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5대 그룹은 연이어 대규모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계획 이행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사진은 지난해 8월 6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방문을 마친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환송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대기업들은 계획한 투자·고용의 진행 상황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계획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아무래도 중장기 계획이다 보니 시장 상황에 따라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당시 계열사별 투자·고용 전망을 취합해 그룹 차원에서 발표한 만큼 ‘뜬구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언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니었으며 계열사별로 투자를 진행하는 터여서 그룹 차원에서 실행상황을 점검하지는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 1위 삼성그룹은 지난해 8월 8일 3년간 총 180조 원을 투자하고 4만 명을 고용하겠다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놨다. 180조 원 가운데 130조 원은 국내에 투자하고, 직접 채용 4만 명을 포함해 70만 명의 간접 고용을 유발하겠다는 목표였다.
삼성의 투자계획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2017년 49조 3852억 원에서 2018년 52조 2404억 원으로 증가했다. 평택캠퍼스 2기라인 증설이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8조 5286억 원. 지난해부터 지난 6월까지 60조 7690억 원을 투자활동에 사용한 셈이다.
반면 고용 속도는 느려 보인다. 지난 6월 기준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16개 상장사의 직원 수는 2017년에 비해 총 8251명 늘어났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6월까지는 불과 63명 증가했다. 삼성전자(5260명)가 가장 많이 증가했으며, 삼성SDI(1316명)와 에스원(652명) 등 다수 계열사에서 직원 수가 늘었다. 반면 삼성물산(-127명)과 삼성중공업(-670명), 삼성SDS(-426명) 등은 오히려 직원 수가 줄었다.
5대 대기업 중 가장 먼저 투자·고용 계획을 밝힌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월 5년간 23조 원을 투자하고 4만 5000명을 고용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중점 투자 분야는 ▲로봇·인공지능(AI) ▲스마트카 ▲차량 전동화 ▲미래 에너지 ▲스타트업 육성, 5대 미래 신사업이다.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의 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을 살펴본 결과, 계획에 따라 투자를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3개 계열사에서만 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4조 7000억 원을 넘어섰다. 반면 고용은 부진했다. 지난 6월 기준 현대차그룹 12개 상장 계열사의 직원 수는 2017년 말과 비교해 206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계열사별로 살펴보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각각 717명, 704명 늘었다. 현대제철(646명)과 현대모비스(582명), 현대글로비스(165명)도 직원 수가 늘었다. 그러나 현대건설과 현대위아에서 각각 545명, 258명 감소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월 현대·기아차의 공채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주력 계열사들도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기 공채가 사라진 만큼 앞으로 채용계획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차·기아차의 경우 신차 개발 등 굵직한 투자가 많았으며 고용의 경우 생산직 부문 등에서 특별채용이 많이 있는 데다 비상장 계열사도 많은 만큼 채용은 약속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기 공채를 없애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정해진 시기 그룹 전체의 인력을 동시에 뽑는 것보다 현업에 필요한 인력을 적시에 채용하는 것이 업무 공백 방지 효과가 크고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은 지난해 3월 3년간 80조 원을 투자하고 2만 8000명을 고용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반도체·소재 ▲에너지 ▲차세대ICT ▲미래모빌리티 ▲헬스케어 등 신사업에 집중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2018년에는 27조 5000억 원을 투자하고, 8500명 신규채용을 목표로 했다.
SK그룹의 투자 계획은 비교적 잘 지켜지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SK㈜와 SK하이닉스의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각각 10조 1817억 원, 21조 4287억 원으로 투자 계획을 상회했다. SK텔레콤도 4조 477억 원으로 많은 투자를 했으며, SK디앤디(2664억 원)와 SK케미칼(1459억) 등 대부분 주력 계열사가 전년보다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나 고용계획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SK그룹의 18개 상장사 직원 수는 총 4만 9472명으로 전년 대비 2344명 늘어났다. SK㈜는 4512명에서 3952명으로 되레 560명 줄었다. 반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SK하이닉스는 2만 3412명에서 2만 5972명으로 2560명 증가했다.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 등 주력 계열사의 직원도 각각 447명, 250명 증가했지만 SK케미칼은 280명 줄었다.
SK그룹은 3년 이내 단계적으로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 관계자는 “구체적인 숫자를 발표하지는 않고 있으나 계획에 수렴하게 채용했다”며 “지난해와 올해 예년과 같은 수준으로 채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기공채 폐지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올해는 이미 하반기 채용공고까지 나간 상황이고, 내년부터 수시모집 등 다양한 채용방식을 도입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중장기 계획을 세운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LG그룹은 2018년 19조 원을 투자하고 1만 명을 신규채용한다는, 1년짜리 계획을 발표했다. LG그룹 관계자는 “19조 원 모두 국내에 투자한다는 계획이었다”며 “대부분 실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LG그룹은 계열사별로 적게는 6000억 원, 많게는 2조 원까지 투자를 늘렸다. 대표적으로 LG화학은 지난해 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전년(1조 6403억 5600만 원) 대비 1조 9986억 9000만 원 늘어난 3조 6390억 4600만 원을 나타냈다. LG화학은 지난해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제3 공장을 신설하고, 촉매개발연구센터를 대산산업단지로 확장 이전하는 등 시설투자에 힘썼다. LG전자는 전년 대비 1억 8374억 1700만 원 늘어난 4조 4202억 8900만 원, LG디스플레이는 전년 대비 1조 1942억 6700만 원 늘어난 7조 6753억 3900만 원을 기록했다. LG이노텍과 LG유플러스도 전년 대비 각각 5800억 6074만 원, 2352만 7700만 원 늘었다.
LG그룹의 고용 현황을 살펴보면 ㈜LG를 비롯해 LG전자, LG화학,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 대부분 주력 계열사에서 고용이 증가했다. ㈜LG는 2017년 12월 31일 기준 114명이던 직원 수가 지난 6월 30일 기준 149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가장 직원 수가 많이 늘어난 곳은 LG전자로 3만 7653명에서 3222명 늘어난 4만 875명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LG화학(2828명)과 LG유플러스(2105명), 실리콘웍스(155명), LG생활건강(105명) 등 대부분 상장사에서 직원 수가 늘었다. 반면 LG상사(-52명)와 LG디스플레이(-4188명), LG이노텍(-3110명)의 직원 수는 줄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업황 악화로 희망퇴직을 받은 바 있다. LG이노텍은 주고객인 스마트폰 제조사의 물량에 따라 단기 채용 인력이 많아 분기별로 직원 수에 차이가 크다. LG그룹 관계자는 “비상장사도 많고 이직과 퇴직 등이 잦은 만큼 상장사 직원의 증감으로 채용계획 실행을 말하기는 어렵다”며 “그룹 차원에서 조사한 결과 지난해 1만 명의 채용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그룹은 5년간 50조 원 투자, 7만 명 신규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유통부문에 25%, 식품부문에 10%, 화학·건설부문 설비투자에 40%, 관광·서비스 부문에 25% 투자한다는 구체적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유통채널 경쟁 심화와 일본 제품 불매운동 확산 등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계획을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롯데그룹 상장사 11곳의 투자활동 현금흐름을 살펴보면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총합은 4조 1720억 원에 그쳤다. 다만 롯데쇼핑의 투자는 늘었는데, 온라인사업 확대와 복합쇼핑몰 개발 등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고용에서는 오히려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장사 11곳의 직원 수는 2017년 4만 8705명에서 지난 6월 기준 4만 5436명으로 3269명 감소했다. 직원이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롯데쇼핑이다. 2017년 2만 5992명이던 직원 수가 지난 6월 2만 4697명으로 1295명 줄었다. 롯데쇼핑은 투자는 늘었는데 직원 수가 줄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경영상황이 녹록지 않고 최근 새로운 현안이 생긴 탓에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계획대로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확인은 불가하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꿈 많던 남북경협 어디로…”사방이 꽉 막힌 상황“ 지난해 남북 화해무드와 북미정상회담 개최로 큰 기대를 받았던 남북 경제협력이 실종됐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및 경제통일 구현’ 구상을 내놓으며 활발했던 재계의 남북경협 준비도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특히 일본의 경제보복이 우리나라 경제를 강타하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5일 “남북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음에도 남북경협 분위기는 쉽게 다시 뜨거워지지 않고 있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고문이사는 “사방이 꽉 막힌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표했다. 신 이사는 “북한과 미국 간 만남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 우리도 현 정부에 어떤 것을 요구하기 어렵다”며 “어제도 회의를 열었지만 정부에 어떤 것을 요구하자는 말은 없었다. 마냥 견뎌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 폐쇄와 관련해 헌법소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신 이사는 “개성공단이 문을 닫은 직후인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가 이뤄진 것이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며 “3년이 넘도록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어 판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금강산 관광 사업권과 북한 7대 SOC 개발 독점권, 개성공단 사업 독점권을 보유한 현대그룹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재개를 기다려왔던 만큼 일희일비하지 않고 차분히 지켜보고 있다”며 “여전히 재개를 대비해 여러 로드맵을 준비 중이며 남북경협이 재개될 경우 시설점검 및 노후시설 개보수, 모객 등을 위해 3개월 정도 준비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다퉈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남북경협을 준비하던 기업들도 지금은 숨을 죽이고 있다. 지난해 남북경협 TF를 꾸렸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치외교적 흐름과 별도로 새로운 시장을 공부한다는 차원에서 TF를 계속 운영하고 있다”면서도 “기업이 단독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지켜보는 중”이라고 전했다.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진행 시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 최대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 은행들도 남북경협과 관련해서는 ‘개점휴업’ 상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고 기업들을 중심으로 산업교류가 이뤄진 후에야 금융이 할 역할이 생긴다”며 “남북경협과 관련해서는 금융업계가 주도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탓에 TF를 꾸렸던 은행들이 대부분 관련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