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중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라면하고 참기름하고 싸움이 났는데 다음 날 라면이 경찰에 체포됐어요. 참기름이 고소해서. 그런데 그 다음날 참기름도 체포됐어요. 라면이 불어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일요신문과 만난 김상중(54)이 제일 먼저 풀어 놓은 ‘아재개그’였다. 반응이 영 시원치 않자 회심의 한 방이 나온다. “소지섭하고 소유진의 공통점이 뭘까요.” 답은 ‘성(성씨)동일’이란다. 기자들 사이에서 작게 웃음이 터지자 김상중의 얼굴에도 뿌듯한 미소가 감돌았다.
“제가 연기 인생 30년 간 ‘그알’을 13년간 진행해 오다 보니까 이게 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된 셈이죠. 그러다 보니 너무 희화화된 캐릭터를 가지고 연기하다가, 토요일에 나와서 ‘그런데 말입니다’ 하고 있으면 그 캐릭터와 ‘그알’ 진행자가 오버랩이 돼서 이미지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겨요. 그런데 또 너무 정형화돼서 ‘김상중은 딱딱하다’ ‘무섭다’ ‘이성적이다’ 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나와서 아재 개그를 많이 하는 겁니다. 김상중의 이면에는 또 저런 게 있구나, 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배우 김상중. 사진=박정훈 기자
나이 어린 대중들은 김상중을 ‘그알 아저씨’나 ‘중년탐정 김상중’으로 생각하지만 그의 본업은 배우다. 특히 이번에 그의 인생 캐릭터로 꼽혔던 ‘오구탁’으로의 귀환은, 김상중 자신에게도 특별한 일일 수밖에 없다. 2014년 OCN 드라마 이후 5년 만에 다시 인생 캐릭터로 연기하게 되는 것이다.
“오구탁에게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어요. 제가 ‘그알’을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시청자 분들께 통쾌한 ‘한 방’을 날려드리진 못하잖아요? 그런데 오구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범죄자에게 시원하게 한 방을 날려주는 것에 제가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출연 제안이 왔을 때는 환호성을 질렀어요. ‘내가 못 했던 걸 이 캐릭터가 해주는 구나,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더 열심히 분석하고, ‘그알’ 말투로 연기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말투도 연구했어요.”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영화판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청소년 시청 불가였던 원작의 어두운 분위기를 조금 더 밝게, 그리고 스케일은 더 크게 확장시켰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유쾌하고 상쾌하게 볼 수 있도록 맞춰 보자”는 제작진들의 의기투합 덕이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원작의 진지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사랑한 애청자들은 이런 분위기 전환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나쁜 놈들이 더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그 방법이 더 통쾌하고 가차 없었죠. 그러다 보니 ‘드라마는 이 정도 수위였으니 영화는 더 하겠지?’ 라는 팬 분들의 기대에 따른 아쉬움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속 편하게 영화의 속편을 만들 수 있다고만 말할 수 있다면 또 다른 부분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러려면 일단 이번 영화가 잘 돼야 하겠죠.”
배우 김상중. 사진=박정훈 기자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에서 원작 팬들을 아쉽게 하는 또 다른 문제는, 출연하는 원년 멤버가 오구탁과 박웅철(마동석 분) 둘 뿐이라는 점이다. 마동석의 사랑스러움으로 어느 정도 아쉬움을 커버할 순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대신 김상중은 원년 멤버끼리의 우정 어린 뒷이야기를 풀어 팬들의 갈증을 채워줬다.
“동석이가 ‘그알’을 엄청 좋아해요. 만나기만 하면 영화 얘기는 안 하고 ‘형님, 지난번에 그알에서요’ 하고 ‘그알’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이번 영화에서 보면 동석이가 ‘그것이 알고싶네’라는 대사를 하는데 그건 제가 준 대사 아닙니다. (웃음) ‘그알’의 열성팬인 동석이의 애드립이었어요. 애드립이나 대사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는 편인데 그런 부분들이 귀엽더라고요. ‘마블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아요. 저는 ‘마큐티’ 라고 불러요. (웃음)”
김상중은 영화 속에서 터질 듯한 근육을 자랑하는 마동석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간암 말기의 시한부 환자로 가뜩이나 마른 몸이 더욱 핼쓱해진 모습이 오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법도 하다.
영화 ‘나쁜녀석들: 더 무비’ 제작보고회에서 김상중과 마동석. 사진=고성준 기자
특히 김상중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걸그룹 뺨치는 1일 1식 종결자”라는 별명까지 갖게 된 상황이다. 전날 메밀국수를 먹었다는 이유로 다음 날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버티는 그의 방송 화면 캡처를 보고 경악한 대중이 붙여준 별명이기도 하다. 이 같은 별명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그는 새삼 진지한 얼굴로 “요즘 1일 1식이라는 이야기 굉장히 싫어한다”며 “일식(日食)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1일 일식 아니고 1일 한식하는데…(웃음) 사실 저는 배가 안 고프면 잘 안 먹습니다. 공연할 때는 한 끼도 안 먹고 한 적도 있어요. 그게 습관이 돼서 배가 안 고프면 안 먹고, 배고프면 먹고 그런 식이지. 습관적으로 ‘때 되면 먹는다’ 이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이처럼 한 시간 동안 진지함과 개그를 넘나들던 김상중의 마지막은 ‘오구탁’과 ‘그알 진행자’가 그렇듯, 진중하고 이성적인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다소 모호한 질문일 수 있는 ‘김상중이 바라는 세상’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알’을 하면서 우리 법의 효용성이라든지, 지금 세상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각 같은 것에 자괴감이 들 때가 있었어요. 13년 전에 했던 이야기를 지금도 똑같이 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하지 않을까… 하지만 조금씩 세상이 변화되는 것만은 분명하고, 또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래도 우리 사회에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경찰, 더 좋은 정치인이 많다는 겁니다. 저는 이 세상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길 바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상은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계속 돌아갈 수 있는 거니까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