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동 삼각지 전경.
서울 종로구 삼청동과 광화문, 종로 1가가 모이는 중학동 삼각지는 중학동 110-2번지와 110-8번지, 111번지 위에 소형 빌딩 3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다. 110-2번지 빌딩 지하에는 한정식집 ‘다원’이 있고 그 위에는 작은 분식점 ‘산촌’과 소형 식당 ‘장가네’가 각각 영업을 한다. 2층은 ‘명동 칼국수’가 성업 중이다. 점심만 되면 이마빌딩에서 일하는 마이크로소프트 대리도 오고 근처 대림건설 과장도 와 3000원짜리 김밥과 6500원짜리 순두부찌개를 먹는 동네다.
직장인들은 이 빌딩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옆 110-8번지 빌딩 카페에서 후식을 먹는다.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 샌드프레소’가 젊은 직장인을 상대로 커피를 내려준다. 샌드프레소 2층은 카페 ‘퀸’이다. 지하에 있는 술집은 청와대 직원이 자주 찾는 곳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복을 대여하는 가게도 이 근방에 여럿 있다.
대도심 한복판에서 영업을 해 온 이곳 상인들에게 이제껏 재개발 같은 이야기는 낙후된 지역 아파트 주변부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여러 해에 걸쳐 광화문 주변에 현대식 고층 빌딩이 이미 들어섰고 개발이 쉽지 않은 대형 문화재도 바로 옆에 있는 까닭이었다. 고칠 곳이 좀처럼 없는 이곳은 이제껏 ‘개발’과 가장 먼 동네였다.
‘주민배제, 졸속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결사반대’ 현수막이 걸린 중학동 삼각지 빌딩.
그러던 최근 중학동 삼각지 빌딩 한쪽에는 최근 ‘주민배제, 졸속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서울시의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때문에 이들이 생계를 이어가던 광화문 인근 자투리 땅이 수용될 위기에 놓인 까닭이다.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강행돼 광화문 바로 앞이 광장으로 바뀌면 이 삼각지 건물 3채는 새로 생길 우회도로 때문에 철거돼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이제껏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울시는 충분히 들었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광화문광장 확장에 대한 주민 설명회를 열었을 때 물론 반발이 있긴 했지만 광화문 광장 사업에 대한 것보다는 지금의 집회 시위 때문에 힘든 점을 토로하더라. 일상 생활의 자유가 너무 침해 받는다는 불만이었다”며 “여기에 사업 소개를 하니 ‘집회와 시위가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둘러싼 서울시-행안부 2라운드)
중학동 삼각지에서 수십 년 영업해 온 소형 식당 산촌과 장가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중학동 삼각지에서 작은 식당 ‘장가네’를 운영하는 장명선 씨(여·69)는 “6월쯤 SH서울주택도시공사 직원 2명이 갑자기 찾아와서 명함을 주고 ‘구조화 사업 아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더니 ‘방송으로 알렸는데 모르냐’고 하더라. 그러면서 ‘일이 시작될 것 같다. 99.9% 확률’이라고 했다. ‘일방적으로 왜 그러냐’고 반문하면서 눈물이 확 났다”고 했다.
장 씨는 38년 전인 1980년대 초부터 이곳에서 영업을 해온 중학동 삼각지 터줏대감이다. 남편이 38년 전 당시 권리금 2800만 원을 주고 화방을 차린 게 이 동네와의 첫 인연이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당시 2800만 원은 현재 1억 원이 조금 넘는다.
화방을 10년쯤 운영했던 남편이 1990년대 초 세상을 떠나자 장 씨는 막막했다. 맘씨가 좋았던 장 씨의 남편은 퍼주기만 하다가 빚만 쌓아놓고 갔다. 나이 마흔에 자라나는 아이는 셋이었다. 살던 집을 넘기고 전세로 옮긴 장 씨는 화방 자리에 장가네를 차려 라면과 김밥 등을 팔았다. 한 달 남기는 돈은 2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다. 현재 아이들은 다 컸지만 장 씨에겐 노후 자금이 없다.
장 씨는 “들어보니까 나가면 이사비조로 4개월치 영업이익을 준다고 하더라.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다른 곳에서 장사를 다시 시작하려면 자리 잡는 데 최소 3년이 든다. 난 여기에 오래 몸담고 열심히 해 왔다. 노후가 막힐 수밖에 없는데 무슨 대책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눈물을 보인 건 장 씨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17년째 장사를 하는 A 씨 눈에서도 눈물이 고였다. 그는 “2003년 권리금 1억 원을 주고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를 하다 보니 비가 샜다. 3600만 원 정도 내 돈 들여 시설 및 수리하느라 썼다. 그런데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갑자기 와서 하는 소리가 ‘이런 도로를 하게 됐다. 협조 좀 해달라’였다. 그냥 협조만 해달라? 무슨 협조를 말하나? 그 뒤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당황해서 눈물만 나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난 아침 6시까지 나와서 밤 9시까지 15시간을 여기서 산다. 모든 걸 다 여기에 쏟아붓는다. 아직 애들이 자리를 못 잡았다. 남편은 직업이 없다. 이 가게 수입이 우리 네 가족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걸 하루 아침에 없애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가 남기는 돈은 한 달에 약 300만 원쯤 된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이사비로 제시한 금액은 가게 4개월 치 영업이익으로 알려졌다. 계산해 보면 1200만 원쯤이다. 그가 2003년 이 가게에 들인 권리금과 시설비, 수리비는 1억 3600만 원이다. 현재 기준 1억 9200만 원쯤 된다.
이곳에서 한복 임대 사업을 하는 임상혁 씨(52)에 따르면 서울시 공무원은 아직까지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6월 SH서울주택도시공사 관계자가 한 차례 찾아온 게 다였다. 그는 “물건 조사 하기 전에 9급 공무원 하나 방문한 적 없다. 그냥 다 정해놨더라. 이 소식을 우리도 인터넷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방문 당시 남긴 건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사업 물건 조사 안내’ 서류였다. 거기엔 향후 보상절차 및 일정만 간단하게 남겨 있었다. ”새로운 광화문 조성사업과 관련해 사업지역 내 주민 여러분의 구체적 보상 계획 수립을 위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아래와 같이 물건 조사를 진행하고자 하오니 주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 드립니다.“ 2019년 6월부터 7월까지 물건조사를 한 뒤 2019년 8월에 실시계획인가고시를 거쳐 9월과 10월에 보상계획을 공고하고 11월 감정평가를 한 뒤 2019년 말 보상을 완료한다고 나왔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