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청와대 매파(강경파)가 누굴까.” 조국 대전이 극에 달했던 9월 초 친문(친문재인)계 한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조국 논란에서 촉발한 강남 좌파의 몰락. 진영 논리에 매몰된 여권. 반대 여론에도 밀고 나가기만 하는 청와대의 강경 일변도. 그 중심에는 문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매파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합리적 추론이었다.
특히 친문 직계가 주축인 이른바 ‘부엉이 모임’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팽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엉이 모임은 부엉이처럼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달(문 대통령)을 지킨다는 의미로, 지난해 6월 말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황희·박광온·김종민 의원 등 40여 명이 부엉이 모임의 핵심 인사로 분류된다. 부엉이 모임 일부 의원들은 “우리가 조국에게 속은 게 아니냐”라는 말을 비공식 석상에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콘크리트 지지율의 대명사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너진 것도 한순간이었다”라며 “포스트 조국 정국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예단하기 어렵다”라고 우려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1∼2주에 불과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 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집권 4년 차인 2016년 중반까지 30%대 지지도를 유지했지만, 국정농단 게이트가 터진 직후인 11월 첫째 주(11월 1~3일 조사·4일 발표·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5%까지 추락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도는 더는 반등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이 법적 탄핵 이전 민심으로부터 먼저 탄핵을 받은 셈이다.
국정농단 게이트의 본질은 비선 실세의 존재다. 전횡을 일삼는 매파의 득세다. 문재인 정부 내 비선 실세는 실존하지 않지만, 일부 참모진이 국정정책의 의사결정을 주도한다는 의혹은 있었다. ‘조건부 연장’의 예상을 깨고 전격적으로 종료 결정을 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대표적이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일본 공영방송 NHK는 8월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소미아 종료에 찬성했다고 보도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대신 참석했던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은 반대 입장에 섰지만, 문 대통령이 노영민·김현종·김유근의 손을 들어주면서 4 대 3으로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들 3인방을 청와대 내 ‘대미 자주파’로 지칭하며 강경 일변도식 정책 결정을 주도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 청와대 일부 매파가 ‘조국 임명’ 강행을 밀어붙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 대통령은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6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등 일부 참모진과 새벽까지 마라톤 회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 당시에도 여권 일부 인사들은 ‘검찰주의자 윤석열 반대’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문 대통령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당시에도 당 안팎에선 “누구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돌았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 대통령의 ‘조국 임명 강행’은 강경파 주도의 결정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선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친노(친노무현)계 관계자는 “야권의 전방위 공세가 지속됐을 땐 이미 고(GO)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며 “조 장관을 지명 철회했거나, 자진 사퇴 등으로 정리했다면, 정국 주도권을 일시에 실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 의원도 9월 9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조국이 무너지면 문 대통령을 향해 또 다른 돌격이 있을 수 있다”며 “심지어 탄핵 이런 이야기도, 하야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조 장관의 ‘임명이냐, 낙마냐’를 놓고 숙고한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 임명을 9월 9일 오전 9시께 최종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그 전날까지만 해도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에게 ‘임명 때 메시지’, ‘낙마 때 메시지’를 모두 준비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9월 6일 국회 인사청문회 종료 직전 조 장관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검찰에 전격 기소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당 지도부와 친문계 내부에선 “검찰 개혁이 가능하겠느냐”, “득실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라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문 대통령의 선택지도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민주당 이해찬 지도부가 9월 8일 긴급 소집한 최고위원회에서도 ‘조국 찬성’이 7명으로, 반대·유보(3명)를 압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청 모두 조국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총선이다. 특히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과 PK(부산·울산·경남) 민심에 적색 경고등이 켜졌다. 들불처럼 번지는 대학가의 촛불 시위를 비롯한 2040세대와 중도층의 이탈은 수도권 패배의 전조 현상이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선거는 어차피 막판으로 가면, 51 대 49 싸움”이라며 “2%포인트 당락은 스윙보터(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없는 부동층)를 누가 잡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말했다.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 조국 임명 반대 의견이 많았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PK는 더 심각하다.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PK의 부정평가는 전국 최고치에 근접했다. 8·9 개각 당시 ‘조국 순풍’을 기대했던 PK 친노·친문 인사들은 ‘조국 역풍’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포스트 문재인’으로 지목받았던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드루킹 댓글 공모 의혹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대권 주자군에서 이탈했다. 이후 PK 친노·친문 인사들은 ‘조국 대망론’에 군불을 지폈다.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나 조 장관마저 오발탄 논란에 휘말렸다. PK 친노·친문 인사들이 찍은 ‘김경수·조국’이 연이어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이쯤 되면 PK 저주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문 대통령의 조국 임명 강행으로 여론으로부터 성공적인 평가를 받기는 어려워졌다”며 “정국은 당분간 적극 지지층 간의 세 결집 양상으로 흐를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