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범죄 가운데 가장 잔인하다고 손꼽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다. 1980년대 부족했던 과학수사기법과 경찰의 초동수사 부진으로 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피해자와 유족의 한 맺힌 슬픔 역시 되돌릴 수 없다. 공소시효도 이미 지났지만 그나마 최근 유력한 용의자가 특정됐다. 사건 최초발생부터 지금까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전모를 살펴봤다.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드러났다.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곧 경찰의 실패이자 치부다. 1980년대 경기도 화성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10차례의 강간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2006년 결국 공소시효마저 끝나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길이 없다. 부실한 초동수사, 증거채취 및 활용 부족, 과학기술의 한계 등이 사건의 진실을 가렸다. 경찰은 수차례 비슷한 수법의 살인이 연이어 벌어진 뒤에야 연쇄살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건은 1986년 9월 발생했다. 희생자는 71세 여성 이 아무개 씨로 딸네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범인에게 피습됐다. 범인은 이 씨를 성폭행하고 목 졸라 죽인 채 시신을 유기했다. 경찰은 이 씨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새벽시간대 사망했다는 이유로 교통사고사로 추정했다.
한 달 뒤인 1986년 10월 두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밤 9시 이웃마을에 들렀다 귀가하던 20대 여성 박 아무개 씨는 논길 한가운데에서 범인을 만나 희생당했다. 범인은 살인 뒤 담배를 피우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그제야 경찰은 화성경찰서에 수사본부를 만들고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으로 각종 시위에 경찰력이 투입되며 수사에 분명한 한계도 있었다. 심지어 연쇄살인이 북한 소행이라는 괴소문까지 퍼졌다. 경찰은 급기야 고문기술자로 악명 높은 공안경찰 이근안까지 화성살인사건 수사에 투입했다.
수사 방향이 잘못되고 초기 증거수집에 실패해 수사에는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중 세 번째 사건인 1986년 12월 권 아무개 씨(23) 피살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1987년 1월 화성경찰서에 있던 수사본부를 경기경찰청 소속으로 옮기고 첫 번째 살인 피해자 이 씨 살인사건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최초 사건으로 분류했다.
충격적인 부분은 범인이 세 번째 피해자를 해친 이후 이틀 만에 네 번째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네 번째 피해자 이 아무개 씨(23)는 맞선을 보고 귀가하던 중 피습돼 주검으로 논둑에 버려졌다. 이 씨의 시신은 속옷과 옷을 범행 전 상태로 입은 채 발견돼 다른 피해자와 차이가 있었다.
다섯 번째 피해자 홍 아무개 씨(18)는 1987년 1월 논바닥에서 스타킹으로 결박돼 살해된 채 발견됐다. 여섯 번째 피해자 박 아무개 씨(30)는 1987년 퇴근하는 남편에게 우산을 가져다주러 나갔다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 일곱 번째 피해자 안 아무개 씨(52)는 1988년 9월 귀가하던 중 피습돼 팔탄면 한 농수로에서 옷가지로 양손이 결박돼 숨진 채로 발견됐다.
여덟 번째 피해자 박 아무개 양(13)은 1988년 9월 화성의 자택 안방에서 성폭행당한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현장에서 나온 음모를 통해 범인 윤 아무개 씨(22)가 검거됐다. 이 사건은 8차 사건으로 분류됐지만 연쇄살인과 무관한 모방범죄로 결론이 났다.
아홉 번째 피해자 김 아무개 양(13)은 1990년 11월 야산에서 스타킹으로 결박된 채 발견됐다. 화성 사건의 마지막인 열 번째 피해자인 권 아무개 씨(69)는 1991년 4월 자녀의 집에 다녀오다 범인에게 붙잡혀 성폭행당한 뒤 살해돼 동탄면 야산에서 발견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는 10명이지만 수사당국은 단일범인지 공범이 있는지조차 가리지 못했다. 사건을 맡았던 수사관이 워낙 많았고 사건별로 감식을 맡은 직원도 여럿이라 사건에 대한 기억도 제각각이다. 다만 범인은 범행 도구로 피해자의 옷가지를 주로 활용했다. 양말, 속옷 등으로 입을 막거나 스타킹으로 손발을 결박하는 수법이다. 또 10차례의 살인사건에서 범인은 피해자 신체에 정액, 담배꽁초, 머리카락, 복숭아 등 흔적을 남겼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범인이 자기 과시적 성향과 변태적 성욕, 비뚤어진 여성관을 가졌다고 분석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수사 총지휘자였던 정석준 전 경기지방경찰청 강력계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대부분 피했다. 2006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실패한 형사이고 유족들에게 죄인”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전화인터뷰에만 응했을 뿐이다.
정석준 전 강력계장은 2차 사건이 발생한 뒤인 1986년 10월 현장에 투입돼 10차 사건이 끝난 뒤인 1996년까지 수사를 지휘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유전자 감식이 이뤄진 것도 1991년 처음 도입돼 9차, 10차 사건에만 적용됐다. 사건이 들판이나 야산 등지에서 발생해 생체증거인 체모, 체액 등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건현장에 남은 족적을 바탕으로 최소 공범이 4~5명일 것으로 단언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화성연쇄살인 사건일지(1986~1991) 1986년 △ 1차 사건 = 9월 15일 오전 6시 20분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 이 아무개 씨(71, 이하 사건 당시 나이) △ 2차 사건 = 10월 20일 오후 8시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 박 아무개 씨(25) △ 3차 사건 = 12월 12일 오후 11시 태안읍 안녕리 축대. 권 아무개 씨(24). 시신은 87년 3월 발견 △ 4차 사건 = 12월 14일 오후 11시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 이 아무개 씨(23) 1987년 △ 5차 사건 = 1월 10일 오후 8시 50분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 홍 아무개 양(18) △ 6차 사건 = 5월 2일 오후 11시 태안읍 진안리 야산. 박 아무개 씨(30) 1988년 △ 7차 사건 = 9월 7일 오후 9시 30분.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안 아무개 씨(52) △ 8차 사건 = 9월 16일 오전 2시 태안읍 진안리 가정집 안방. 박 아무개 양(13). 범인 검거 1990년 △ 9차 사건 = 11월 15일 오후 6시 30분 태안읍 병점5리 야산. 김 아무개 양(13) 1991년 △ 10차 사건 = 4월 3일 오후 9시 동탄면 반송리 야산. 권 아무개 씨(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