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125x125cm 한지에 혼합재료 2017
감상과 감동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감상이 표피적 울림이라면 감동은 감정의 내부까지 파고드는 진한 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의 껍질만 건드리는 울림은 조용한 호수에 이는 물결의 파문처럼 섬세하고 넓게 퍼져나가지만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이에 비해 감정의 밑바닥까지 뒤흔드는 울림은 바다를 뒤집어엎는 쓰나미 같은 거센 파도다. 한 번 몰아닥치면 영원한 상흔을 새기는 것과 같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이마누엘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파인아트(Fine Art) 개념을 통해 감상과 감동의 경계선을 뚜렷하게 나눴다.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쾌감은 쉽게 반응하게 되지만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으로, 감상에 호소하는 저급 예술이 이런 쾌감을 생산한다고 말한다. 감각의 표피를 뚫고 감정의 내부까지 파고드는 쾌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속적인 파장이며, 이처럼 지워지지 않는 감동을 창출하는 것이 파인아트라고 정의한다.
반창고와 생일케이크: 41x53cm 한지에 혼합재료 2019
이런 분석의 잣대로 임승현의 그림을 보면, 그의 작품은 감상 쪽으로 기운다. 그림 대부분이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쉽게 이해되고 누구에게나 감정의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심각한 사상이나 상징, 은유 같은 장치가 없이 뻔한 정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그를 감상적 예술가로 보게 되는 이유다.
그렇지만 그는 이러한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솔직하고 성실한 성정을 지닌 그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회화가 감당해야 할 부분에 대해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 추상적이고 이상적 말장난보다는 지금 일어난 문제의 구체적 해결책이 절실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현학적 수사보다는 쉽고 확실한 언어가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회화가 할 수 있는 역할도 그곳에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주제 삼는 임승현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감을 주는 그림’이 자신 회화의 목표라고 말한다.
바람의 라이더: 160x90cm 한지에 혼합재료 2018
임승현의 작품은 기법이나 재료가 특별하지 않고 특성도 뚜렷하지 않다.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는 혁신적인 방법도 보이지 않고 강력한 메시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본 사람은 그 이미지를 쉽게 떨치지 못한다. 애절한 울림이 쉽게 감각의 표피를 건드리고 슬며시 감정의 내부까지 스며들어 문신처럼 가슴에 새겨진다. 울림은 약하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왜 그럴까. 서정의 힘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상생활 속 에피소드를 하나의 상황으로 연출해 구성한다. 긍정적 분위기를 연상할 수 있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임승현은 여기에 자신만의 언어를 첨가해 서정성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 단련해 얻은 드로잉의 힘과 일상의 이야기를 변주해 일궈내는 환상성이 그것이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