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미 씨는 서울PMC 지분 17.73%를 갖고 있는 2대주주다. 정태영 부회장은 같은 회사 주식 약 73%를 보유한 대주주다. 정 씨는 글을 올린 배경으로 “비상장 회사의 경우 3% 이상 보유했을 때 장부 열람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등사 및 열람권이 제대로 보장이 되지 않아 소송까지 했지만 패소해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지난 9월 10일, 9월 18일 두 차례 정은미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 씨는 “나보다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써야 하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두 번이나 글을 쓰게 돼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공론화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정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재벌가 가족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쓰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가정사가 아니라 소액주주 문제를 꼭 공론화시키고 싶었다. 상법 466조에 따르면 3% 이상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는 필요시 형식과 절차에 맞춰 청구하면 회사의 회계자료나 서류를 열람, 등사를 할 수 있고 회사는 그 부당함을 입증하지 못하면 거절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법 운영은 회사 정보에 접근하기 힘든 소액주주에게 열람 필요성을 상당한 수준의 구체적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2대주주가 장부조차 볼 수 없어 재산권을 방어하거나 대주주 전횡을 감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소수주주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 맞게 법 운영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정부에게도 묻고 싶었고 공론화시키고 싶었다.”
―대주주의 전횡은 어떤 것인가.
“나는 약 17% 지분을 갖고 있지만 서울PMC에서 장부 열람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종로학원은 교육사업만 수십 년 해온 회사인데 경험이나 노하우도 없고 경쟁력도 없다고 보여 동의할 수 없는 ‘친환경 채소사업’으로 사업목적을 전환하려 하고 있다. 교육을 중단하고 채소사업을 한다면 교육이라는 원 사업 목적에 같이했던 주주들과 기업을 해산하고, 새로운 사업 목적에 합의할 수 있는 주주들로 새롭게 주주를 구성하는 게 합당하다고 전달했다. 그런데 그런 의도도 무시됐고 그 이후에도 아무런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 주주총회에 나가서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얘기해봤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대주주 마음대로 하고 있다. 2대주주조차 이런데 소액주주들 상황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간다.”
―장부 열람을 위해 가족끼리 재판까지 가게 된 배경은 뭔가.
“몇 년간 옛 종로학원이 보유한 건물들을 지속적으로 팔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현금이 얼마나 되는지, 부채는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 2016년 장부를 열람하고 싶다고 했다. 그 해 12월 20일 직접 방문해서 회계장부 열람 등사하라고 통보받았다. 하지만 당일 회계사와 함께 회사 방문해보니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회의실에 쌓아놓고, 2시간 정도 열람만 허용하게 했다. 세무조사를 하려고 해도 자료를 가져가서 하지 그 자리에서 몇 시간 보고 끝내는 경우가 어디 있나. 그런데 끝까지 제대로 보여주질 않으니 2018년 2월 소송까지 가게 된 거다. 특히 서울PMC는 올 1월 미래토건에 서울 종로학원 강북본원 건물을 570억 원에 매각했다. 최근 1~2년 새 처분한 자산만 1000억 원에 가깝다. 회사 자산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으니 과거 소송했던 때보다 주주로서 장부 열람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8월 회계장부와 서류의 열람 소송 2심 선고까지 패소로 결론 났다.
“재판부는 ‘서울PMC 경영진의 위반행위가 존재할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상법 466조에 따르면 비상장 회사 경우 3% 이상, 상장 회사 경우 1만 분의 10 이상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는 필요시 형식과 절차에 맞춰 청구하면 회사의 회계자료나 서류를 열람 등사할 수 있다. 회사는 그 부당함을 입증하지 못하면 거절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보장해 주고 회사 정보에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소액주주의 알권리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대로 적용되고 있다. 회사가 부당함을 입증해야 하는데 소액주주가 대주주의 부당함을 매우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부당함을 알면 곧바로 소송을 걸면 된다. 모르니까,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우니까 보다 확실한 정보를 확인하고자 장부를 열람하고 싶다는 것이다. 소액주주는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
―열람권 행사가 거부되는 경우도 있다.
“열람권 행사가 거부되는 경우는 경쟁업체가 회사 주식을 취득해 열람, 등사권을 행사하고 그 취득한 정보를 경영에 이용할 우려가 있을 때 거부된다. 또한 회사 경영권 인수를 쉽게 하려고 할 때도 거부될 수 있다. 옛 종로학원인 서울PMC는 가족 회사고, 교육 회사다. 이 회사는 이제 교육 사업도 하지 않고 자산도 대부분 팔았다. 삼성전자처럼 첨단 IT 회사도 아니고 과거 교육회사 회계 장부에 무슨 엄청난 기술이나 기밀이 있겠나.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면 서로 대화로 풀 수 있을 텐데 그런 시도는 해보지 않았나.
“오빠인 정태영 부회장의 폭군 같은 면모에 몇 년 전부터 가족 간의 정을 끊었다. 가족이란 게 참 애매하다. 끊는다고 완전히 끊을 수가 없다. 친척, 가족 행사라도 있으면 마주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다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약 1년간 어머니를 돌보다 돌아가신 후 이제는 연락이 완전히 끊긴 상황이다. 어머니 장례식장에 참석한 방명록을 보여 달라는 요구도 현대카드 직원을 통해 해야 했고 그조차 제대로 받질 못했다. 가족으로서 최소한의 인연이나 정도 끊긴 듯하다.”
―방명록은 왜 못 받았나.
“어찌 보면 정말 별 것 아닌데, 그것 때문에 사람 감정을 완전히 헤집어 놓았다. 어머니 장례식장에 조문해 준 사람들 답례 인사를 위해 방명록을 보여 달라고 했는데 약 200명만 엑셀파일로 보내줬다. 장례 첫날 큰오빠(정태영 부회장) 없이 나와 작은 오빠가 자리를 지켰으니 첫날 방명록 일부만 보내준다는 것이다. 조문객이 둘째 날, 셋째 날에 올 수도 있고 나와 정태영 부회장이 아는 사람이 서로 겹칠 수도 있는데 첫날 일부 명단만 보여주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직원들은 계속 ‘위에서 편집하고 계셔서 그냥 보내줄 수 없다’고만 한다. 방명록을 그냥 그대로 공유해줄 수 없나. 둘째 오빠도 따로 많이 항의했지만 끝까지 제대로 된 방명록은 받을 수 없었고 정말 화가 났다.”
―정태영 부회장에게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뭔가.
“더 바라는 것도 없다. 가족간의 인연은 여기까지로 본다. 그 외에 서울PMC나 정 부회장에게 요구한 것은 늘 같다. 옛 종로학원이 서울PMC가 됐고 주요 자산을 매각하면서 교육 사업에서 친환경 채소 사업을 한다고 하고 주주 일부는 이에 반발하니 차라리 회사를 청산하고 뜻이 맞는 주주끼리 새롭게 회사를 만드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갑자기 등장한 친환경 농산물 재배·판매라는 새로운 사업은 부동산 매각 자금을 정 부회장 개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회사를 계속 운영하려면 주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존중받았으면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일단 장부 열람 소송은 상고한 상태다. 계속 법정 다툼을 이어갈 생각이다. 그 외에도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약간의 재산을 아버지와 큰아들 정 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남겼다. 오빠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금액일 텐데 그것조차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 뜻을 따르려면 이 문제도 다시 소송으로 풀어 나갈 수밖에 없다.”
한편 서울PMC 측은 “회사의 영업정보 등이 담겨 있는 회계장부를 섣불리 주기 어려워 등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시간제한 없이 열람을 하게 했는데도 본인 판단에 따라 약 3시간가량 회계사 두 명과 회계장부를 열람하고 떠났다”며 “열람등사청구 재판에서 1심, 2심 재판부는 ‘서울PMC 경영진의 법령 또는 정관 위반행위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는다’며 회계장부 열람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이는 상당히 드문 사례로, 청원인의 열람 신청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례식 문제에 관해서는 “CEO(최고경영자) 가족사에 대한 민감한 부분이어서 모든 내용을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단 정은미 씨의 주장은 일방적이다. 정작 정은미 씨는 첫째 날만 장례식장에 있었을 뿐 그 이후에는 장례식장에 없었고, 심지어 입관식뿐만 아니라 하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회사 측은 이어 “CEO의 개인적인 입장이어서 말하기 어렵지만 평소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미루어보아, 어머니 유산이 아버지에게 하나도 상속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어머니의 유언장을 확인해보니 평소 어머니의 글씨체와 확연히 다르고, 유언장의 날짜도 수정되어 있었다. 모든 재산은 아버지가 형성한 것이고, 홀로 남아 몸이 불편해 많은 도움이 필요한 분에게 상속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로 당연하다고 판단해 현재 아버지에게로 유산 상속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