역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런 수준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한 제작진을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뽕 영화라는 표현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 내포한 것은 아니다. 2014년 개봉됐던 영화 ‘국제시장’과 2016년 선보인 ‘인천상륙작전’은 각각 1426만 명, 705만 명을 동원해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국제시장’의 기록은 여전히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4위에 해당된다. 개봉 당시 두 영화는 흥행 돌풍과 함께 여러 비판에 직면했다. ‘국제시장’은 역사적 평가가 분분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미화하며 신파에 초점을 맞췄다는 쓴소리를 들었고, ‘인천상륙작전’은 다소 부족한 작품의 완성도를 역사의식 고취, 맥아더 역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 출연 등의 홍보로 메웠다는 지적이 있었다.
일견 타당한 의견이다. 하지만 장편 상업영화로서 두 영화는 1426만 명, 705만 명이라는 관객수를 통해 이미 그 가치를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제시장’과 ‘인천상륙작전’을 보며 충분히 울고, 웃고, 즐긴 관객들이 있고 그들이 내는 입소문을 타고 또 다른 관객들이 유입됐다는 의미다.
‘봉오동전투’ 홍보 스틸 컷
올여름 성수기 극장가를 겨냥했던 영화 ‘봉오동전투’ 역시 항일 무장 투쟁 역사 중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를 다루며 국뽕 영화로 분류됐다. 이 영화는 관객 472만 명을 동원했다. 손익분기점인 450만 명을 넘기며 ‘성공’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개봉된 영화 ‘엑시트’가 ‘봉오동 전투’의 2배에 육박하는 약 900만 명을 모은 것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코믹 재난 영화를 표방하는 ‘엑시트’는 어떤 의미를 강조하기보다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관객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하는데 주력한다. 영화 한 편에 900만 관객이 몰릴 정도의 시장 규모였지만 ‘봉오동 전투’를 472만 관객만이 선택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셈이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우리의 역사를 소재로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국뽕 영화라 불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 표현은 ‘작품의 완성도는 다소 부족해도 애국심을 갖고 봐달라’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라며 “결국은 이런 영화들이 그 역사의 무게를 작품 안에 온전히 담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만들 때는 더욱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