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피해자들만으로 고소인단을 꾸려 이 전 부회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한 것은 동양 사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이 사건은 대표 고소인 주소지 관할인 대구 수성경찰서에서 지난 8월 1차 고소인 조사를 마친 후 이혜경 전 부회장의 주소 관할인 종로경찰서에 이첩돼 있다.
2013년 11월 당시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이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헤경 전 부회장은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장녀로 실질적으로 그룹을 상속한 장본인이다. 고소인들은 고소장에서 동양사태 당시 이혜경 전 부회장이 남편 현재현 회장과 함께 공동책임이 있음에도 검찰이 특경법상 사기죄로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동양사태란 2013년 자금난에 몰린 동양그룹이 동양증권을 통해 상환능력이 없음에도 1조 3000억 원 어치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등을 발행 후 9942억 원 지급불능 처리했고 그룹 해체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사건이다. 동양 CP와 회사채 등에 투자해 피해를 본 사람은 4만여 명, 피해액은 1조 7000억여 원에 달한다.
동양 사태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은 징역 7년 확정 판결을 받아 수감 중이다. 현 전 회장과 함께 기소된 정진석 전 동양증권 사장은 징역 2년 6월, 김철 전 동양네트웍스 대표는 징역 4년, 이상화 전 동양인터내셔널 대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고소장에서 고소인들은 “이혜경 전 부회장이 2007년부터 그룹 부회장으로 취임해 경영에 적극 관여했다. 또한 그녀는 그룹 대주주이자 등기이사로서 그룹 전체의 자금상황과 구조조정 진행상황에 대해 보고받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위치에 있었다”며 “CP와 회사채 발행과 그룹의 상환능력 등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례로 동양그룹이 2012년 12월 세운 구조조정 계획 중에는 산업은행으로부터 브릿지론을 받아 시간을 벌자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2013년 6월 현재현 회장을 2번, 이혜경 부회장을 1번,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을 1번 만나 이들에게서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 지원 요청을 받았다”고 같은 해 10월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진술했다.
고소인인 김대성 동양채권자 비상대위원회 대표는 “이혜경 전 부회장은 동양그룹의 자금상황을 잘 알고 구조조정 계획의 실행을 위해 직접 금감원장을 만나기까지 했다”며 “상황이 이런데 이 전 부회장은 사기 혐의에서 빠져 있어 고소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검찰은 이혜경 전 부회장에게 사기 혐의 대신 강제집행면탈 혐의를 적용했다. 강제집행면탈이란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은닉하는 등 행위를 말한다. 이 전 부회장은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성북동 자택 대여금고에서 패물 및 현금을 인출해 갔다. 또한 그녀는 자택과 사옥에서 보관하던 미술품, 고가구, 도자기, 장신구 등 400여 점을 반출해 서미갤러리 창고 등에 숨기고 일부 미술품 13점은 국내외에서 약 48억 원에 매각한 게 강제집행면탈에 해당한다.
검찰은 2014년 9월 30일 이 전 부회장과 위탁한 미술품 일부를 은닉 및 매각한 홍성원 서미갤러리 대표에게 해당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이 전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불구속 상태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고소인들은 “동양사태는 단순 사기사건이 아니다.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재산을 은닉하는 것만 궁리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혜경 전 부회장에 대한 엄중한 처벌로 정의를 세워 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혜경 전 부회장 측 변호인은 “고소인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잘 모르는 내용이다. 피고소인 조사 등이 이뤄지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