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관한 인사청문회에 참석하기 위해 조 후보자가 국회에 들어서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정권 실세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고초를 당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과거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이들은 현재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전두환 정권 최고 실세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었다. 장 전 부장은 12·12쿠데타에 참여한 뒤 대통령 경호실장, 안기부장을 역임하며 5공 실세로 떠올랐다. 대통령 경호실장 시절 아웅산 폭탄테러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으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표를 반려할 정도 그를 아꼈다.
정권이 바뀌자 장 전 부장은 용팔이사건, 5공비리 등으로 수차례 구속됐다 풀려나기를 반복하는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장 전 부장은 출소 직후엔 항상 전 전 대통령 집을 방문해 “각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라며 거수경례를 했다고 한다.
장 전 부장은 지난 2002년 대선 출마 선언을 하는 등 활발한 외부활동을 펼쳤지만 최근에는 별다른 공개 활동이 없다. 가장 최근 행적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다. 5공 인사들 근황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장 전 부장은 “전두환 씨는 나에게 되게 사랑을 줬던 분이다. 부모와 같은 분이다. 재미있게들 살아라. 이런 취재 하지 말고 좀 좋은 나라 만들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태우 정권 실세는 박철언 전 의원이다. 박 전 의원 별명은 ‘6공 황태자’였다. 박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 먼 친인척 간이고 어렸을 때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검사 출신인 박 전 의원은 청와대 정책보좌관을 거쳐 정무장관을 지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자신이 만든 사조직인 ‘월계수회’ 회원들을 대거 국회에 진출시켜 힘을 과시했다.
잘나가던 그는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와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권력 중심에서 밀려났다. 1993년에는 이른바 ‘슬롯머신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1년 6개월간 복역했다. 박 전 의원 구속으로 치러진 1994년 보궐선거에서는 부인인 현경자 씨가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박 전 의원은 출소 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에 복귀했다. 이후 김대중 정권 출범에 기여해 정치적으로 완전히 재기하는 듯했으나 2000년 총선에서 패한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박 전 의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삼 정권에서는 차남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가 ‘소통령’이라고 불리며 최고 실세로 통했다. 하지만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김 상임이사는 현직 대통령 아들이 구속된 첫 사례라는 불명예스런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김 상임이사는 1999년 기업인 6명으로부터 66억 원을 받고 12억여 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 전 대통령은 아들이 구속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싸늘해진 민심을 되돌리진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심각한 레임덕에 시달려야 했다.
김 상임이사는 그해 광복절에 사면됐지만 5년 뒤인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에게 불법정치자금 20억 원을 받은 혐의로 또 구속됐다. 그는 2007년 2월 두 번째 사면을 받았다. 김 상임이사는 총선 출마 등으로 정계 진출을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아직까지도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에선 그의 출마설이 돈다.
김대중 정권 실세는 차남 김홍업 씨다. 당시 홍업 씨 별명은 ‘100% 해결사’였다. 무슨 부탁을 해도 100% 해결이 된다는 뜻이다. 홍업 씨는 지난 2003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홍업 씨는 2007년 4월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이듬해 열린 18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정계에서 은퇴한 홍업 씨는 지난 6월 이희호 여사가 서거하자 공석이 된 김대중평화센터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노무현 정권 실세들은 한때 폐족을 자처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대표적으로 노무현 친구로 불렸던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현재 대통령이 됐다. 이외에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경수 경남도지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여전히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퇴임 후 지지자들이 더 늘어나는 이상 현상이 생겼다. 특히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추도물결이 일었고 노무현 신드롬 현상까지 생겼다. 노무현의 사람이라는 평가는 정치인들에게 낙인이 아니라 후광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노무현의 사람 중 정치 무대에서 사라진 이들도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미투 사건에 연루돼 지난 2월 구속됐다. ‘노무현의 분신’으로 불렸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도 지난 2009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처벌받은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이명박 정부 실세들 중엔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 이들이 많았다. ‘이명박 문고리 권력’이라 불리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저축은행비리사건에 연루돼 구속 됐다. 김 전 실장 부인은 남편이 수감 중일 때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했다.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가 시작되자 내부고발자로 변신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은 상왕이란 별명까지 얻으며 실세로 군림했지만 정권 말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구속됐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친형의 구속이었다. 1년 2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한 후 만기출소한 이 전 의원은 한동안 폐렴 등이 악화돼 요양에만 전념해야 했다. 이후 뉴스에서 사라졌던 이 전 의원은 뇌물 혐의로 대법원에서 1년 3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지난 5월 다시 구속됐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권 실세들은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로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구속된 고위 공직자들이 너무 많아 이름을 모두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다. 박 전 대통령 본인은 물론이고 장관급 인사 상당수가 구속돼 구치소에서 국무회의를 열어도 되겠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박근혜 정권 최고 실세는 ‘최순실’이라는 민간인이었다. 정권 핵심임을 자부하던 이들조차 까맣게 몰랐던 일이었다. 최 씨는 최근 옥중편지를 통해 “언제까지 이 지긋지긋한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하는가”라면서 “(자신의 딸 정유라를 비판했던 분들이) 지금 정부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에게는 할 말이 없는지 묻고 싶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 8월 29일 징역 20년 및 벌금 200억 원을 선고한 최 씨의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일부 강요 혐의 등이 무죄 취지로 파기됐지만 최 씨 최종 형량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