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장관은 거침이 없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는 과다 업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홍영 검사 묘소를 찾아가고 유족들과 만나는 등 검찰 개혁 의지를 확실히 했다. 그런 가운데 검찰 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고 있다. 취임 전에는 ‘검찰은 검찰 일(수사)을 하면 된다’는 입장이 다수였다면, 지금은 “둘 중 하나는 다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수사에서 윤석열 총장이 배제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검찰 내에서는 “적은 내부에 있다”는 불만 어린 얘기도 사석에서 나오고 있다.
#법무부 장관 되자마자 시작된 ‘장관 지시사항’
조국 법무부 장관 취임 8일 만인 지난 16일. 법무부는 검찰 수사 대상자의 피의사실 공개를 원칙적으로 가로막는 규칙을 신설하는 훈령을 내놓았다.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형사사건 비공개 원칙에 관한 훈령 제정을 추진해 왔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기존 안부터 살펴보자. 2010년 4월부터 시행 중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직접 피의사실을 공개한 검사를 감찰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수사사건의 내용을 공개한 자가 있을 때에는 각급 검찰청의 장은 즉시 검찰총장에게 보고한 후 감찰을 실시해 공개 경위, 내용, 이유 등을 조사해야 한다”며 검찰총장의 감찰권만 명시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 박은숙 기자
그 외 피의사실 공표는 일선 수사팀의 몫이었다. 언론 대응을 맡는 ‘차장검사’가 검사장 및 대검찰청과 상의해서 어느 정도로 언론에 피의사실을 알릴지, 소환 여부를 공개할지를 결정했다. 검찰총장이 수사내용 공개에 대해 문제 삼은 적은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조국 장관의 법무부는 대대적인 수정을 예고했다. 신설되는 규정의 골자는 △기소 전 피의자 소환 촬영 금지 △소환 일정 공개 금지 △국회의원·고위공직자 등 수사 대상 공인 실명 공개 금지 △수사내용 유포 검사에게 장관이 감찰 지시 등이다. ‘기소 전 피의사실을 일체 언론에 알리지 말 것’을 검찰에 지시하는 셈이다.
법무부는 또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통해 “법무부 소속 공무원이 위반행위를 한 경우에는 법무부 장관은 감찰관 등으로 하여금 감찰을 실시해 공개 경위, 내용, 이유 등을 조사하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존 검찰총장이 아닌, 법무부 장관의 검사에 대한 직접 감찰권을 허용한 것이다. 기존 검찰 내에서 해결될 문제가, 이제 법무부 장관의 권한이 되는 셈이다.
‘조국 장관 가족 수사를 언론에 공개하지 말라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반발. 이에 조국 장관은 지난 18일 “박상기 전임 장관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추진한 내용으로, 관계 기관의 의견 수렴을 거치고 제 가족 수사가 마무리된 뒤에 시행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이면서도 개혁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사실상 검찰과 언론이 손을 잡고 함께 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 등 검찰개혁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완수하라는 촛불 혁명의 명령이 여전하다”며 조국 장관의 개혁 방향에 힘을 보탰다.
윤석열 검찰총장. 이종현 기자
#고 김홍영 검사 묘 찾고 평검사들 대화까지 추진…‘검찰 접촉면 확대’
조국 장관은 자신에 대해 시선이 곱지 않은 검사들 접촉에도 나섰다. 공보 개선과 함께 검사와의 대화 카드를 꺼냈다. 검찰개혁에 반발하는 검찰 조직을 설득하고 평검사들을 우군으로 끌어안겠다는 포석이다. 검사와의 대화에 나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를 연상케 하는 이벤트다.
대화 상대를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조 장관은 앞서 검찰개혁추진지원단을 통해 △지방검찰청 형사부·공판부 검사 △40세 이하 검사 △검찰 출신이 아닌 법무부 공무원 등 검찰 내 ‘비주류’ 세력의 동참을 강조했다. 기득권 검사들이 주도해 온 검찰 문화를 함께 개혁할 ‘지원 세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조 장관은 추진단에 “온라인 등을 통해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 제안을 받으라”고 지시해 국민 여론도 검찰 개혁 동력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명분도 쌓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인 9월 14일 조국 장관은 상관의 폭언 등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난 김홍영 검사의 묘소를 찾기도 했다.
#내부 분위기 “인사권 어필하나” 반발 속 우려 확대
‘검찰개혁추진지원단 구성’ 및 ‘검찰 직접수사 축소와 감찰제도 개선’ 등 취임 10여 일 만에 굵직한 지시들을 쏟아내며 검찰을 흔드는 조국 장관을 보는 법조계 시선이 마냥 고울 리가 없다. 특히나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조국 장관의 의도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검사장 시절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처음 문제제기를 했던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연수원 21기)까지 조 장관의 개혁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중앙일보’ 등과의 인터뷰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방식에 반대한다”며 “검찰 수사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조국 장관 가족과 관련자들이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조 장관은 이 문제에서 빠져야 하고, 여당도 진정 피의사실 공표가 사라지길 원한다면 적폐청산 수사 당시에 피의사실 공표로 실컷 정치를 했던 과거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검찰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국 장관이 김홍영 검사 묘소 방문에 앞서 “김홍영 검사 사망 이후 박상기 장관, 문무일 총장이 취임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상관이었던 김 아무개 부장검사는 해임됐고 당시 김진모 남부지검장은 검찰총장 경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언론에 설명하기도 했다. 또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문무일 당시 총장이 이미 부산에 김홍영 검사의 부모를 면담하고 대검 조직문화 개선 TF를 통해 밥총무를 폐지하는 등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언론에 알렸다.
김오수 법무부차관. 박은숙 기자
‘인사권자’인 법무부 장관의 힘은 수사팀을 중심으로 뭉치려 하는 검찰을 흔들기 충분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김오수 법무부 차관,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 구성을 제안했다가 시민단체에 직권남용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다.
당시 윤 총장은 “수사의 중립성을 흔들 수 있다”며 이들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김오수 차관 등은 후에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되지 않았으며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일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제안이 검찰 고위직에서 나온 점 자체가, 검찰이 인사권자인 조국 장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윤석열 총장이 대립각을 분명하게 한 상황에서 다음 총장을 노리는 사람이 한둘이겠느냐”며 “벌써부터 인사권자 눈에 들어 한자리를 해보려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 검사 출신 법조인 입장에서 참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추석 반납한 검찰 수사팀, 아내 통해 조국 정조준 “부부라서 알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 내용들 나오면…” 하루도 쉬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조국 장관 가족 관련 의혹 수사팀은 추석 연휴도 모두 반납한 채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사모펀드 관련 몸통에 해당하는 5촌 조카 조 아무개 씨를 구속하는 등 성과도 나오고 있다. 조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경우 ‘구속영장 청구가 유력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국회를 거쳐 9월 17일 공개된 정경심 교수의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정 교수가 자신의 딸이 국내외 유명 대학원 등에 진학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동양대 총장 명의의 표창장을 임의로 만들었다고 파악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정 교수는 2012년 9월 7일 자신이 근무하는 동양대에서 성명불상자와 공모해, 기존 대학 총장 표창장 양식과 유사하게 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학교 및 학과, 봉사 기간 등을 기재한 뒤 최우수봉사상을 수여했다. 표창장에는 “동양대 봉사 프로그램의 튜터로 참여해 자료 준비 및 에세이 첨삭지도 등 학생 지도에 성실히 임해 그 공로를 표창함”이라고 적시했는데, 검찰은 이 모든 게 정 교수의 ‘조작’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 교수의 컴퓨터에서 아들이 동양대에서 받은 표창장 스캔 파일과 이 파일의 일부를 잘라낸 그림 파일, 딸 표창장 내용이 담긴 한글 파일과 표창장 완성분 등을 확보한 것이다. 검찰은 정 교수가 딸의 표창장 내용을 작성한 뒤 아들의 표창장에서 잘라낸 총장 이름과 직인이 담긴 그림 파일을 붙여 위조한 것으로 판단했다. 자택 PC 하드 디스크 교체로 증거인멸 정황까지 불거진 상황에서, 조 장관이 관여됐다는 의혹도 검찰은 수사 중이다. 아내 관련 의혹(사모펀드 구체적 개입, 딸 표창장 위조 등)에서 조 장관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검찰은 지난 8월 말 정 교수 지시로 자택 서재의 PC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러 온 증권사 직원 김 아무개 씨로부터 “조 장관과 하드디스크 교체 중 상당 시간 함께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씨가 조 장관 퇴근 후 집에 머문 시간을 주변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파악했는데, 김 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조 장관은 PC 하드 교체가 끝난 뒤 집에 온 것이 아니라 퇴근 후 함께 있었다. 조 장관이 하드 교체를 몰랐을 리 없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또 조 장관이 김 씨에게 “고생이 많다. 우리 처를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는 얘기도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조 장관이 ‘하드디스크 교체’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면, 증거인멸 혐의의 공범이 될 수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금 모든 의혹은 일단 조 장관 처를 향해 있지만, 부부라서 알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휴대전화 기록 등을 통해 확인된다면 조 장관 기소도 불가피하다”며 “윤석열 총장이 모든 수사 내용을 보고받고 조 장관을 주요 수사 타깃으로 올릴지, 아니면 조 장관 부인만 수사하는 선에서 마무리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