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6일 갤럭시 폴드 공식 출시일. 삼성닷컴이 오전 9시부터 시작한 자급제폰 판매는 10분 만에 매진됐다. SK텔레콤과 KT도 준비한 물량을 10분여 만에 모두 팔았다. 8일 뒤 진행된 2차 예약판매 역시 일부 오프라인 매장을 제외하면 15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모두 바닥났다. 통신사 예약도 역시 한 시간 만에 끝났다.
관심이 집중되면서 해외 중고 거래 사이트 등에선 갤럭시 폴드가 270만∼300만 원에 판매되거나 “400만 원에 구매하겠다”는 글도 올라오고 있다. 갤럭시 폴드의 출고가는 239만 8000원. 양문형 냉장고나 일반 스마트폰 두 대 값인데도 최대 160만 원의 웃돈이 얹어진 것이다. 첫 출시된 스마트폰이 중고 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건 애플 아이폰이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이후로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가 출시 직후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 같은 현상은 일단 삼성전자가 물량을 적게 풀어서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의 공급 물량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통신 3사 판매 결과를 토대로 계산하면 이번 갤럭시 폴드 초도 물량은 1차 1000여 대, 2차 1만여 대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자급제 판매를 합치면 2만∼3만 대 수준. 그동안 갤럭시 노트 등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초도 물량이 약 10만 대였다는 점, 출시 2주 안에 평균 20만 대를 팔았었던 점과 비교하면 확연히 적은 수치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물량이 이렇게 적게 풀리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애플 신제품도 많이 들어오는 편은 아니지만 초도 물량은 5만~10만 대 수준이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공급량 제한은 일찌감치 예견됐다. 앞서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은 출시 한 달 전인 지난 8월 미국 뉴욕에서 갤럭시 노트10 공개 행사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갤럭시 폴드) 출시 시기가 미뤄져 원래 계획에 못 미칠 것”이라며 “출하량은 100만 대까지는 안 되고 한국을 포함해 20개국 정도에 한정된 물량만 출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국내외에서 100만 대를 나눠서 가져가야한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올 4월 미국에서 갤럭시 폴드를 출시하려고 했지만 결함 논란이 빚어지면서 5개월가량 미뤘다. 힌지(경첩)와 보호필름 등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제품 개선 작업이 이뤄지면서 본격적인 생산 시기도 그만큼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고동진 사장의 발언 이후 업계에선 문제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일부 생산 공정이 변경됐고, 이 때문에 초기 생산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복수의 삼성전자 협력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4월 미국 출시 전부터 이미 소량 생산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부품을 3월께부터 생산했는데 발주량이 월 10만 대를 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품 결함 논란 없이 계획대로 생산했더라도 올해 100만 대는 넘기지 못하는 셈이다. 다른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완성품을 올해 4월 초 전후로 제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 출시 수개월 전부터 생산을 시작해 재고를 만들어뒀었는데, 이번엔 달랐다”며 “단순히 기술 유출을 우려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미리 ‘제한적 공급’을 계획했더라도 고가의 스마트폰이 웃돈까지 붙어 재판매될 정도로 흥행했으면 생산을 더 늘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추가 생산 계획 등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가 의도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한다”는 등의 갖가지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시장에선 갤럭시 폴드 공급을 두고 삼성전자가 최소한의 물량만 풀면서 ‘한정 판매’ 전략을 추구한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소비 심리상 희귀할수록 수요는 늘어나고, 출시 전부터 큰 타격을 줬던 결함 논란의 부정적 인식도 감출 수 있다. 삼성전자가 한때 TV 판매 과정에서 한정판매 전략을 썼던 사례도 있다. 미국의 IT전문 매체 ‘톰스가이드’ 등 일부 외신도 지난 9월 17일 “삼성전자가 공급량을 통제하며 마케팅을 한다”는 취지로 보도하기도 했다.
부품이나 소재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갤럭시 폴드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인 폴리이미드(PI)와 같은 특수 소재가 한정된 양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새 기술이 적용된 만큼 아직 양산이 쉽지 않거나, 한-일 무역분쟁에 영향을 받았다는 추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들은 모두 “생산은 안정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부품과 소재와 관련한 문제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 한-일 무역분쟁이 가시화된 건 올해 7월이고, 갤럭시 폴드 첫 출시 계획은 4월이었다. 재출시한 9월까지도 부품소재 확보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폴드의 완성도를 강조하지만, 추가로 시장 검증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내부 관계자들은 ‘시장을 상황을 지켜보는 과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처음 시장에 내놓은 만큼 ‘검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연구개발을 비롯해 각종 시험 과정 등의 절차를 거쳤지만 접었다 펴는 폴더블 디스플레이 특성상 사용 기간에 따른 내구성에 대한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반응이 앞으로도 유지된다면 삼성전자가 새 기술의 세계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엔 스마트폰용으로는 다시는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의 ‘검증’ 과정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의 일부 관계자들은 이번 갤럭시 폴드 반응에 ‘거품’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삼성전자가 1, 2차 완판 행진을 거듭하면서도 흥행 여부에 대해 별다른 평가를 내고 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관계자는 “초기 판매에는 실사용자보다는 경쟁업체들뿐만 아니라 앱 개발자, 리뷰어, 소장용 구매자 등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최근 갤럭시 폴드 사용기와 리뷰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실제 사용자들의 반응이 우선적으로 파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도 “출시 초기 반응만으로 미리 정해진 생산 계획을 조절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1세대 모델인 만큼 대량 판매보다는 기술력을 선보이고, 검증 받는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전자가 시장 데이터를 충분히 수집했다고 판단할 때 다른 계획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