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Mnet)에서 방영 중인 걸그룹 컴백 서바이벌 ‘퀸덤’에서 ‘걸크러시’ 무대를 선보인 AOA. 사진= 퀸덤 예고편 캡처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화제몰이를 했던 음악 전문 채널 엠넷(Mnet)이 지난 8월 28일부터 걸그룹 6개 팀의 컴백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테마로 ‘퀸덤’을 방영하고 있다. 앞선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데뷔하고픈 아이돌 연습생이나 이미 데뷔했으나 인기를 끌지 못한 그룹 멤버들의 재데뷔를 다뤘다. 반면 ‘퀸덤’은 이미 대중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그룹이 통째로 등장해 컴백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는 플롯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현재 ‘퀸덤’에 출연 중인 걸그룹은 AOA, 마마무, 오마이걸, (여자)아이들, 러블리즈 그리고 그룹 2NE1 출신의 보컬 박봄이다. 이들 가운데 기존 팬덤은 물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이 AOA였다. 지난 12일 방영된 3화에서는 각 그룹이 다른 그룹의 노래를 바꿔 부르는 2차 경연무대가 이어졌다. AOA는 마마무의 ‘너나 해’ 무대를 선보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은 슈트를, 남성 백댄서에게는 섹시한 여성 의상을 입혀 성 고정관념을 뒤집는 장치를 마련했다.
이 같은 ‘걸 크러시’ 무대의 아이디어는 리더인 지민의 주도로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대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온 지 엿새 만에 조회수 500만을 넘는 등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큰 화젯거리로 부상했다.
지난 12일 방영된 AOA의 ‘너나 해’ 경연 무대. 사진=퀸덤 유튜브 화면 캡처
AOA는 8년차 걸그룹으로 주로 핫팬츠와 바디슈트 등 섹시한 각선미를 강조하는 콘셉트로 활동해 왔다. 그런 그들의 ‘여성적이지 않은 무대’에 특히 일반 대중들이 열광했다는 것은 아이돌 업계 분위기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방영 직후 트위터 등 각종 SNS에 AOA의 무대 관련 해시태그가 상위권을 점령하는가 하면, 18일 기준 CJ ENM과 닐슨코리아가 발표한 9월 둘째 주(9~15일) 콘텐츠영향력평가지수 1위에 ‘퀸덤’이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데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같은 방송사의 선배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8’이 5위에 머문 것에 비교한다면 이들의 변신이 대중들에게 어떤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한 케이블 방송 제작 관계자는 ‘퀸덤’의 제작 방향에 대해 “남성 팬덤이 아닌 여성 팬덤을 타깃으로 잡아 진행하는 ‘걸그룹 서바이벌’의 새 역사가 될 것”이라고 짚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제까지 걸그룹이 주 소비층이었던 남성 팬덤을 위해 쌓아올린 예쁘고 섹시한 이미지가 완전히 뒤집혀졌다”며 “그럼에도 대중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끌어낸 것을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 덕이라고 본다면, 유사 프로그램들 역시 방향 전환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을 덧붙였다.
2015년 엠넷에서 방영한 ‘언프리티 랩스타’. 사진=엠넷 제공
그러나 ‘언프리티 랩스타’는 ‘리스너’라는 한정적인 집단에게만 영향력을 끼쳐 대중적으로 고르게 관심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 남성 시청자들의 비중이 큰 힙합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청자들이 원하는 여성 출연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도 지적됐다. 결국 후속 시즌으로 갈수록 화제성이 떨어지면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여성 출연진이 귀엽거나 섹시함을 강조하지 않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패배론이 돌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걸그룹이 직접 선택한 걸 크러시 무대를 보고 변화된 대중들의 분위기에 업계의 관심이 다시 한 번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화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례가 세워졌으니 다른 프로그램으로 또 시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최근 사회적 분위기상 남녀 대결 구도가 고착되고 있기 때문에 걸 크러시를 강조했다가 기존의 걸그룹 콘셉트로 복귀하면 남성 팬과 여성 팬 모두가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고 우려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