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과 소멸: 45.5×34cm Acrylic on capsule over canvas 2012
작가의 작품은 내용과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헝가리 출신 예술사학자 아르놀트 하우저는 이를 ‘물과 그릇’의 관계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내용에 맞는 형식의 발견을 예술로 본다. 내용과 형식이 맞으면 아름답지만 그렇지 못하면 예술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와인을 바가지에 따라 마신다면 어떨까. 맛 자체야 변함이 없겠지만, 제맛을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와인은 역시 글래스에 따라 마셔야 제격이겠지. 마찬가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이 하얀 사발에 소복이 담겨 까만 소반 위에 놓여 있다면 어떨까. 입안에 군침이 돈다. 때론 경건하게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흰 쌀밥이 길바닥이나 개천에 떨어져 있다면 더럽게 느껴진다.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도 또는 그렇지 않게도 보인다. 이런 것이 예술에서 내용과 형식의 하모니에 해당되는 셈이다. 본연의 모습으로 제때 제자리에 놓이는 것이 내용과 형식의 진정한 어울림이며, 이런 작품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달항아리: 69×69cm 밥상+mixed media 2019
따라서 많은 작가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내용)에 맞는 방법(형식)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데 따져보면 내용은 새롭거나 크게 다르지가 않다. 작게는 자신의 이야기에서부터 주변과 사회, 더 나아가 자연, 역사 등이다. 이를 작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내용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문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즉 형식에서 작가 작품의 변별성이 나타난다. 작품의 개성도 여기서 드러난다. 그래서 작가들은 새로운 방식의 표현 어법 찾기에 골몰한다. 그런데 내용에 맞는 형식 찾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 작가의 역량도 여기서 결정된다.
이성영은 자기 언어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역량 있는 작가다. 많은 경험과 실험으로 여러 가지 재료와 방법을 개척했다. 개방적 생각으로 작업을 하는 그의 실험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맞는 전달 방법을 찾기 위한 구도자 같은 여정이다.
초신성(Supernova): 53×65cm Canvas+mixed media 2016
그는 전통 회화를 전공했고, 탄탄한 기량도 갖춘 작가다. 그 정도 실력이면 전통 회화 분야에서 충분히 인정받으며 안주할 수도 있는데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는 이유가 뭘까.
“전통 회화는 송, 명대에 이미 완성됐다는 걸 중국 여행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 방법으로는 새로운 회화를 창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맞는 회화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 제 작업입니다.”
이런 생각을 반영한 그의 작업은 동양적 내용과 서양적 재료, 기법의 어울림으로 새로운 감각의 이 시대 회화로 보인다. 다양한 재료(알약 캡슐, 칼, 소반 등)를 활용해 자신만의 어법인 질감을 개발했고, 이를 바탕 삼아 전통적 구성 방법과 변형된 전통 기물을 조합해 이성영식 현대 회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