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엔 유명 연예인을 포함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특히 고 김성재 동생 김성욱 씨가 고군분투했다. 김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청와대 국민청원 주소를 공유하면서 “주위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고 분노해줘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고 훈훈하다”며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다. 진실이다. 진실을 알 권리가 내게도 있고 여러분들에게도 있다. 특히 우리 어머니는 김성재 형과 관련한 일을 알 권리가 있다. 국민 청원에 많이 동참해달라. 부탁드린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8월 29일 김 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20만 명 돌파 이후 다시 한 번 전화를 통해 그의 심경을 들어봤다.
5일 오후 성수동에서 고 가수 김성재의 동생 김성욱씨가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청원 동의가 20만 명 돌파하리라 예상했나.
“기대와 실망은 언제나 같이 와서 기대를 잘 안하는 편이다. 어느 순간 자고 일어나보니 18만 7000명이더라. 그때부터 개표방송 보듯 새로고침을 계속 눌렀다. 20만 명이 되는 순간 김성재 팬 단톡방에서는 흥분으로 난리가 났다. 사실 이만큼 화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방송이 순조롭게 됐다면 또 하나의 미제사건 이야기로 지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방송이 안되면서 오히려 듀스를 알지 못했던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 ‘김성재가 누구길래?’, ‘어, 이런 일이 있었네’처럼 역순으로 사건을 알아보게 됐고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됐다. 그래서 오히려 가처분 신청을 해준 분이 아이러니하게 김성재를 잊지 않게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공소시효가 지나 진범이 잡혀도 이제 처벌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그런 점에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은 진범이 누군지만 알려주면, 아니 범인이 누군지 나오지 않아도 좋다. 범인을 특정하지 못해도 범인이 있다는 점만 알려주면 좋겠다. 아직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살설, 마약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범인이 있다고 다시금 알려지면 좋겠다. 죄를 지은 사람은 천벌받는다는 걸 믿는다. 진실만 알려지면 좋겠다.”
―청와대 답변에서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과거 답변을 봐도 ‘청와대가 답변하기 어려운 일’ 등 어쩔 수 없는 여건 때문에 평이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어떤 이야기를, 누가 나와서 설명할지도 궁금하다. 만에 하나 법원이나 수사기관 관계자가 답변한다면 어쨌거나 미제 사건으로 진범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사과가 있다면 좋겠다. 답변보다는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고 그 안에서 경험이 기적이었다. 삶에 있어 큰 빛이 될 것 같다.”
―여러 연예인들이 도와줬다. 부탁을 했나.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다. 부탁을 하면 이미지나 활동 스케줄, 기획사 조율 문제 등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못할 수도 있다. 그럼 그 ‘못한다’는 이야기에 상처 받을까봐 일부러 아무에게도 부탁하지 못했다. 그냥 ‘동의 눌러줬어’ 그 한마디면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나서준 연예인들에게 더 고마웠다.”
―김성재 사건은 주변 친구나 팬들의 충격이 컸다. 가족의 충격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너무나 충격이 커서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죽음을 직시하다 보니 삶이 보이더라. ‘죽을 거니까, 지금 잘 살아야 한다’ ‘1분, 1초를 소중히 여겨라’라는 뜻을 말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삶에서 배우고 느끼게 됐다. 여한이 없는 삶을 살기로 했다.”
―때로는 형의 비극을 내려 놓고 싶을 때도 있지 않나.
“형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형을 놓고 살았다. 어머니 혼자 꾸역꾸역 팬과 만나면서 추모를 계속했다. 5년 전에 퍼뜩 내가 잊어버리고 사는데 사람들은 어떻겠나 싶어서 너무 미안하게 느껴졌다. 내 딸이 커서 ‘큰아버지가 그렇게 되고 뭐했냐’는 질문을 했을 때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았다. ‘김성재를 기억하는 사람들 모이자’고 SNS에 글을 올렸다. 그렇게 2015년에 10여 명이 모여 ‘늘 함께 성재’를 만들었다. 그때 ‘형 생일과 기일 가까운 주말에 꼭 모이자. 대신 다음에는 한 명만 더 데리고 와라. 그러면 두 배가 되고, 또 두 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5년간 우리끼리 모이고 얘기했다. 그런 게 쌓이고 쌓여서 이번 청원은 우리한테 하늘에서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5만 명 넘었을 때부터 다음은 그저 주어진 보너스라고 생각했다.”
―‘고 김성재 동생’으로 살아가는 게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형이 가고 나서 내가 형 역할까지 하려고 했다. 그럴 수록 내 가슴에 구멍이 나더라. 형도 아니고 나도 아닌 형인 척하는 뭔가가 되어가는 게 견딜 수 없었고 주변도 어색하게 반응했다. 그렇게 충돌을 하다 형 모습이 남은 내 자신을 조금씩 다시 찾아갔다. 형이 23살에 가고 나서, 살아 있다면 형 나이가 48세가 되도록 시간이 지났다. 그때 충격으로 헤집어진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됐다고 생각한다.”
―최근 김성재 솔로곡 ‘말하자면’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했다.
“20만 명 동의를 채울지 몰랐다. 15만 정도에서 정체기를 겪고 있을 때 비록 20만 명 동의를 받지 못하더라도 뭔가 의미있게 끝낼 수 없을까 생각했다. 그때 ‘아이스 버킷 챌린지’, ‘병뚜껑 챌린지’처럼 재밌고 유쾌하게 해야 오래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청원을 부탁하는 일종의 ‘운동’인데 재밌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말하자면’ 부르기 챌린지를 하기로 했다. ‘말하자면’을 코인 노래방에서 직접 불러도 좋고, 노래를 틀어서 올려도 좋고, 안무를 따라해 SNS에 올려 해시태그만 넣어 동참하면 된다. SNS를 ‘말하자면’으로 꽉 채우는 모습으로, 청원은 이렇게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청원 프로젝트는 끝났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이제 시작이다. 10년, 20년 넘게 정말 길게 보고 있다. 형이 얼마나 멋있는 사람이었는지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다. 에너지 넘쳤고, 의상, 춤, 음악 모든 게 다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다. 이런 시대적 아이콘이 있었다는 걸, 그래서 사람들이 ‘제임스 딘’처럼 모두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방탄소년단이 ‘말하자면’을 커버한 곡을 보면서 다시금 김성재를 떠올릴 수 있다.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김성재’라는 주제로 미술이나 음악 등 다양한 방면에서 젊은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계획하고 있다. 젊은 아티스트들의 결과물들과 형이 남긴 의상이나 미술을 모아 전시를 하고 싶다. 영감을 받을 만한 사람, 재탄생시킬 만한 사람이 여기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김성재를 주제로 한 영화나 뮤지컬도 나와서 계속 기억되고 다시금 이야기가 나오게 만들고 싶다. 그래야 진범이 그 이야기들 속에서 괴로워라도 하지 않겠나.”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