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정치’에 저항하겠다며 만들어진 바른미래당이 창당 1년 9개월을 맞이하고 있다. 온갖 기대를 안고 만들어진 정당이지만, 반복되는 구태정치로 당을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진은 2018년 5월 3일 유승민 당시 대표와 손학규 중앙선거대책위원장,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자. 박은숙 기자
21대 총선과 관련해서도 희망적인 진단들이 제시되곤 했다. 보수성향의 바른정당과 진보성향인 국민의당의 지지기반과 지역구가 서로 엇갈리는 만큼, 총선에서 전국구 당선을 꿈꿔볼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곤 했다. 게다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박차고 나오며 ‘새 정치’를 외치던 인물이다. 19대 대선 후보도 경험했던 이 거물들이 손을 맞잡는 것부터가 정치권의 화제였던 것이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출혈도 있었다. 국민의당 내 일부, 특히 호남을 기반으로한 인사들이 바른미래당으로의 통합에 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당을 떠나 민주평화당을 만든 것이다. 창당 준비도 쉽진 않았다. 당명 선정에 크고 작은 해프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긴 우여곡절 끝에 양당은 2018년 1월 ‘바른미래당’으로 통합하게 된다.
창당 극초기에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창당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2018년 1월 23~25일, 한국갤럽 자체조사,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국민‧바른 통합정당’은 17%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이는 창당 준비 과정 중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시점(2월 20~22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선 8%, 지방선거를 2주 앞둔 시점(5월 29~30일, 한국갤럽)에는 지지율 5%라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민심은 냉정했고, 그 민심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바른미래당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을 단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한 것이다.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으로 유승민 전 대표와 인재영입위원장이던 안 전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를 기점으로 바른미래당 내의 내홍은 더욱 심해졌다. 당내 화합을 다지자는 취지로 1박2일 워크숍도 가졌지만, 오히려 싸움만 격화될 뿐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바른미래당의 실패를 두고서 여러 분석들이 제기됐다. 제일 먼저 거론되는 원인은 또렷하지 않은 정치성향이다. 서로 다른 성향의 두 당이 합치면서 당연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지만, 이를 조율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자연스레 정책과 노선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아울러 유‧안 전 대표, 두 거물 정치인이 함께 어우러지지 못했다는 점 또한 한계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9월 2일은 손학규 대표의 취임 1주년이었다. 그가 당권을 잡은 뒤 당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안철수계’와 ‘유승민계’이던 바른미래당은 화합은커녕 ‘당권파’ 혹은 ‘손학규계’로 불리는 계파가 하나 더 탄생했다. 28명밖에 되지 않는 당에 계파가 셋, 심지어 28명 중 세 명의 비례대표는 다른 당에서 ‘당 대변인’ 등의 직함으로 활동하기도 하며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였다.
폭풍우 속 ‘손학규 호’는 순탄치는 않았다. 자신이 제안해 만들어진 혁신위는 오히려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는 상황이고,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당 대표 퇴진’을 외치고 있다. 그런 손 대표를 향해 대안정치연대(민주평화당에서 탈당)는 새로운 시작을 물밑으로 제안했다. 손 대표가 혼란한 당을 박차고 나와 자신들과 새 정당을 꾸릴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손 대표는 온갖 수모에도 당을 지켰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지난 9월 4일 당 대표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유승민·안철수 전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박정훈 기자
자신의 입으로 “추석 전 당 지지율 10%가 안 되면 사퇴하겠다”고 못을 박았지만, 지금 와선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게 된 셈이다. 손 대표의 최측근은 기자에게 “절대 사퇴 못한다. 나가려면 그들(안‧유 전 대표)이 나가야지 우리가 왜 나가냐”라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바른미래당은 ‘꿀’이다. 이걸 두고 어떻게 나가겠나”라고 했다. 올해 3분기 정당보조금까지 합산하면 바른미래당의 자산은 약 1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일각에선 한국당보다 더 많이 가졌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때문에 매일 싸움을 벌이면서도 ‘합의이혼’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유승민계는 당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론 한국당 복당을 꿈꾸고 있다.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이혜훈 의원이 조용술 전 혁신위원을 불러 ‘한국당이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한국당 복당을 위해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몸값’을 올린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극우 세력인 우리공화당도 외면하지 못하는 한국당의 상황을 바라보며 유승민계는 복당 논의가 활발해지기 전까진 ‘손학규 퇴진’을 외치며 당을 지키는 것이다.
‘추석 전 귀국설’에 불을 붙이던 안 전 대표는 당분간 휴식기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4일 각종 보도에 따르면 안 전 대표의 측근인 이태규 의원은 “아직 귀국 계획이 없다. 현지에 더 머무르며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손 대표의 한 측근은 “유 전 대표와 손 대표의 갈등이 지금 심한 상태다. 두 사람 모두 고집이 있고 대화가 잘 안 되는 편이다. 때문에 안 전 대표가 와서 정리해줘야 한다. 당을 정리할 사람은 안 전 대표다. 그가 당을 잘 정리하면 그에게도 정치적 성과로 남을 것”이라며 “지금이 적기다. 정치판이 난장판이지 않냐. 믿을 놈 하나 없는데, 지금 들어와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의 귀국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선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손에 때를 묻히기 싫어하는 입장이다. 더 정리되면 들어오겠다는 입장이고, 지금으로선 확신을 못 가지는 것 같다”며 “안 전 대표의 측근들은 ‘조기 귀국은 아직 섣부르다. 판 정리되면 들어와야 한다’, 지지그룹은 ‘지금 귀국하라’는 입장으로 엇갈린다”고 말했다.
아울러 “손‧안‧유 세 사람은 통합해야 한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만큼 제3지대가 큰 기회를 맞은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국민들이 불러줘야 오는 거지,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다. 총선이라는 핑계로 들어올 수는 없다”면서도 “당이 지금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들어오겠나”라고 털어놨다. ‘안 전 대표가 당에서 중재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손 대표에게 스스로 노력하라고 하라. 중재라는 건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손 대표의 역할”이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유승민계 인사는 “통합은 무슨 통합이냐. 손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의 앞으로 행보에 대해선 부정적인 진단이 앞선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은 네 가지 안을 제시했다. 채 연구원은 “손 대표와 안 전 대표는 20대 총선 때 승리를 거둔 것을 회상하며 21대 총선에서도 제3지대에 대한 기대를 할 것이다. 어쩌면 대안정치연대와 한묶음으로 같이 갈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손 대표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안 전 대표를 앞세우는 것이다. 그를 통해 제3지대를 구축하는 것이 첫 번째 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둘, 유 전 대표를 주축으로 보수재편을 하는 것이다. 바른미래당 중심으로 야권을 재편하고 보수대연합을 만드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당을 먹겠다는 기획인데, 그게 통할지는 미지수”라며 “셋, 현재대로 싸우면서 가는 것이다. 현재 좌우 진영논리가 너무 강하다. 위의 두 가지 안이 실행이 안 됐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이미 늦은 것이다. 현상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채 연구원은 “각자도생하며 자기 편한 쪽으로, 친분이 있는 의원의 인맥을 따라 흩어지는 모습일 수 있다. 이게 최악의 안”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국민의당이 분열하고 안 전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며 힘이 빠졌다. 중도보수와 중도진보를 장악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런 콘셉트로 마케팅했어야 했는데 어려운 점이 있었다”라고 실패 원인을 지목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