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선 재소자들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영화 ‘불한당’ 홍보 스틸 컷.
지난 6월 초, 민주노총 간부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경찰을 뒤집어 놨다. 경찰관 폭행 등 공무집행방해로 구속된 민주노총 간부 한 아무개 씨가 영등포경찰서에서 남부구치소로 이감되던 중 본인 휴대전화로 페이스북에 사진과 글을 올린 것.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한 씨는 호송관에게 본인의 휴대전화를 건네받아 페이스북에 글을 게재했다.
자신의 명찰 사진을 올린 한 씨는 “이 명찰이 주는 무게를 알기에 최선을 다했다. 더 넓고 깊은 그릇이 되어 단단하고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되어 돌아오겠다. 수감 가는 중에 몰래 올린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논란이 되자 경찰은 “본인 물품 확인 중 한 씨가 20분가량 휴대폰을 건네받아 글을 올린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호송관은 한 씨와 함께 호송을 기다리던 다른 피의자 세 명에게도 소지품을 건네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질타를 받아야 했다.
#휴대폰 사용도 공공연? “수사 기법 중 하나”
하지만 이는 단순 실수에 불과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이미 구속된 피고인들이 ‘휴대폰’을 쓰는 경우도 공공연하다는 얘기다.
최근 뉴스타파에 따르면 한 수감자는 감옥신세를 지는 상황에서도 아이패드를 사용했다. 이를 검사가 허락했고, 외부에 있는 가족이 아이패드를 검사실로 가져다 줬다는 게 해당 수감자의 주장이었다. 실제 그는 죄수 신분이었음에도 아이패드를 이용해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2016년 9월에는 재판을 받고 있던 한 정치인을 겨냥해 “현직 죄수 입장에서 한마디 조언하자면”으로 시작하는 글을 쓰거나, 감방 창살 너머 보이는 풍경을 직접 스케치한 그림을 올려두기도 했다.
이는 ‘출정’을 통해 가능했다. 수사 협조 방식으로 감옥을 나와 검찰청에 출석했고, 그때 아이패드를 사용했다. 해당 수감자는 2015년 11월 19일부터 2017년 8월 23일까지 21개월 동안 출정 206회를 나갔는데, 이 가운데 170번을 서울남부지검의 검사실로 향했다. 이때 독방을 제공받았고 그곳에서 개인 아이패드를 가족을 통해 건네받아 사용했다.
검찰 역시 보도 이후 해당 제보자의 존재와 출정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수사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상황일 뿐 위법의 소지는 없다고 일축했다. 특히 검찰 측은 “아이패드 등을 사용하게 해줬으면 한다는 요청을 들어줬지만, 검찰 수사관과 교도관이 동행했다”고 해명했다. 다수의 검사들 역시 “드물지만 종종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수사 과정에서 정보를 제공받아야만 할 때가 있는데, 이때 ‘공범’들에 대한 배신을 대가로 휴대폰 사용 등을 허락해 준다는 설명이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주가 조작과 같은 금융 범죄의 경우 전환사채 발행이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만으로는 진짜 목적을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주가 조작이 목적’이라는 공범으로 긴밀하게 소통했던 사람의 진술을 확보해야 처벌이 가능한데 이들이 절대 공짜로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고 그 대가는 대부분 휴대폰이나 아이패드처럼 인터넷 활용이 가능한 무선기기”라고 귀띔했다.
‘주식 거래’가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대외적으로는 공범들과의 ‘연락’을 통한 수사 협조로 포장되지만, 주식 처분 등 재산 관리가 목적이라는 얘기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결국 제때 주식을 처분해서 자기 돈을 지키려는 목적이다. 공범과의 연락 혹은 문서 작성 등을 무선기기 필요성의 이유로 내세우지만 사실 검사들도 ‘본인 주식 처분 등 재산 관리’가 목적인 것을 안다”면서도 “어떨 때는 수사 도움이 필요가 없어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검사실로 부르고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를 이용한 주식 거래를 허용한다. 위법 소지가 있음에도 공범들을 잡기 위해 묵인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프리즌’ 홍보 스틸 컷
심지어 휴대폰을 구치소 안으로 반입했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다. 한 수감자는 약 봉투를 받는다는 명분으로 휴대폰을 구치소 안으로 반입했다가 당국에 덜미가 잡혔다. 검찰이 구치소 반입까지 허용하지는 않지만, 가족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그 외 여러 물품들이 건네지기도 한다는 게 법조인들의 설명이다.
앞선 변호사는 “증권 범죄 사건은 확실한 내부자 폭로가 가장 중요할 때가 있다. 배신을 하는 것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며 “휴대폰은 물론, 담배나 그 외에 원하는 물건이 있을 경우 가족이나 변호인을 통해서 검사실에서 건네지고 일부는 감옥 안으로 반입되어지곤 한다. 더 큰 범죄를 잡기 위해 검찰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고 금융범죄를 주로 다루는 남부지검에서 가장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얘기했다.
#서류 통해 ‘물건’ 넣어주기도…변호인들도 ‘고역’
검찰이 아니라, 변호인 등을 통해 불법적인 물건들이 건네지기도 한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재판을 받고 있는 미결수들에 해당하는 얘기다. 수면제와 같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약품’이나 치실, 소형 가위 등이 공공연히 구치소 안으로 반입되곤 한다. 대형 로펌 관계자는 “수억 원의 변호사 비용을 내는 거물들의 경우 구속됐을 때 요구사항이 많다”며 “형이 확정되기 전에는 1주일에 2~3일 이상 변호인 접견을 명분 삼아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과정에서 개인용 약품 등이 건네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위험을 무릅쓰고 금지용품을 반입해주기도 했다. 또 다른 로펌의 변호사는 “구치소 안에서는 치실처럼 자살에 쓰일 수 있는 용품은 반입이 금지인데, 치실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해서 고민 끝에 치실을 1회 사용 양 기준으로 잘게 잘라서 서류 안에 몰래 넣어 건네주기도 했다”며 “그 외 부피가 크지 않거나 서류 안에 숨길 수 있는 것들은 변호사 접견 때 건네지곤 한다”고 귀띔했다.
구치소 안에서 수감자들끼리 ‘자랑’이 붙어서 변호사들을 피곤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하소연이다. 앞선 대형 로펌 관계자는 “하루는 의뢰인이 ‘구치소 안에서 다른 로펌은 서류를 책으로 만들어서 주는데 왜 너네는 서류를 한 장씩 따로따로 출력해서 주느냐, 다른 수감자들이 막 놀렸다’는 얘기에 부랴부랴 문제가 안 되게끔 철이 들어가지 않은 책으로 범죄 관련 서류들을 만들어서 넣어줘야 했다”며 “조각을 하겠다며 칼이나 가위 혹은 불법 음란 서적까지, 정말 상식 밖 물건들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액을 내는 의뢰인들의 경우 들어주기 위해 가급적 노력하고 이는 어느 로펌이나 비슷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