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박찬호. 연합뉴스
[일요신문] ‘괄목상대(刮目相對).’ 눈을 비비고 보니 다른 사람이 돼 있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장수 여몽의 성장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유래된 말이다.
2019시즌 한국 프로야구는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공인구 반발력이 줄어들면서, 리그 환경은 적잖은 변화를 맞았다. ‘홈런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투수들의 평균자책은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틈새시장’을 파고들며 급성장에 성공한 선수들이 있다. ‘숨은 진주’라고 불리던 선수들은 급격한 성장을 바탕으로 팀 내 주축선수로 거듭났다.
KIA 타이거즈 내야수 박찬호가 대표적인 예다. ‘2014 KBO리그 2차 신인지명회의’ 5라운드 전체 41순위로 호랑이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는 2014시즌 1군 무대 데뷔 후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유망주였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시즌 동안 박찬호의 1군 무대 타율은 2할이 넘어간 적이 없었다.
2017~2018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에서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박찬호는 달라졌다. 박찬호는 군복무 중 몸을 착실히 다졌고, 그 결과는 성적으로 나타났다. 2019시즌(9월 18일 기준) 박찬호는 타율 0.263, OPS(출루율+장타율) 0.628, 2홈런, 49타점, 57득점을 기록하며 KIA 공격첨병으로 거듭났다.
특히 박찬호가 37도루로 KBO리그 도루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는 대목이 눈에 띈다. 도루부문 선두 박찬호의 뒤를 쫓는 건 키움 히어로즈 김하성(32도루)이다. 격차가 적지 않다. 박찬호의 생애 첫 개인 타이틀 획득이 유력한 상황이다.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강로한. 연합뉴스
롯데 자이언츠 강로한의 성장세도 주목할 만하다. 강로한은 올 시즌 롯데의 내야 공백을 메우며 생애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르고 있다. 18일 기준 강로한은 9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42, OPS 0.663, 4홈런, 7도루, 25타점, 37득점 성적을 올렸다.
경남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시즌 프로 1군 무대에 데뷔한 강로한은 2019시즌 들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2015시즌 8타수 1안타가 1군 무대 커리어 전부이던 강로한은 2019시즌 롯데 하위타순에서 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강로한이 극복해야 할 숙제 역시 분명하다. 올 시즌 강로한은 내야 전천후 자원으로 활약하며 20실책을 기록했다. 타격 정확성에서도 약점을 보였다. 추후 강로한의 성장 지속 여부는 ‘수비와 타격 정확도 강화’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NC 다이노스 좌완 선발투수 구창모. 연합뉴스
투수 중에선 NC 다이노스 창단 이후 사상 첫 좌완 선발 10승 고지를 점령한 구창모가 눈에 띈다. 올 시즌 구창모는 오른쪽 옆구리 부상으로 5월이 돼서야 1군 엔트리에 합류했다.
5월 17일 LG 트윈스전에서 시즌 첫 선발 등판한 구창모는 5이닝 1실점 호투를 펼치며, 지속적인 선발 기회를 부여받았다. 기회를 얻은 구창모는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9월 15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선 5.1이닝 1실점 짠물 투구를 펼치며 10승 고지를 밟았다. 올 시즌 구창모는 22경기(18선발)에 등판해 106이닝을 소화하며 10승 7패 1홀드 평균자책 3.23을 기록 중이다.
부상으로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한 까닭에 규정이닝을 채우진 못했지만, 구창모의 활약은 NC의 시즌 중·후반 순위싸움에 큰 힘이 됐다.
올 시즌 SK 와이번스 철벽 계투진으로 활약 중인 우완투수 서진용. 연합뉴스
순위표에서 단독 1위를 질주 중인 SK 와이번스 마운드에도 ‘괄목상대’를 이룩한 투수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올 시즌 ‘철벽 필승 자원’으로 진화한 서진용이다. ‘2011 KBO리그 전면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SK 유니폼을 입을 때부터 서진용은 ‘미래 SK 마운드 핵심 자원’이란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서진용은 2015시즌 1군에 데뷔한 뒤 기복 있는 투구로 팬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서진용은 2019시즌 환골탈태했다. 서진용은 놀라운 활약을 선보이며 자신의 기량이 만개했음을 천명했다.
9월 18일 기준 서진용은 67경기에 등판해 63.1이닝 동안 3승 1패 4세이브 30홀드 평균자책 2.13을 기록했다. 서진용은 7월 6일부터 9월 14일까지 등판한 24경기에서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는 저력을 보였다.
서진용이 성장하면서 SK는 서진용-김태훈-하재훈으로 이어지는 견고한 뒷문을 갖출 수 있게 됐다. 막강한 뒷문은 올 시즌 SK가 단독 선두를 질주하는 데 적지 않은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 밖에도 올 시즌 두각을 나타낸 ‘숨어 있던 진주’들은 많다. 한화 이글스 포수 최재훈과 LG 트윈스 외야수 이천웅은 ‘커리어 하이’ 시즌을 치르며, 자신의 기량을 입증했다. 신인왕 경쟁 대열에 합류한 ‘중고신인’ NC 김태진 역시 올 시즌 기량 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뤄냈다. KIA 마무리투수 자리를 꿰찬 뒤 22세이브를 기록한 문경찬과 두산 선발투수로 14승을 쌓아 올린 이영하의 활약 역시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스타의 등장은 늘 팬들을 설레게 한다. 하지만 한 시즌 ‘반짝’하고 사라진 스타 역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과연 올 시즌 등장한 ‘숨어 있던 진주’들이 자신의 기량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린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