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거래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한 마약사범 A 씨의 말이다. 최근 ‘딥 웹’이라는 은밀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이용한 마약거래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준다. ‘이제는 마약을 완전히 끊었다’고 고백한 A 씨는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털어놨다. 마약은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게 퍼져 있었다.
한국도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한때 대한민국은 ‘마약 청정국’으로 통했다. 지금은 아니다. 유엔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건이 20건 미만일 경우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한국은 마약사범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2016년 그 지위를 잃었다. 검경 합동수사단이 201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단속된 마약사범은 1만 4214명에 달했다. 인구 10만 명당 24명꼴이다.
A 씨는 우리 사회에 마약이 급격하게 확산되는 배경으로 손쉬운 구매 루트를 꼽았다. 그 중 하나가 ‘다크 웹’ 혹은 ‘딥 웹’이라 불리는 음지의 온라인 세상이다. 구글이나 네이버 등 드러나 있는 서페이스 웹(표면)이 있다면 그 내부에는 특수한 도구를 쓰지 않으면 접속할 수 없는 다크 웹이 있다. 가게로 치면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간판도 없는 숨은 점포라고 할 수 있다.
다크 웹을 접속하려면 흔히 ‘양파 경로기’(TOR)라고 부르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양파 경로기는 겹겹이 쌓여 있는 양파 껍질처럼 접속 경로를 여러 번 덮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태국으로, 태국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브라질로, 브라질에서 다시 네덜란드를 거쳐 사이트에 접속한다. 그래서 최종 접속지는 네덜란드로 인식되지만 양파 껍질을 벗겨보면 진짜 접속지는 한국이다. 수사기관이 네덜란드를 털어봤자 한국에서 접속 종료하면 그만인 셈이다.
이 다크 웹을 통해 한국에서도 쉽게 마약을 거래할 수 있다. 사이버 추적만으로는 거래 내용을 포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경찰 사정에 밝은 한 국회 관계자는 “경찰청과 마약 정책 관련 이야기를 나눠봐도 다크 웹은 추적 불가능에 가깝다고 토로한다”며 “다만 아예 잡을 수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잡은 마약 사범 제보, 마약 거래 정보를 통해 거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크 웹에서 마약 거래는 H 사이트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대마초가 대개 10g에 10만~20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10g 정도면 약 3번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이때 결제 대금은 무조건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 지갑에서 대금이 나가고 들어가는 걸 추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크 웹과 비트코인이 결합하면서 추적이 거의 불가능한 루트가 형성된 것이다.
다크웹은 우리가 흔히 아는 서페이스웹과 달리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다.
그렇다고 호기심에 다크 웹에 접속하는 건 절대 금물이다. 다크 웹을 써본 한 컴퓨터 전문가는 “다크 웹에 잘못 접속했다가는 자신의 컴퓨터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 잘 쓰지 못하면 다크 웹에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는 만큼 애초에 접속 안 하는 게 상책이다”라고 설명했다.
대금이 전달되면 판매자는 강남 일대에서 CCTV가 없는 어딘가에 마약을 던져 놓는다. 그 위치 정보를 받은 마약 구매자가 마약을 주우면 끝이다. 이렇게 다크 웹에서 산 구매자는 이걸 유흥가에 더 비싼 값을 받고 판매하기도 한다. 최근 버닝썬 사태를 통해 클럽 안에서 벌어진 마약 파티가 드러났다. 여기에 공급된 마약도 이렇게 공급됐다고 한다. A 씨는 이러한 거래를 통해 강남 일대에 마약이 퍼져나가고 있다고 증언한다.
마약을 몇 번 사본 사람에게 대마초는 매우 흔하다. A 씨는 주변에서 대마초를 입에 물고 있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미국이 아닌 한국 이야기다. ‘마약을 찾을 눈이 있는 사람에겐 흔하게 됐다’는 말은 이런 뜻이었다. 구매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만 가는 강남 몇몇 유흥업소에서는 아예 성과 마약을 동시에 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마약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국내에서 판매되는 마약 중 상당수는 국내에서 재배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강남 빈 원룸을 임대해 대마초를 재배하고 강력한 공기 청정기를 24시간 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는 인적이 드문 산골에 대마 씨를 뿌려두고 나중에 수확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는 소문도 돈다.
국내 거래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마약을 들여오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에 308건이었던 마약사범 단속건수가 2018년에 659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며 “그 금액도 1504억 원에서 6792억 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관세청 자료에 의하면, 세관에서 적발된 마약류 중량 또한 증가세로 2017년 69.1kg 규모였던 적발량이 2018년 425.8kg으로 1년 사이 6배나 증가했다.
최근 마약 사건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연이어 터지고 있다. 얼마 전엔 이재현 CJ그룹 회장 장남인 이선호 씨가 고순도 변종 마약인 액상 대마 카트리지 수십여 개를 밀반입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 씨는 소변 검사에서 대마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알려졌다. 이 씨가 들여온 액상 대마 카트리지는 고순도 변종 마약이라고 알려졌다. 마약 하면 흔히 연예계나 화류계를 떠올렸지만 이제는 재벌가 깊숙히까지 파고들었다. 어디 한 곳 마약에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