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황 대표는 22일 항상 입던 정장을 벗고 하늘색 셔츠에 운동화를 신은 캐주얼 차림을 선보였다. 삭발한 머리 스타일에 무선 헤드셋을 낀 모습이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했다. 자유한국당 한 당협위원장은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했던 ‘좀 젊게 이미지를 꾸며보시라’는 요구를 들어준 것 같다”며 “당내에서는 대체로 나쁘지 않게 봤다. 과거 고리타분해 보이는 이미지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발표자료(PPT) 디자인은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젊은 이미지로 등장했지만 PPT 디자인은 고리타분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PPT를 봤던 당시 참석자는 “좀 촌스러운 느낌은 있었다. 오래 전 PPT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황 대표 삭발 이후 추락하던 지지율도 반등 조짐을 보였다. ‘아시아투데이’가 9월 2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황 대표는 차기 정치 지도자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서 26.8%를 기록했다. 20.7%를 기록한 이낙연 총리를 앞섰다. 조국 장관(12.3%), 이재명 경기지사(5%),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4.5%), 오세훈 전 서울시장(3.8%) 순이었다.
이 조사는 지난 20~21일 전국 성인 1065명에게 무선 전화 자동응답(RDD) 방식으로 진행했으며, 응답률은 10.9%,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황 대표 삭발은 긍정적인 요소가 더 크다고 본다”며 “민주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야당 대표가 삭발한 모습을 보면 과연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누군가에게는 한번쯤 생각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랫동안 준비한 민부론 자체는 정작 이슈화되지 않았고, ‘백화점식 나열’에 가까운 발표 내용도 명확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한국당의 다른 관계자는 “보수의 약점이기도 한데 뭔가를 발표할 때 포장을 잘 못한다. 발표를 하면 그걸 준비하는 과정까지 외부에 알리면서 기대감을 고조시킬 수도 있었다고 본다. 두꺼운 민부론을 만들면서 분명 여러 분과에서 다양한 인사가 토론도 많이 했을 텐데 갑자기 튀어나온 느낌”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앞서의 당협위원장은 “어차피 민부론이 큰 이슈가 될 수 없다. 현 상황에서 정책 이야기가 호응을 얻기는 힘들다”면서 “한국당이 조국 장관 이야기만 한다는 비판을 불식시키는 차원이라고 보면 된다. 숨고르기 차원에서, 한국당도 정책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행사”라고 반박했다.
캐주얼한 옷차림 등 이미지 변신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비판도 들린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인은 이미지를 갑작스럽게 바꾸면 득보다 실이 클 때가 많다”며 “안철수 전 대표의 ‘누굽니꽈’ 퍼포먼스를 두고 신선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결국 웃음거리에 그친 사례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출사표를 던졌다가 중도에 포기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이미지 변신을 위해 ‘스노우’라는 카메라 앱으로 사진을 올렸다가 뒷말이 나오기도 했고, 자동판매기를 이용하다 돈을 여러 개 넣어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이미지 변신은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국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은 황 대표가 조국 정국의 반사 효과를 얻고 있어 반응이 좋은 것 같다”면서도 “황 대표가 젊은 이미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젊은 모습을 억지로 내다가는 자칫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정치권에선 황 대표의 ‘청춘 이미지’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황 대표 본인도 바뀐 모습을 즐기는 것 같다. 삭발을 패러디한 사진을 두고 ‘멋있다’ ‘젊어 보인다’ 등의 호응에 만족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 역시 이러한 스탠스가 황 대표 약점으로 거론되는 확장성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