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일정이었다. 황 대표는 광복절 전날 국정방향 대전환을 요구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원내대표도 참석해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는 여러 의원들이 참석해 황 대표를 응원했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는 보이지 않았다. 나 원내대표는 당시 중국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해 본인만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자꾸 (황 대표를 패싱하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려고 해서 나 원내대표에 대한 당내 평이 안 좋다고 하더라. 당 대표가 전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는데 원내대표가 의원들을 데리고 따로 광복절 행사를 하면 당 대표 메시지가 묻힐 수밖에 없다. 대놓고 당 대표를 무시한 행동”이라고 했다.
장 소장은 한국당 당직자 출신으로 당 내부 소식에 밝다. 장 소장은 최근 나 원내대표가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을 지목해 통합을 언급한 것도 월권이라고 지적했다. 장 소장은 “바른미래당과의 통합은 당 대표가 결단해야 되는 사안이지 원내대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현재 황 대표는 중도 보수는 물론 태극기부대까지 껴안는 보수대통합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바른미래당에 먼저 러브콜을 보내면 황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보수대통합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 실정에 대해 장외투쟁을 하느냐, 원내투쟁을 하느냐를 놓고도 의견대립이 있었다. 나 원내대표는 원내투쟁을 원했다. 나 원내대표 측이 원내투쟁을 주장한 표면적인 이유는 민생 법안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나 원내대표가 황 대표를 견제하려고 회군을 결정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장외투쟁이 길어지면 나 원내대표가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반대로 원내투쟁이 시작되면 원외인사인 황 대표가 전면에 나설 기회가 적어진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 사이가 삐걱이는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제가 볼 때도 나 원내대표가 본인이 (황 대표보다) 돋보이고 싶어 한다는 느낌은 든다”면서도 “아무래도 황 대표가 원외 인사다보니까 이런 장면이 연출되는 거 같다. 과거 (원외인) 홍준표, 김병준 대표 시절에도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한국당의 다른 관계자는 “황 대표의 정치경험이 일천하다보니 나 원내대표가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황 대표가 국무총리까지 지냈다고 해도 국회 경험은 전혀 없다. 반면 나 원내대표는 4선 중진이다. 나 원내대표로서는 황 대표가 내리는 결정이 못마땅하거나 실망스러웠을 수 있다. 나 원내대표는 당내 문제가 생겼을 때 황 대표와 논의하기보다는 주변 중진들과 논의하게 됐을 거다. 이 과정에서 황 대표와 소통이 줄어들어 거리가 생긴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나 원내대표가 차기 대권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황 대표와 각을 세운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당의 또 다른 인사는 “나 원내대표가 대권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라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201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답했다.
이 한국당 인사는 “정치인 중에는 ‘저 대권에 관심 없습니다’라고 말하다가도 출마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 정도(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대답이면 정치권에선 ‘나 대권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라고 답한 것으로 해석한다”고 했다.
최근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나 원내대표가) 황 대표가 낙마하면 직무대행을 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장성철 소장은 “홍 전 대표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했다.
장 소장은 “한국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의원 잔여 임기가 6개월 이내일 경우에는 원내대표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 나 원내대표 임기는 올해 12월까지다. 황 대표가 낙마하고 나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을 하면 내년 4월에 열리는 총선을 직접 진두지휘할 수 있다.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나 원내대표가 바로 대권주자로 뜨는 시나리오가 그려진다”고 했다.
전직 국회의원인 한 한국당 당협위원장은 “최근에는 조국 사태로 이야기가 쏙 들어갔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내에 황교안으로 내년 총선을 치러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당협위원장은 “당시 외부 비상대책위원장을 내세우는 구체적인 안까지 논의가 됐었다”고 했다.
한국당의 다른 당협위원장도 “황 대표로 중도층을 흡수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 탄핵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하겠느냐 등의 우려가 당내에서 계속 나온 것은 사실이다. 이런 당내 우려를 나 원내대표가 전해 듣고 본인이 전면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나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대권이나 원내대표 임기 연장 등에 대해 전혀 논의 한 바 없다. 황 대표와도 잘 소통하고 있는데 당내에 이런 분열적 시각을 가진 분들이 있다는 게 안타깝다”면서 “나 원내대표는 자신이 돋보이려고 뭘 한 것이 아니라 당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