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들과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정치권에선 친문(친문재인) 진영이 내년 총선에서 청와대 참모들을 조직적으로 당선시키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온다. 야당은 “청와대가 총선 캠프가 됐다”고 비판했다.
과거 김영삼 정부와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임기 말이 되면 여당 내에서도 청와대와 각을 세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대통령 입장에선 총선 승리를 넘어 ‘이왕이면 내 사람을 많이 당선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참모들 입장에서는 대통령 후광으로 비교적 유리한 고지에서 선거 치를 수 있으니 좋고, 대통령 입장에선 자기 사람을 국회에 한 명이라도 더 진입시킬 수 있으니 좋다. 선거 때마다 청와대 참모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역대 정권 청와대 참모들의 총선 성적표는 어땠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박지원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복은 있지만 참모 복은 없다. 청와대(참모들)부터 보신처를 찾아 총선에만 나가려고 한다”며 “김 전 대통령이었다면 이런 참모들에게 날벼락을 쳤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시만 해도 청와대 참모들의 총선 출마는 권장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상황이 변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였다. 취임 초 노 전 대통령은 기존 민주당과 결별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참여정부가 성공하려면 국회에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총선 승리가 절박했다. 민주당과 결별하며 인재풀이 빈약해진 노 전 대통령은 경쟁력 있는 주변인물은 모두 총선에 ‘징발’했다.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등이 노 전 대통령 권유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총선 출마를 강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은 탄핵 사태 후폭풍으로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청와대 참모들의 당락은 대통령 지지율이 좌우한다. 노 전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맴돌 때인 2008년 총선 때는 참모들이 청와대 근무 이력을 숨기고 출마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런데 2012년 총선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가 조성되자 노무현 청와대 근무 이력이 후광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범계, 전재수, 황희 의원 등 노무현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19대, 20대 총선을 통해 대거 국회로 진입했다. 이들은 현재 친문으로 변신해 문 대통령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부 대통령은 무리하게 자기 사람을 당선시키려다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 퇴임 뒤 ‘안전판’ 구축 차원에서 청와대 참모들의 총선 도전을 지원해야 한다는 문건이 작성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가 지난 2017년 공개한 ‘대통령실 전출자 총선 출마 준비 관련 동향’ 문건을 보면 당시 청와대가 참모 출신 총선 후보자를 적극 지원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문건은 “대통령실 전출자 중 행정관 이상 11명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데 대통령실 차원의 직간접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실 출신 당선자들은 새로 구성되는 국회에서 현 정부 정책기조를 홍보해주고 임기 말과 퇴임 이후 VIP의 정치적 영향력 유지에 긍정적 역할이 기대된다. ‘VIP 국정철학 이행과 퇴임 이후 안전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당선율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었다.
문건에는 출마 준비자들의 실명도 적혀 있었다. 정진석 전 정무수석, 박형준 시민사회특보, 이성권 전 시민사회비서관, 김희정 전 대변인, 정문헌 전 통일비서관, 김연광 정무1비서관, 함영준 전 문화체육비서관, 이상휘 전 홍보기획비서관, 김형준 전 춘추관장, 심학봉 전 지식경제비서관실 행정관, 김혜준 전 정부1비서관실 행정관 등이다.
그럼에도 결과는 처참했다. 19대 총선에서 이중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선하거나 총선에 출마조차 못했다. 당사자들은 문건 내용과는 다르게 청와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며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대 총선에서는 이명박 청와대 참모 출신들의 성적표가 더 참담했다. 친이(친이명박계)계는 이 전 대통령 퇴임 후에도 정기적으로 만나 세를 과시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출마 예정자들이 이 전 대통령과 모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김두우 전 홍보수석은 컷오프 됐고, 정문헌, 이성권, 이동관, 최금락, 박정하, 김석붕 등은 경선에서 탈락했다. 법무비서관을 지낸 권성동 의원을 제외하고는 전멸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인사들도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진박(진실한 친박) 논란까지 일으키며 박근혜 청와대 참모들이 20대 총선에 대거 출마했지만 당선자는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 이정현 전 홍보수석, 곽상도 전 민정수석, 김선동 전 정무비서관, 주광덕 전 정무비서관 정도에 그쳤다. 특히 박근혜 청와대는 총선에 개입하기 위해 불법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비용은 국정원이 대납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박근혜 청와대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에게 살생부까지 전달했다. 김 대표에게 청와대 뜻이라며 살생부를 전달한 인사는 “(총선 지더라도) 말 잘 듣는 충성스러운 80~90명 의원만 당선되면 좋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반면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 이야기는 달랐다. 신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야당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국회선진화법상 신속처리 요건인) 180석도 가능하다고 봤다. 총선은 어차피 이기니까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공천문제에 몰입하게 된 거다. ‘선거 져도 돼. 우리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만 장악하면 돼’가 아니고 ‘선거는 이기니까 친박 공천에 몰입하는 구조였다’”고 회고했다. 실제로는 공천 싸움 끝에 새누리당은 122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고 원내 제1당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청와대 참모 출신들도 내년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총선이 집권 4년 차에 치러지는 만큼 정권 심판론이 대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거 출마해 전면에 나서면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가 더 선명해질 수 있다.
박정희정치연구소 박정희 소장은 “조국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 후광으로 청와대 참모들이 내년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위기 상황인 만큼 청와대는 자기 사람 심기에 집착하지 말고, 민주당은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보내 정권 심판론을 비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