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기용.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오후 느지막하게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기용은 생기발랄해 보였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졌던 인터뷰 강행군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첫 스크린 데뷔 소감에 “설레고 떨린다”고 대답하면서도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엊그제 시사회가 있었는데, 영화 데뷔라는 게 피부로 느껴질 만큼 실감은 안 나요. 저도 그날 영화를 처음 본 거거든요. 제가 드라마 ‘나쁜 녀석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캐스팅 제안이 왔을 때 받아들였는데, 너무나 큰 역할이었죠. 그런 감사한 기회가 왔기 때문에 더 잘 하고 싶었고, 그렇게 잘 해냈다고 생각해요.”
장기용은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영화판 ‘나쁜 녀석들: 더 무비’에서 영화 오리지널 캐릭터인 ‘고유성’ 역을 맡았다. 거칠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열혈 독종 형사이면서도 ‘나쁜 녀석들’ 팀 안에서 귀여운 막내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시나리오에도 그렇고 감독님 말씀도 그렇고 저에게 ‘무조건 독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독종 신입답게 눈에도 독기가 있어야 하고, 캐릭터 자체가 독기를 강조해서 센 눈빛 같은 게 필요했어요. 첫 등장부터 뭔가 섹시한 매력이 있잖아요. 저는 그걸 ‘좀비 섹시’라고 표현해요. (웃음)”
배우 장기용.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랜 기간 팬덤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의 신규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은 또 다른 부담감일 수도 있다. 새로운 관객과 드라마 팬덤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탓이다. 여기에 더해 장기용이 기존에 맡았던 로맨스 드라마 속 캐릭터와 또 다른 ‘거친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원래 웃음도 되게 많고,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고 ‘센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어요. 저 사실 되게 해맑거든요. (웃음) 그런데 연기로 표현할 때는 ‘내게도 이런 면이 있구나’ 하게끔 연기하는 거죠. 카메라 앞에서 이런 캐릭터의 옷을 입었을 때 희열감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거 같아요. 이런 캐릭터들은 연기를 할 때 상상력을 바탕으로 해야 하니까, 다른 외국 배우들의 분위기도 참고하고 그걸 어떻게 하면 장기용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요.”
특히 이번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에서는 장기용의 액션 씬에 주목해야 한다. 187cm 장신에 다부진 어깨. 누가 봐도 액션 배우처럼 보이는 그가 스크린에서 펼치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은 관객들의 눈길을 충분히 사로잡을 만하다. 그런데 이 남자, 사실은 ‘각 잡고’ 운동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한 번도?” 라며 놀란 기자의 질문에 오히려 본인이 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 번도”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진짜 운동 제대로 배워본 적 없어요. 그냥 걷는 거, 조깅 같은 거 하고 온가족이 일요일마다 등산가고 그런 정도예요. ‘고백부부’ 찍을 때도 수영 처음 배워 봤어요. 그런데 그런 것치고 제가 액션을 또 사랑하거든요. 극중에서 건물 뛰어 넘는 액션은 다 제가 했어요. 한 80~90% 씬은 제가 다 한 거 같아요. 제가 운동신경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몸 쓰는 걸 잘 못 한다고 생각했어요. 운동을 제대로 배우면 아마 더 빠르게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 제작보고회에서의 배우 장기용. 사진=고성준 기자
그런 그의 액션 선생은 배우 마동석이 맡았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에서 오구탁(김상중 분)과 함께 단 둘 뿐인 원년멤버로 등장하는 박웅철이 그의 역할이다. 극 초반 박웅철과 고유성의 1대 1 대결은 관객들로 하여금 박웅철의 괴력과 고유성의 독기를 한 번에 보여주는 귀한 씬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현실 촬영 현장에서 마동석과 맞붙어야 했을 장기용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 씬 보면 제가 선배님한테 목이 잡히는데 진짜 처음으로 마동석 선배님의 힘을 피부로 느낀 거예요. (웃음) 선배님이 힘이 굉장히 세시다는 걸 익히 들어서 알기 때문에 예상도 했고, 선배님도 ‘살살 할게’ 하셨는데 진짜 제 입장에서는…(웃음) 선배님이 ‘기용아, 이거 잘못하면 너 다칠 수도 있어’ 하시는데, 그 말 들으니까 더 무섭더라고요. 말 안 하셨으면 덜 무서웠는데…”
마동석과의 두려운 액션 씬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장기용이 고유성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장르가 어떤 것이든 간에 늘 로맨스 스토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캐릭터로 고착되고 싶지 않았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제가 앞서 한 캐릭터와 똑같은 걸 또 연기하면 설렘이 없을 것 같았어요. 다른 캐릭터를 받으면 궁금해져요. 내가 이 캐릭터를 연기하면, 이 캐릭터의 옷을 입으면 어떻게 소화할지. 카메라 앞에서 내가 어떻게 비추고 어떻게 거칠게 나올지 그게 궁금해요. 그런 게 설렘인 것 같아요. 늘 했던 캐릭터만 하면 궁금하거나 설레는 게 없잖아요. 고유성도 그런 점에서 선택했고, 고민을 많이 하면서 연기했어요.”
배우 장기용.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중함 덕일까. 그는 2014년 배우 데뷔, 2017년 지상파 첫 주연 발탁부터 승승장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KBS ‘고백부부’와 tvN ‘나의 아저씨’ MBC ‘이리와 안아줘’,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달려 왔다. 기회는 발로 뛰는 자의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매순간 최선을 다 하다 보니 그런 기회가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고백부부’ 이후 쉬지 않고 작품을 했는데, 만일 제가 쉬거나 좀 더 편한 것을 찾아다니며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쁜 녀석들: 더 무비’ 같은 기회도 오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그냥 일 하는 게 좋아요. 쉬면 자꾸 잡생각만 들어서…(웃음).”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앞으로도 장기용은 ‘소처럼’ 일할 계획이다. 향후 활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순탄하게 잘 항해하고 있는 이때까지의 모습처럼 똑같이 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백부부’때 처럼 과감하고 용기 있게 선택할 수 있는 저 자신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있어요. 공중파에서 처음 주연을 맡을 때에도 너무 무섭고 떨렸지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 안 해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하게 될지 모르는데, 걱정보다는 과감하고 용기 있게 선택해야 한다고. 저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똑같이 활동하겠지만, 그러면서 대중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장기용 배우가 하면 좋을 것 같아, 잘 어울릴 것 같아’ 라는 말. 지금처럼 하면 언젠가는, 40대 초반에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작품의 ‘감독 픽(Pick)은 장기용이다’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