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기록과 자료. 사진=연합뉴스
최악의 미제사건 ‘화성연쇄살인’의 실체적 진실규명에 이목이 집중된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일치하는 인물로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이춘재 씨가 유력 용의자로 특정됐다. 이 씨는 화성 출신으로 사건 발생지 부근에 살았다. 하지만 경찰의 용의선상에 오르지는 않았다. 이 씨의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화성에서 태어나 태안읍 일대를 벗어나지 않고 살다가 1993년 충북 청주로 돌연 이사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경찰은 용의자 나이를 20대로 추정해 사건발생 현장 인근에 거주하던 이 씨를 용의선상에 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용의자 혈액형을 ‘B’형이라고 좁혀 잡으며 ‘O형’인 이 씨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경찰은 5차, 7차, 9차 사건 현장에서 이 씨의 DNA와 일치되는 생체증거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다른 사건현장의 증거물도 감식을 의뢰했지만, 지금까지 이 씨와 DNA가 일치한다고 확인된 사건은 3건이다. 다만 아직 의뢰를 하지 않은 사건도 있어 10개 사건으로 분류된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몇 건이 이 씨와 연루됐는지는 알 수 없다. 경찰은 4차 사건 증거물도 추가로 국과수에 의뢰했다.
경찰은 사건 수사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10차례 살인사건 가운데 몇 건을 의뢰했는지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법의학과 교수의 인터뷰를 종합하면 일부 사건의 생체증거는 이미 앞선 수사에서 다 사용해 감식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대한 비판도 조금씩 거세지고 있다. 유력 용의자 이 씨가 과거 수사 당시 용의선상에조차 오르지 않은 데다 DNA 감식 의뢰도 공소시효 전에 하지 않아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다.
이 씨의 DNA가 발견된 5, 7, 9차 사건에서는 공통점이 여럿 발견된다. 피해자 결박, 시신유기 수법이 비슷하다. DNA 증거가 99.9%의 신뢰도를 가지지만 이 씨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씨는 1, 2차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은 19일 브리핑에서 “반드시 해결이 돼야 할 사건이지만 DNA가 나왔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이는 경찰이 미제살인사건을 해결했다며 홍보했던 ‘원주다방 여주인 살인사건’과는 사뭇 다른 처사다. 2003년 다방 여사장이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에서 채취한 쪽지문으로 2017년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했다. 하지만 지문 주인이 사망해 법정에 세울 수 없다며 별다른 추가조사 없이 경찰은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며 경찰은 지방청에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을 설치했다. 장기미제 살인사건 중 범인을 잡은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원주다방 여주인 살인사건 △용인 교수부인 살인사건 △노원 주부 살인사건 등이 있다. 세 사건 모두 발달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DNA 분석을 통해 범인을 특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온전하지 않은 쪽지문 등이 과학수사 발달로 추적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재판이 진행 중인 제주지방경찰청의 장기미제사건은 난항을 겪고 있다. 2009년 발생한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 사건은 제주도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불렸다. 한 농수로에서 목이 졸려 숨진 여성이 발견됐고 경찰은 현장에서 여러 증거를 수집했다. 현장에서 나온 섬유조각을 통해 경찰은 사건 발생 9년 만인 2018년 피의자를 특정했다. 하지만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