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농구 레전드 변연하와 정선민. 사진=이영미 기자
[일요신문] 정선민(45) 전 신한은행 코치는 여러 가지 ‘최초’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바스켓 퀸’이라고 불린 것도 그가 처음이고 WKBL 선수 최초로 은퇴 기자회견을 연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은퇴 경기를 치른 것도 여자 농구 선수들 중에는 최초. 현역 시절 MVP만 7차례, WKBL 역사상 유일한 8000득점을 돌파한 전설이기도 하다.
‘변코비(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를 빗댄 별명)’ 변연하(39)는 여자농구 선수 출신 중 처음으로 외국 연수를 경험했다. 1999년 삼성생명 소속으로 데뷔 후 신인왕 수상을 시작으로 WKBL 통산 545경기에 출전하면서 베스트5 10회, 정규리그 MVP 3회 수상 등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다. 통산 3점슛 역대 1위(1014개), 득점과 가로채기 역대 2위(7863점/843개), 어시스트 역대 3위(2262개) 등 굵직굵직한 기록들을 남겼다.
여자 농구의 레전드들이 오랜만에 서울해서 해후했다. 대표팀에서 센터와 가드를 맡아 한국 여자 농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정선민, 변연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이야기를 들어본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생긴 일
선수시절 정선민. 사진=연합뉴스
정선민(정): 연하야, 정말 오랜만이다. 미국 생활은 정리하고 온 거야?
변연하(변): 네, 언니. 처음 연수 갔을 때는 1년만 하고 돌아오려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3년을 보내고 오게 됐어요.
정: 처음 갔던 스탠퍼드대학 여자 농구팀에서 계속 있었던 거니?
변: 2년은 그곳에서 지냈고, 남은 1년은 이모가 계시는 애리조나에서 공부했어요.
정: 여자 농구 선수 중에는 네가 처음으로 외국 연수를 떠난 건데, 막상 경험해보니까 어떠했는지 궁금하네.
변: 말도 마세요. 처음에는 영어가 전혀 안 돼 고생 많이 했어요.
정: 통역이 없었던 거야?
변: 스탠퍼드대학 농구부는 외부인 출입 금지예요. 감독, 코칭스태프, 선수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농구장 출입이 허용되지 않아요. 12명 스태프에도 끼지 못하는 제가 어떻게 통역을 대동해서 다닐 수 있었겠어요. 연수 첫 시즌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훈련 중에 공이 제 발밑으로 굴러온 거예요. 전 아무 생각 없이 그 공을 주워 코트 안으로 던져줬어요. 그게 이상한 행동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이 수석코치에게 화를 내시더라고요. 왜 연수하는 사람이 공을 잡게 하느냐고요. 감독님은 34년째 농구부를 지도하는 분이시고, 수석 코치는 26년째 그곳에서 일하신 분이에요. 차라리 저한테 직접 화를 내셨으면 됐는데 수석 코치에게 뭐라고 하시니까 정말 민망하더라고요. 농구팀 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제 잘못이었는데 말이죠.
(변연하가 스탠퍼드대학 여자 농구팀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었던 건 KB 스타즈에서 인연을 맺었던 서동철 감독(부산 KT)의 도움이 컸다.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변연하의 프로필과 경기 영상, 성적 등을 정리해서 보냈고, 대학 측에서 농구팀 스태프들과 자료들을 검토한 다음 연수를 허락받았다는 후문이다. 스탠퍼드대학 농구부는 해마다 1명씩 연수생을 받는데 변연하는 2016-2017시즌부터 2시즌을 그곳에서 보냈다.)
정: 그러면 2시즌 동안 공 한 번 못 잡아 보고 온 거야?
변: 첫 시즌에는 매일 4시간씩 수첩 들고 서서 훈련 일지를 작성했어요. 앉아서 볼 수도 있었지만 코칭스태프들에게 제 열정을 보여주고 싶어서 계속 서서 훈련을 지켜봤었죠. 이듬해 팀 매니저가 물어보더라고요. 1년 더 함께 할 수 있느냐고. 당연히 오케이 했고, 그다음 시즌부터는 코칭스태프 회의에도 참석하고, 경기장 벤치에도 앉는 등 스태프의 일원으로 움직였습니다. 문제는 감독이 아무리 좋은 전략을 설명해줘도 제가 정확히 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죠.
정: 정말 힘들었겠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변: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었어요. 두 번째 시즌 때는 선수들이 슈팅 연습할 때 공을 잡아달라고 해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열심히 공을 대주기도 했었죠. 제가 영어를 잘했더라면 생활하는데 훨씬 수월했을 거예요. 한 마디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보냈는데 포기하지 않고 2시즌을 마쳤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변하지 않는 여자 농구의 ‘룰’
선수시절 변연하. 사진=연합뉴스
변: 언니는 어떻게 보내셨어요? 신한은행 신기성 감독님이 물러나면서 언니도 팀을 나오게 됐잖아요.
정: 한국에서의 코치란 자리는 감독의 거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더라고. 팀을 나온 후 잠시 대만에 가서 농구 지도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휴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동안 쉼 없이 달려만 왔으니까.
변: 예나 지금이나 여자 농구 선수 출신이 지도자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기회가 많지도 않고요.
정: 나도 그 벽을 깨보고 싶었는데 한계는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아. 선수였던 내가 선수들을 이끌면서 느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이전보다 선수들의 멘탈은 약해진 면이 있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변: 어떤 점이요?
정: 예를 들면 숙소 생활 규칙이 그래. 선수들 마다 신체 리듬이 다 다른데 모두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게 하잖아. 이후 아침 운동하고 잠시 쉬었다가 점심 먹고 또 오후 운동하고. 어떤 선수는 아침 식사보다 잠을 더 자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선수는 제시간에 일어나서 삼시세끼를 먹어야 체력을 유지할 수도 있는 거잖아.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강압적인 생활 규칙은 지금 세대의 선수들한테 맞지 않다고 생각해. 아침 안 먹은 선수가 훈련도 못 한다? 그럼 과감히 배제시키면 돼. 프로 선수인데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지. 숙소 생활은 후배가 선배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구조야. 어떤 선배는 후배의 식사 태도, 반찬 먹는 것부터 밥 먹는 시간까지 일일이 참견해. 마치 시어머니가 잔소리하듯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거야. 그 후배는 숙소 생활이 어떻겠어? 지옥이나 다름없는 거지.
변: 그런데 후배들한테 너무 편하게 해주면 중심 못 잡고 마음대로 하는 애들도 많아요. 팀 분위기 흐리면서.
정: 그래서 내 말은 프로면 프로다워야 한다는 거야. 그런 교육을 신인 때부터 잘 받아야 하는 것이고. 고교 졸업해서 프로 입단한 선수에게 ‘프로다워야 한다’는 게 와 닿기는 하겠니? 프로가 무엇인지, 프로 선수로서의 자세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여러 차례 교육을 하고, 선배들 경험담을 후배들에게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선배들도 숙소에서 후배들 군기 잡으려 하지 말고. 숙소는 편히 쉬어야 할 곳이야. 훈련도 힘든데 숙소 생활로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경기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어떤 선수는 내게 숙소보다 농구장에 있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하더라고.
변: 여자 농구는 선수층이 너무 얇은 편이에요. 그게 걱정되기도 하고요.
정: 신인 드래프트 때 보면 여섯 팀에서 2라운드까지 해서 12명을 뽑잖아. 그 12명은 우리나라 여고부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인 거야. 그런 친구들이 프로에 합류해서 훈련하다 보면 대부분 현실 충격을 받더라고. 자신들이 해온 농구와 프로의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는 걸 느끼고선 말이지. 선수층이 얇으니까 신인 중에서 스타플레이어가 나오기가 어려워. 여자 농구의 가장 큰 문제야.
대표팀에서의 희로애락
선수시절 프로무대에서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변연하와 정선민. 사진=연합뉴스
정: 연하야, 그때 생각나니? 우리가 대표팀에서 처음 만났던 때가.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였을 거야. 대회 앞두고 남고 농구부랑 연습 게임을 했는데 첫 연습 상대가 인천 제물포고였잖아. 그 팀에 오세근이 뛰고 있었고.
변: 언니, 당연히 기억하죠. 여자농구대표팀이랑 제물포고랑 연습 경기했다가 30점 차이로 박살났던 거.
정: 와, 정말 기가 막혔지. 대회 직전의 연습 경기에서 고등학생 상대로 30점 차 패배를 당하다니. 난 그때 오세근이 누군지도 몰랐어. 잘한다고 하기에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막상 붙어보니까 대단하더라고. 박정은, 최윤아, 김정은, 변연하, 정선민, 하은주 등이 뛰었는데 대패를 당하는 바람에 다들 충격 먹었었지.
변: 다음날 다시 제물포고랑 연습 경기해서 큰 점수 차로 이기긴 했어요. 그때는 마치 국제대회 치르는 것 마냥 남고 선수들 상대로 이를 악물고 뛰었어요. 죽기 살기로. 이제는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다 추억으로 남았네요.
정: 우리가 그만큼 늙은 거야(웃음). 연하야, 넌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돼?
변: 없어요(웃음). 연수받고 왔는데 일자리가 없네요. 좀 더 쉬면서 알아봐야죠.
정: 우리 같이 팀 하나 만들까? ‘노인’네들도 뛸 수 있는 팀을.
변: 전 언니가 한다면 무조건 ‘콜’입니다!
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로 불리는 두 사람은 현재 무직 상태. 그 기간이 오래 가진 않겠지만 여자 농구는 특히 선수 출신이 지도자 자리를 차지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공급은 차고 넘치는데 그만큼 수요가 적다는 의미. 그래서 정선민 전 코치의 아쉬움이 더욱 큰지도 모르겠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