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태안읍 일대에서 여성 10명이 연달아 살해당한 사건이다. 성폭행과 살인, 시신 유기 등이 결합된 최악의 강력 범죄로 통한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최근까지 수사에 동원된 경찰은 연인원만 205만여 명. 단일 사건 가운데 가장 많다. 수사 대상자 2만 1280명과 지문대조 4만 116명, DNA 감정 570건, 모발감정 180건 등의 각종 기록 역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다가 부수적으로 범행이 드러나 검거된 다른 사건 범인들도 1500명에 달한다.
1993년 7월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인근 농수로에서 유류품을 찾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현직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수사팀엔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차출된 베테랑 형사들이 배치됐다. 수사팀에 배치되지 않은 경무·교통·방범과 직원은 물론 내근직 등은 일과시간 이후 잠복근무에 투입되거나 수사를 도왔다. 유례없는 수사 규모와 무속인까지 부르는 등 다양한 방식을 총동원한 과정에서 경찰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대로 용의자를 끝내 찾지 못하면서 범죄와 관련 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가혹행위와 부실수사 등이 적발되면서 ‘경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사건 하나로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아온 셈이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전직 경찰은 “과오가 있지만 경찰 입장에선 가장 처절했고, 치열하게 수사했던 사건이다. 수사에 참여했던 퇴직 경찰들 입장에선 사실상 ‘실패한 사건’이라 최근까지도 아쉬움은 물론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증거는 있지만 기술이 없었다
과거 수사 과정에서 증거는 수집됐다. 경찰은 당시 사건 현장에서 범인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와 6가닥의 머리카락, 혈흔, 정액 샘플 등을 확보했다. 문제는 당시엔 증거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기술과 인력, 장비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실제 경찰은 사건 현장 및 수사 과정에서 발견한 증거품과 샘플 등을 매달 40건씩 국과수에 보냈지만 유의미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화성 연쇄살인사건 수사기록과 감정기록 등을 보면, 1986년 1차 사건에선 성폭행 여부가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이후로 이어진 사건들에서도 정액, 혈흔 등에서 별다른 성과를 나오지 못했다. 그나마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혈액형이 나온 건 1990년에 벌어진 9차 사건부터다. 시신에서 발견된 정액에서 혈액형이 검출됐다.
10차 사건에선 DNA 검사기법이 처음으로 시도됐다. 다만 9차 사건과 마찬가지로 정액을 통해 특정 혈액형을 식별하는데 그쳤다. 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는 “화성 사건 발생 당시에는 DNA 검사법이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변별력이 상당히 떨어져 정액 샘플에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혈액형이라도 확인되면 다행인 때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일본에 DNA 감식을 의뢰했지만 일본 역시 검사법 수준이 높지 않은 때라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국과수는 최근까지 9차와 10차 사건의 DNA 샘플을 보관해왔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현장. 연합뉴스
#사건 발생 33년 만에 용의자 특정
그런데 지난 9월 18일, 경기남부경찰청은 화성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고 구체적인 혐의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1차 사건 발생 33년 만이다. 경찰은 화성 사건 피해자와 현장에서 확보해 보관하고 있던 DNA 증거물을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고, 국과수는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제3자의 DNA를 채취했다. 이후 확보한 정보를 토대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거나 출소한 전과자들의 DNA를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현재 부산교도소에 ‘처제 강간살인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춘재 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이 화성 사건과 관련해 범인을 특정 지을 수 있는 추가 DNA 정보를 확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총 10건의 살인사건 가운데 8번째와 10번째 사건은 모방 범죄로 드러났다. 8번째 사건은 범인이 잡혔다. 10번째 사건은 범죄 수법, 사건 현장이 많이 달라 동일범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용의자 이 씨는 1~7차, 9차 범행을 저지른 범인으로 특정됐다. 국과수는 총 3건의 사건 증거물에서 DNA를 검출했는데,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사건이다. 여기서 검출된 새 DNA는 모두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 씨의 DNA와 일치했다.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DNA가 검출된 3건의 사건 가운데 7차 사건은 과거 수사과정에서도 용의자 특정에 가장 근접했던 사건이다. 1988년 9월 7일 아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돕다 귀가하던 주부 안 아무개 씨가 농수로에서 입고 있던 블라우스로 목이 졸려 숨졌다. 피해자의 신체에선 복숭아 조각 9개가 나왔다.
7차 사건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처음으로 목격자가 나왔다. 당시 화성 발안에서 수원으로 향하던 시외버스의 운전기사와 안내원이다. 이들은 경찰에서 “사건 당일 오후 10시쯤 24~27세가량의 남자가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손을 흔들어 버스에 태웠다”며 “무릎까지 물에 젖어있었으며, 운전석 맞은편 앞자리에서 라이터를 빌려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얼굴을 유심히 봤다”고 진술했다.
버스가 남성을 태운 곳은 사건 현장에서 400m가량 떨어진 곳. 범행이 발생한 시각은 오후 9시 30분으로, 버스에 올라탄 시간과 비슷했다. 경찰은 비가 내린 날이 아니었는데도 바지가 젖어 있다는 점을 토대로 농수로나 이슬 젖은 풀밭을 헤치고 나왔다고 판단해 버스기사와 안내원의 진술을 토대로 구체적인 인상착의를 파악했다. 최근까지도 사용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유일한 몽타주는 이때 그려졌다.
1988년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증거 보존 노력과 과학기술 발전이 결정적 역할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미제사건수사팀은 올해 초부터 화성 사건과 관련해 약 10건의 제보를 받았다. 이 가운데 1건이 이 씨와 관련된 제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사건 기록 검토와 증거물 감정 등의 절차를 진행해왔던 경찰은 제보를 비롯해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DNA가 검출된 사례가 최근 나왔다는 점을 토대로 지난 7월 국과수에 다시 증거물 분석을 의뢰했다. 10개 사건 가운데 한 사건 피해 여성의 거들에서 이 씨의 DNA가 검출됐고, 이외 다른 사건 증거물에서도 이 씨의 DNA가 추가로 나왔다.
경찰과 국과수 관계자들은 사건 발생 30년여 만에 용의자를 특정한 데에는 경찰과 국과수의 증거 보존을 위한 노력과 과학수사 기법의 발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한다.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은 19일 ‘일요신문’에 “콜드 케이스(장기 미제사건)에선 시료(증거품 등)를 어떻게 보관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나중에라도 다시 꺼내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경찰이 적지 않은 투자를 통해 증거물 보관에 신경을 써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동안 경찰은 과거 수사팀 차원에서부터 증거물 보존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에 발달할 과학수사기법과 장비 등에도 기대를 걸었던 셈이다. 경찰이 그동안 보관해온 증거품은 피해자의 유류품과 현장에서 발견된 우유팩, 담배꽁초는 물론, 간접증거까지 다양하다. 발견 당시 훼손돼 있던 증거물들을 제외하면 오염이나 부패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과수의 DNA 검사 기술은 최근 수년 사이 빠른 속도로 발달했다. 경찰은 그동안 과학수사 기술이 새로 개발되거나 향상될 때마다 화성 사건 증거물을 대조해왔는데, 결국 성과가 나온 셈이다. 서 전 원장은 “특정 장비나 시스템이 도입됐다기보다는 세계적 수준에 오른 과학수사 기술과 축적된 국과수 노하우가 종합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며 “DNA 검사 시약이 최근 수년 사이 크게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인 반기수 경기남부청 2부장이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본관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브리핑을했다. 박정훈 기자
#DNA는 단서일 뿐 사실확인은 원점서 다시 시작
경찰은 앞으로 용의자 수사, 수사기록 정밀 분석, 관련자 조사 등 용의자와 화성연쇄살인사건 간의 관련성에 집중할 방침이다. 총 3건의 사건 증거품에서 이 씨의 DNA가 발견되긴 했지만, 법리적으로 범인이라고 확정하기 어려운 단계이기 때문이다. 경찰과 국과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과학수사단계에서 DNA가 일치하면 범인일 확률이 90%가 넘지만, 이 씨가 사건 당시 실제로 화성에 있었는지 여부부터 사실관계 등의 확인은 형사 사건에서 필수 절차다. 이 씨는 현재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5, 7, 9차 사건 외에 다른 사건의 증거품도 국과수에 추가로 분석을 의뢰했다. 특히 화성 사건과 관련된 다른 DNA와 이 씨의 DNA가 일치하는지 여부도 추가로 감정 중이다. 화성 사건의 범인은 한 명이 아니라는 의혹은 과거 수사 과정에서부터 나왔다. 실제 피해자 증거품을 제외한 현장 감식에서 3개의 혈액형 등이 추가로 검출되기도 했다.
이 씨가 진범으로 밝혀져도 처벌은 어렵다. 이 사건의 마지막 범행은 1991년이다. 당시 살인사건 공소시효는 15년이었다.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난 상태다. 2015년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지만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어서 소급 적용도 되지 않는다. 경기남부청 반기수 2부장은 “최대한 진실을 규명하도록 노력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