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진화되자 사망자가 발견됐다. 기이하게도 집에 있던 냉장고 안에서 시신 두 구가 나왔다. 이 집에 함께 살던 엄마 A 씨(62)와 아들 B 씨(34)였다. 엄마와 아들은 각각 하늘을 바라보고 눕혀진 양문형 냉장고의 냉동실과 냉장실 안에 바로 누워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천안시 쌍용동의 아파트 내부. 소방대원이 문을 열기 위해 자르 틈 사이로 타다 만 목제 피아노가 보인다.
냉장고는 부엌을 바라본 상태에서 뒤로 누운 형태로 놓여있었고, 냉장고 전원 콘센트는 뽑혀 있었다. 냉장고 안의 칸막이는 제거된 상태였고, 발견 당시 냉장고 문은 위를 향해 열려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시신의 겉이 불에 그을린 것 외엔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외부인 침입은 없었다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시신에 특별한 외상이 없고, 발화 지점이 집안인 데다가 제3자의 침입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사건 당일로부터 일주일 치 아파트 폐쇄회로화면(CCTV)을 분석했지만 그 기간 동안 외부인 출입은 없었다.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출동했을 당시 현관문은 잠겨있었다. 주 잠금장치를 비롯해 걸쇠와 손잡이까지 잠금장치 3개 모두 잠겨있었다. 누군가 안에서 문을 잠갔다는 뜻이다. 소방대원들은 결국 현관문에 잘라 잠금장치를 제거한 뒤 집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경찰은 냉장고 주변에 흩뿌려진 인화 물질에 붙은 불이 직접적인 화재 발생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밸브에서 새어 나온 가스는 화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인화물질 종류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아들 B 씨가 사고 전날인 9월 10일 오후 6시 16분에 인화 물질을 담은 통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현관문 안쪽에는 청테이프가 부착돼 있었다. 문 틈새는 물론 열쇠 구멍까지 막고 있었다. 부엌의 도시가스 밸브를 잘려 있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가스가 새어 나가지 않게 밀폐하려고 한 의도로 읽힌다. 소방대원들이 도착했을 때에도 가스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베란다나 창고의 창문 틈새를 막으려고 한 흔적은 없었다.
#함께 목숨을 끊었나?
제3자의 개입이 없었다면 모자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된 걸까. 여러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사건 발생 한 달 전부터 엄마 A 씨와 아들 B 씨가 큰소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한 주민은 “보통 싸우는 소리가 아니라 쿵쾅거리면서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특히 사건 전날인 9월 10일 오후 2~3시쯤엔 1시간가량 아래층 이웃이 “공사하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소리가 컸다고 한다.
현장 조사를 위해 경찰 과학수사대를 비롯한 감식팀이 화재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황상 30대 아들이 60대 엄마에 물리력을 행사해 홧김에 살해한 뒤 자살을 결심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시신에 외상이 전혀 없었다”는 경찰의 말과 상충한다. 물론 약물을 사용한다면 외상이 남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부검 결과를 기다려 봐야 알 수 있다.
극단적인 선택에 서로 동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해당 아파트를 20년 동안 도시가스 점검을 해온 검침원은 엄마 A 씨를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 검침원은 “말도 아주 조심스럽게 하고 인정도 있었다. 검침을 갈 때마다 항상 음료수도 2~3개씩 건네곤 했다”고 전했다. A 씨는 이웃 주민끼리 가는 관광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주민과 교류가 없었지만 않았지만 직접 만든 만두나 호박 식혜를 이웃에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앞집 주민에 따르면 사건 한 달 전부터 사람이 변했다. 이웃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서 신발을 고쳐 신을 요량으로 뒤꿈치를 세워 발끝으로 복도 바닥을 톡톡 치는 소리에 A 씨는 시끄럽다고 소리치는 등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가끔 윗집에 시끄럽다고 욕하는 소리가 옆집까지 들렸다고 한다.
#“연기 마셨으면 가만히 누워있지 못했을 것”
집 안은 이삿짐 싸듯 정돈돼 있었다. 냉장고 머리 부분 아래쪽엔 접이식 사다리가 깔려 있었다. 냉장고를 눕힐 때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손이나 발을 찧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놓여 있었다고 보인다. 모자는 가기 전 삶을 정리하고 냉장고를 눕혔고, 인화 물질을 구입해온 뒤 냉장고로 향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자 가운데 한쪽이 저항하지 않는 상태에서 냉장고로 향했다고 해도 의문은 남는다. 발견 당시 냉장고 문은 열려 있었지만 두 시신은 냉장고 안에서 하늘을 보고 바로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불을 내고 냉장고 문을 열어둔 채로 누웠다면 연기를 마셨을 거고 고통스러워서 가만 누워있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의식이 없었다면 불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촛불과 비닐봉지를 이용한 지연 장치(불이 시간이 흐른 뒤에 붙게 하는 장치)를 썼을 가능성도 있다. 지연 장치에 불을 붙인 다음 졸피뎀이나 수면제 등을 복용했다면 인사불성인 상태에서 불이 났을 것이라고 이 사건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냉장고 문이 열려 있었다는 것이 우리도 의문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며 “지연 장치를 발견하진 못했다. 있었다 하더라도 불이 났기 때문에 흔적을 찾기 어렵다. 두 시신이 연기를 마셨는지는 추정하기 어렵다. 부검 결과가 나와 봐야 알 것 같다”고 밝혔다.
#생활고 겪지 않던 모자, 왜?
모자가 생활고를 겪었다고 보긴 어렵다. 경찰도 생활고가 이유라고 판단하진 않는다. 집 안엔 타다만 목제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모자가 발견된 양문형 냉장고도 고가로 알려졌다.
그리 큰 화재는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베란다는 유리 창문은 멀쩡하다.
모자는 2000년 해당 아파트를 사서 입주했다. 동네에선 “잘 갖춰진 아파트”로 통했다. 32평의 현재 매매가가 1억 6000만 원 정도다. 이 아파트는 현재 A 씨의 남편 C 씨(65) 소유다.
입주 당시 A 씨는 남편 C 씨, 첫째 아들과 함께였다. 변을 당한 B 씨는 둘째 아들이다. 하지만 17년 전인 2002년 C 씨와 별거를 시작한다. 첫째 아들은 남편과 함께 살기로 했다. 한 가족은 두 가족으로 분리된 뒤 왕래 없이 남남처럼 지냈다. 남편 C 씨는 공식적으로 이혼하진 않은 채로 모자에게 매달 일정 금액 생활비를 보내줬다. 최근엔 그 금액이 150만 원이었다.
위 도시가스 검침원은 “집 안을 봤을 때 못 사는 집이 아니었다. A 씨가 화장을 하지 않고 검소해 보이긴 했다”고 전했다. 다만 남편 C 씨는 4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활비 주는 것 외엔 전혀 A 씨와 B 씨 모자와 왕래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C 씨는 아내와 아들의 장례를 따로 지내지 않았다.
경찰은 “타살 정황은 적다. 개인사까지 알긴 어렵다”고 답했다. 사고 난 아파트의 한 주민은 “가정불화로 목숨을 끊은 것 아니겠느냐.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과수에 모자 시신 부검을 의뢰해뒀다. 결과는 오는 10월 둘째 주 정도에 나올 예정이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