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디악’ 홍보 스틸 컷.
#‘조디악’(2007)
아무래도 영화 ‘살인의 추억’과 가장 비슷한 흐름의 영화는 ‘조디악’이다. 이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유력한 용의자가 특정됐지만 그 전까지 이 두 영화는 ‘아직 해결되지 않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뤘다는 점이 유사하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했던 연쇄살인범 ‘조디악 킬러’는 잭 더 리퍼와 함께 희대의 살인마로 불리는데 아직까지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살인의 추억’을 형사들이 이끌어 갔다면 ‘조디악’은 기자와 수사관들이 이끌어 간다. 그 이유는 조디악 킬러가 샌프란시스코의 3대 신문사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샌프란시스코이그재미너, 발레호타임즈헤럴드 앞으로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실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원에 대한 단서를 던지며 경찰을 조롱한 연쇄살인범 조디악 킬러는 동봉한 암호문을 신문에 공개하지 않으면 살인을 계속하겠다는 협박까지 한다. 이 영화는 연쇄살인범이 아닌 그를 쫓는 기자들과 수사관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과 비슷하다.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홍보 스틸 컷.
#‘내가 살인범이다’(2012)
한국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장기미제 사건을 극적으로 해결하는 소재의 영화라는 점이 독특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곡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15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끝나는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자 실체를 드러낸 진범 ‘이두석’(박시후 분)은 자서전을 출간하고 오히려 베스트셀러 작가로 스타덤에 오른다. 그렇지만 이두석은 실제 진범을 찾아내기 위한 미끼였을 뿐이다. 이두석의 등장에 15년 동안 숨어 지내던 진짜 진범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이 영화 속 실제 연쇄살인범은 15년 동안 완벽하게 숨어 지냈다. 이두석의 도발이 그를 수면 위로 나오게 만든 것이었다.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특정되면서 “화성 연쇄살인범은 이미 사망했거나 아니면 교도소에 수감 중일 것”이라는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그 이유는 연쇄살인범은 살인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렇지만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연쇄살인범은 15년 동안 살인을 멈추고 지냈다. 실화의 주인공이 아닌 영화적 상상력으로 탄생한 연쇄살인범 캐릭터인 탓에 실제 연쇄살인범의 특성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 ‘스트레인저’ 홍보 스틸 컷.
#‘스트레인저’(1986)
가장 특이한 유형의 연쇄살인범은 영화 ‘스트레인저’에 등장하는 테드 번디다. 법대를 졸업한 그는 주위의 흠모와 시샘을 한몸에 받는 야심 많고 촉망받는 청년이었다. ‘연쇄살인범’ 하면 떠오르는 은둔형 인물이 아닌 사회적인 교류가 활발했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의 실체는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수많은 여성을 강간 살해한 연쇄살인범. 본인은 30여 명의 여성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는데 실제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게다가 법대 졸업생답게 탄탄한 법률 지식을 바탕으로 재판 과정에서 증거가 없음을 부각해 무죄를 주장한 그는 구속 과정에서 두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영화 ‘보통사람’ 홍보 스틸 컷.
#‘보통사람’(2017)
그렇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범은 누구일까. ‘변태성욕자’ 이관규는 1920년에 남자 어린이 두 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으로 화제가 됐다. 그렇지만 이는 일제강점기의 사건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연쇄살인범은 김대두다. 1970년대에 전라도, 경기도, 서울을 돌며 무려 17명을 살해한 그는 2004년 유영철 사건 발생 전까지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은 뒤 상고를 포기해 1976년 사형당했다.
김대두 사건을 바탕으로 2003년 ‘살인마 김대두’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김봉한 감독은 박근혜 정권에서 유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제작에 부담을 느껴 시대 배경을 1980년대로 바꾸고 제목도 바꿔서 개봉한 영화가 바로 ‘보통사람’이다.
영화 ‘암수살인’ 홍보 스틸 컷.
#‘암수살인’(2018)
2010년 부산에서 일어난 ‘부산 고시생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암수살인’도 독특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목 ‘암수살인’은 실제 범죄는 발생하였지만 통계적으로 잡히지 않은 미제 사건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이다.
이 영화는 연쇄살인범 강태오(주지훈 분)와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의 계속되는 두뇌 싸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여러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하지만 계속 말을 바꾸거나 거짓 정보만 흘리는 연쇄살인범 강태오. 그는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뒤섞어서 형사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자신이 흘리는 정보의 대가만을 요구한다. 게다가 강태오가 말한 진실을 기반으로 수사가 진행돼도 공소시효와 부족한 증거로 인해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형사가 끝까지 수사를 포기하지 않고 결국 사건의 실체를 밝혀 나가는 이야기다. 한편 이 사건의 실제 범인은 2018년 7월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