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부산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이 임직원들이 참여한 단체채팅방에서 밤새 폭언을 퍼부어 논란이 되고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이 이사장의 모습. 사진=부산시
사건은 지난 8월 28일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저녁 10시께 한 본부장은 이날 열린 부서장 회의와 이후 저녁식사 자리와 관련한 내용을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보고했다. 본부장은 이사장이 지시한 저녁식사 자리에 임원 일부만 참석한 사실을 지적했고, 이 자리에 불참한 임원들은 사과하는 답장을 했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구체적인 내용에 궁금증이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앞서의 본부장이 “채팅 멤버들에게 휴식을 주시기를 청한다”고 만류하자 이 이사장은 “무슨 X지랄을 떠는 거야”라며 폭언을 쏟아냈다.
이 이사장은 ‘보잘 것 없는 기업’, ‘이것도 직장이라고’, ‘X같은 직장’, ‘개판 오 분 전’이라며 분노를 표출하고 “이 재단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색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벽 3시께는 “편안하게 주무시는 몇몇 지점장님들 오늘 오전 9시까지 제 방으로 모셔주세요”라며 갑작스러운 회의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 채팅방은 오전 8시 20분쯤 폐쇄됐다. 채팅방에 참석했던 한 임원은 “톡 폐쇄합니다. 2분 내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채팅방 참여자들의 퇴장을 요구했다. 참여자들의 퇴장으로 채팅방은 사라졌지만 이 이사장의 폭언 내용은 채팅방 캡처화면으로 남겨졌다.
심지어 이 이사장은 채팅방에 폭언을 퍼붓는 사이 한 직원에게 두 차례 전화해 또 다시 욕설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직원 A 씨는 “이 이사장이 채팅방에서 폭언을 퍼부으며 동시에 한 직원에게 전화해 ‘경찰에 신고해보라. 못하면 니가 XX이다’라며 욕설을 했다”고 전했다. A 씨는 “야심한 시각 갑자기 전화해 욕설을 퍼부은 만큼 녹취된 통화 내용은 따로 없지만 이사장이 해당 직원에게 전화했던 사실은 남겨진 통화기록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며 “피해를 당한 직원은 두려움에 떨며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싶다는 이야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자 이 이사장은 지난 11일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는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밝히고 감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사건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난 현재까지도 회사에 정상출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대외 행사는 타 임원이 대행하고 있으나 회사 내부 업무는 여전히 이 이사장이 맡고 있다. 부산신보 관계자도 이 이사장이 현재 출근 중인 것을 인정했다.
지난 19일 부산신보 노조와 부산참여연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노조는 “이 이사장이 아직 출근하며 채팅방 제보자 색출에 힘쓰고 있다”며 “부산시는 (이 이사장이) 제출한 사표 쇼에 속지 말고 즉각 사표를 수리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기자회견까지 열고 조속한 처리를 요구한 까닭은 감사에 착수한 부산시가 사건을 유야무야 덮으려 한다는 우려가 사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이 이사장이 제출한 사표를 감사 이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일부 직원들은 사건을 조사 중인 부산시를 나무라기도 한다. 부산신보 한 직원은 “부산시에서 사건을 덮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며 “이 이사장 문제가 커지면 오거돈 부산시장도 인사검증이나 인선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오거돈 부산시장 캠프에서 활동한 바 있어 취임 때부터 ‘낙하산 인사’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이 이사장은 문제의 단체채팅방에서 자신의 위치를 ‘큰 기대감 갖고 스카웃당해 온 직장’, ‘말년의 세컨드잡’ 등으로 표현했다.
부산신보 다른 직원은 “부산시가 조사 첫날 일부 직원에게 이 이사장의 갑질보다 (이 이사장이 문제 삼았던) 임단협과 관련한 질문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 이사장을 감싸려는 것 아니냐는 직원들의 우려가 컸다”며 “이후 논란이 증폭되며 감사의 방향도 개선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과 부산신보 노조는 2016년 이뤄진 임단협 결과를 두고 극심한 갈등을 빚어왔다. 이 이사장이 채팅방에서 ‘색출해야 한다’고 밝힌 이들은 과거 임단협 당시 교섭 및 합의했던 노사 관계자들을 의미한다.
노조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노조앞잡이’라고 말하거나 본인이 ‘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 출신’이라고 언급하는 등 노조를 탄압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이영수 부산신보 노조 지부장은 “이 이사장은 민주당 소속 오거돈 부산시장이 임명한 인물임에도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며 노조를 압박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 이사장이 ‘식물재단’이라며 노조에 책임을 전가했지만, 부산신보는 전국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고 업무강도도 세 과로로 병을 얻은 직원들도 있다”며 “목표치를 초과해 실적을 달성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은 정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본인이 취임하기 전 타결된 임단협에 불만을 품고 전임 이사장에게 전화해 “배임으로 고발하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석병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장은 “지난 4월 한 전임 이사장이 전화를 걸어와 억울함을 호소하더라”며 “이 이사장은 전임 이사장에게 전화해 ‘노조의 편에 섰다’며 임단협 타결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묻고 비난했다. 전임 이사장이 전화를 받고 놀란 나머지 노조 관계자인 나에게까지 전화를 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부산신보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감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며 “사건과 관련해 사측이나 이 이사장님이 따로 해명할 만한 것은 없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