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안양에서 길고양이 2마리가 참혹한 사체로 발견됐다. 케어 홉페이지 캡처
지난 5월 경기도 이천에서 동물을 상대로 한 엽기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20대 남성이 3개월 된 강아지를 대상으로 수간을 저질렀다. 남성은 작은 강아지 위에 엎어진 모습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알려졌다. 심각한 중상과 정신적 충격을 입은 강아지는 배변활동에 장애를 겪고 있다. 이천경찰서는 남성을 동물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천 수간 사건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은 한 달 만에 21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게시글은 빈번하게 지속되는 동물학대에 대해 범국가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청와대는 2018년 신설된 김동현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팀장을 소개하며 대응 방안을 전달했다. 김동현 팀장은 “우선 동물 학대사건 처벌을 강화해야 하고, 그 학대 유형에 따라 처벌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동물복지에 관한 전담팀이 신설될 정도로 동물에 대한 시민의식은 높아졌다. 하지만 동물학대 범죄 증가에도 입법이나 강도 높은 처벌은 요원하다. 처벌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쳤다. 판례를 살펴보면 동물보호법의 솜방망이 처벌 실태가 자명하다.
2015년 보신원에서 일하던 A 씨는 길고양이를 잡아다 죽여 건강원에 팔 마음을 먹었다. A 씨는 주택근처 도로에 포획틀을 설치하고 어묵을 넣어 고양이를 유인했다. 2014~2015년 A 씨는 고양이 600마리를 잡아 끓는 물에 산 채로 넣어 죽였다. 죽인 뒤에는 털과 내장을 제거하고 얼린 다음 건강원 업주들에게 고양이 고기를 가공해 판매했다. A 씨는 동물보호법 위반과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600마리를 죽였음에도 법원은 “동종 범죄전력이 없는 점을 참작한다”고 판시했다.
2018년 대구에서 40대 남성 B 씨가 경북 봉화의 농기계 사무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암컷 진돗개의 성기를 훼손하고 죽게 했다. 남성은 자신의 성적욕구를 채우기 위해 가학적 변태행위를 저질렀다. B 씨는 2017년에도 여성을 강제로 추행해 기소된 바 있다. 법원은 피해자에 대해 재물손괴, 동물보호법 위반, 건조물칩임 등을 인정해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최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된 인원은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 기소건은 2014년 262건에서 2018년 592건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이 가운데 징역형을 받은 사건은 3건에 불과하다. 사회통념상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고서야 동물학대 사건은 벌금형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다. 처벌이 미미하다보니 사소한 폭행과 학대는 심심찮게 이뤄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7월 공분을 산 유튜버의 동물학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동물학대 처벌 강화 그리고 유해 유튜브 단속 강화 청원’이라는 글이 올라오며 확산됐다. 구독자 4만여 명을 보유한 유튜버 서 아무개 씨가 생방송 중에 개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게 문제가 됐다. 서 씨는 반려견의 머리를 수차례 내려치고, 침대에 세게 내던지는 등 학대를 저질렀다.
이 모습이 방송에 그대로 노출됐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지만 가해자는 도리어 큰소리를 쳤다. 당시 서 씨는 “내가 내 개 때린 게 잘못이에요? 경찰분이 제 강아지 샀어요?”라며 “내 재산이에요. 밥 먹는데 와서 밥상 뒤엎는데 안 때려요?”라며 언성을 높였다. 경찰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돌아가자 서 씨는 또 “동물학대로 백날 신고하라 그래. 절대 안 통하니까”라며 법을 조롱하는 태도마저 보였다. 며칠 뒤 서 씨는 재차 개를 폭행했지만 경찰은 이번에도 신고를 받고 출동 했다가 조치 없이 돌아갔다.
현행법상 동물은 생명체가 아닌 물건이다. 민법에서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해 가족으로 키운 반려동물이 해를 입어도 그 교환가치로 피해를 보상 받는다. 소유주의 재산으로 취급되는 동물은 주인의 재산이 가압류되면 그 압류 대상에 포함된다. 별도로 동물보호법이 강화되고 있지만 법정 최고형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불과하다. 대개 학대범은 동물보호법 위반죄를 적용받는데 수사기관이나 재판부는 징역형을 거의 내리지 않고 있다.
동물학대 사건을 수사했던 한 경찰은 “개를 대상으로 수간을 하든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길 수밖에 없다”고 현행법의 한계를 설명했다.
최초로 국회에 동물복지위원회를 만든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근본적인 동물권 향상을 위해 2017년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법 98조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며 별도의 법률이 보호되는 한도 내에서 이 법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게 주된 골자다. 하지만 법안은 2년 넘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생명윤리뿐만 아니라 동물학대범이 범죄의 대상을 인간으로 확대할 개연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에서는 동물학대가 사람에 대한 범죄의 전조현상이나 가정폭력과 연계될 수 있다는 여러 연구가 진행됐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16년부터 동물학대를 주요 범죄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그동안 ‘기타’ 항목으로 관리되던 동물학대 범죄를 주요 범죄로 관리하는 데는 동물학대가 인간에 대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연쇄살인마 가운데 다수가 동물학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 동물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범죄를 저지른 예가 많다. 노인과 여성 21명을 살해한 유영철은 첫 범행 직전에 개를 상대로 살인 연습을 했다. 여성을 비롯해 8명을 죽인 살인마 강호순은 사람을 죽이기 전 개 사육장을 운영하면서 동물을 살해했다. 당시 수사과정에서 강호순은 “개를 많이 죽이다보니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미성년자를 유인하고 시체를 유기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도 재판에서 개 6마리를 망치로 죽인 사실이 드러났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